노을이 아름다운 궁평항의 꼼꼼한 살림꾼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시원하게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항구, 궁평항 앞바다는 언제 찾아도 온화하다. 이 고장 사람들은 ‘태안 앞바다가 험한 물살 다 막아줘서 여기가 이리 조용하다.’고 농담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항구의 정서 역시 넓고 잔잔한 바다 닮아 온화하고 편안하게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항구에서 막 퍼 올려 신선한 해산물이 넘쳐나는 수산물 직판장은 활기가 넘치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넓은 쉼터는 가족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 준다. 바다뿐이 아니다. 하늘과 바다가 붉은 물감으로 섞여 시야를 가득 채우며 일렁이는 궁평항의 낙조는 화성 8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절경이다. 이 풍경을 두고 ‘낙조(落照)'라는 단어는, 떨어진다는 느낌이 강해 정감이 가지 않아요. 노을이라 불러주면 좋겠어요.’라며 마을과 항구를 표현하는 단어 하나하나에까지 신경 쓰는 세심함을 보여주는 궁평항의 살림꾼, 정찬일 어촌계장(58세)을 만났다.
"11대 할아버님께서 여기 화성에 정착하셨어요. 제가 32대손이니 600년 넘게 터 잡고 살아왔다고 볼 수 있네요." 정 계장은 이곳에 내린 집안의 깊은 뿌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화성과 궁평항의 과거를 떠올리고 현재를 묘사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인터뷰 과정 내내 고향에 대한 애정이 담뿍 배어나왔다. ‘사물을 조용히 관찰하면 그 이치를 깨닫는다.’는 그의 좌우명처럼, 고향에 대한 애정 역시 오랜 관찰의 결과일 것이다.
이제 곧 육십을 바라보는 정 계장의 기억 속 가장 오래된 풍경은 방조제가 들어서기 전, 마을 앞까지 밀려오던 바다의 풍경이었다.
“할아버지께서 건강망을 설치하고 고기를 잡으셨어요.”
건강망(健干網)이란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던 물고기 그물로, 썰물 때 갯벌에 말뚝을 박아 그 사이에 그물을 둘러 설치하면 밀물에 밀려온 물고기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잡히는 방식이다. “아카시아나무나 참나무를 기둥으로 삼고, 사이사이를 짚으로 엮어 물고기를 잡았어요. 주로 숭어나 꽃게나 걸려들고는 했지요.” 짚은 면실로 바뀌었고, 그물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감나무 뿌리를 끓인 물에 실을 담갔다. 붉게 물든 실로 엮인 그물망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파수가 되어 갯벌에 열을 지어 서 있던 오심여 년 전의 풍경은 든든한 기억이 되어 어업의 길로 그의 등을 밀었다. “면실이 나일론 재질로 바뀔 때 즈음, 저도 철이 들었지요. 어업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향을 떠났어요.”
86 아시안게임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무렵, 정 계장은 김 양식으로 어업인의 첫발을 내딛었고, 이후 수산 유통업에 관심을 갖는다. 바다 자체도 좋지만, 바다에서 나온 산물이 세상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였다. 그는 특히 바지락 가공업에 주력했고 오래 지나지 않아 노량진에서 알아주는 수산유통업자가 된다. “어느 정도 자리 잡으니 고향 생각이 나더라고요.”
90년대 초반, 화성 앞바다는 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방조제가 건립되기 시작한다. 늘어날 농지와 줄어들 바다 사이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충돌하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 정 계장은 바지락 유통을 통해 고향 어민들의 이익을 챙겨주고자 노력한다. “노량진에서 내공을 쌓아 놓으니, 바지락 가공 공장이 얼마나 이익을 낼 수 있을지 빤히 보이더라고요. 어민의 노력은 정당한 값으로 치러져야 하겠지요.” 그의 노력 덕에 99년 기준 궁평리의 바지락은 kg당 400원 더 높은 값으로 공장에 팔려나갔다.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일상이었어요. 풍경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를 정도로.” 그의 말처럼 어느 새 방조제는 건립되었고, 그 옛날의 바다는 호수로 바뀌어 있었다.
