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선 수원전투비행장 화성이전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운 한 해였다. 인터뷰 약속을 잡을 때면 찾아가는 곳의 코로나 상황부터 살펴야 했고, 지역의 경계를 넘을 때면 낯선 동네의 확진자를 알리는 반갑지 않은 문자 알림이 쏟아져 들어오곤 했다.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지역별 안전안내문자를 통해 알 수 있는 세상이라니. 아무렇지도 않게 낯선 이들과 이야기하고 멈칫거림 없이 반가운 악수를 나누던 풍경은 어느 새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 통째로 삭제해 버린 듯한 2020년 올해의 마지막 인터뷰라고 하니 왠지 모르게 비장한 마음이 들었는데, 자료 삼아 찾아 낸 신문에 덩그러니 실린 사진에도 온통 비장함이 감돌았다. 붉은 글씨로 커다랗게 쓴 항의 팻말을 앞세우고 여러 명의 사람들이 삭발을 하고 있었다. 거칠게 잘라내는 면도날 아래로 투두둑 쌓여 가는 머리카락, 단식 농성 중이라고 알리는 표지판 뒤로 보이는 결기에 찬 표정. 제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자신의 곡기를 끊어 가며 제발 내 말 좀 들어달라 외치는 아우성이 사진 너머로도 들리는 것 같았다.
부쩍 차가워진 날씨에다 심각해진 수도권의 코로나 상황. 하필 인터뷰 전날 밤에는 난데없이 눈발이 날리더니 기온마저 뚝 떨어지고 길에는 살얼음이 끼었다. 거리를 메워야 할 사람들은 사라지고 분주해야 할 커뮤니티센터에도 오가는 발길이 끊겼다. 지우개로 사람의 흔적을 지운 듯 적막만 감도는 사무실의 문을 빼꼼 열고 들어가니 신문사진 속의 그 분이 앉아 있었다. 까끌까끌 올라 온 짤막한 머리카락에는 한달 전 삭발의 흔적이 채 지워지지도 않았다.
삭발과 단식으로 항의를 표하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계속 듣고 있었어요.
이렇게 단체삭발이나 단식처럼 강력한 의사표시를 하게 된 까닭은?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심사가 국회의 국방위원회 법률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이 되었거든요. 그게 통과라도 되면 화옹지구에 군공항 450만 평이 들어오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화성시의 발전이 멈춘다 이런 위기감이 들었죠. 전곡항 궁평항 이런 관광지들도 다 죽어요. 아이들 데리고 체험하러 오는데 그런 소음을 들으면서 찾아오질 않죠. 재산권 보호도 안되고 생명권도 잃어버리고, 참담한 현실이 닥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게 지난 11월 16일이었죠?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단체 삭발이 이뤄졌는데.
당시 관련 국회의원이나 정책 결정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또 이를 바라보는 화성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는지도 궁금한데요.
시민 분들이 보시고 힘내라, 고생한다,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어요. 뜻을 같이하는 화성시민 7명이 단체삭발을 했는데요. 화성시의 국회