정 계장은 방조제 건립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농지 확보 우선, 맞는 정책이지요.” 그러나 사라진 생명들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을 펼쳐놓았다. “우리 발등을 우리가 찔렀어요. 더는 그러지 말아야지요. 화성호 안쪽 갯벌, 사라진 생명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요.” 후손들이 살아갈 터전이 ‘공생’의 가치를 반영했으면 한다며 그는 노을이 나리는 궁평항 앞바다를 바라보았다. “화성호 주변은 농지로서의 가치와 갯벌로서의 가치가 모두 드러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정 계장은 스스로가 꿈꾸는 화성호의 미래를 신중하게 펼쳐놓기 시작했다.
“화성호는 생명의 터전으로 서서히 제 역할을 시작하고 있어요.” 정 계장은 화성호 안쪽에 다양한 종묘(種苗)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농어와 새우 치어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새 생명을 키워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그는 화성호 중간 쯤 보를 하나 세우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보를 중심으로 방조제 내측 간척지에는 민물을 계속 공급해서 농사를 짓지요. 바깥쪽은 대피 어항이나 선착장으로 활용하면서 바다 생명들을 지키는 겁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공존하는 공간 화성호에서 뭍과 물의 생명들이 공생하는 풍경, 정 계장이 꿈꾸는 화성호의 미래가 그 곳에 있었다.
다시 시선을 먼 바다로 돌렸다. 정 계장에게서는 궁평항의 수많은 자랑거리들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수도권에서 수평선을 볼 수 있는 바다가 참 드물어요. 여기만큼 눈이 시원해지는 곳이 없지요.” 수평선 자랑은 기후 자랑으로 이어진다. “화성은 자연재해가 적기로 유명하지요. 그 중에서도 여기 궁평항은 알맞은 비, 따뜻한 햇살, 거칠지 않은 바다, 참 온화한 곳이에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궁평항이 퍼다 주는 수많은 수산물이리라. 유통이 발전해서 내륙 어디서라도 신선한 수산물을 맛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정 계장은 이곳만의 수산물은 살면서 한 번쯤은 놓치지 말아야 할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며 궁평항의 사계절을 짚어나갔다.
“봄은 쭈꾸미.” 여기 쭈꾸미 아니면 전국 쭈꾸미축제는 전부 다 문 닫아야 할 것이라며 정 계장은 웃었다. 갯벌에 산란을 위한 쭈꾸미들이 그득그득 모이는데 알도 꽉 차고 부드럽다고 한다.
“여름에는 소라.” 뻘 소라의 맛을 느껴보았냐며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손가락을 튕기는 정도만으로 깨질 정도로 여기 소라의 껍질은 얇으며, 얇은 만큼 소라의 육질이 쫄깃하고 맛있다 한다.
“가을의 꽃게.” 꽃게의 내장이 여기만큼 실하게 차는 곳은 없다고 한다. 먼 바다에서 잡히는 꽃게의 내장이 주황색이라면, 갯벌을 파고 들어가기 직전의 꽃게 내장은 신선하고 영양분이 가득한 선홍색임을 강조했다. 새우젓 안에 꽃게를 파묻고 장을 담가 먹으면 그만큼의 별미가 또 있겠냐며 그는 군침을 삼켰다.
“마지막으로 겨울 김.” 김으로 유명한 곳이야 국내에 많지만, 그 많은 김들에 화성 김이 꼭 섞여 들어간다고 한다. 화성은 갯벌이 우수해서 김에 특유의 고소한 향미가 돌고, 그렇기에 풍미를 위해 일부러 완도 등지에서 화성 물김을 사 가서 현지에서 섞어 말린다는 것이다.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궁평항 수산물 자랑의 마지막은 바지락이 장식했다. “화성 바지락을 우리는 황금 바지락이라고 부릅니다.” 여기 바지락만큼 살이 실하게 꽉 차 있는 바지락이 없으며, 선명한 노란색이 마치 황금을 연상시킬 정도라 한다.
1,000여 명의 어민, 280척의 배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궁평리 어촌계 정찬일 계장의 화성 바다 자랑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에 취해, 궁평항 노을에 취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정 계장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철 맛있는 것이 가득한 곳, 궁평항으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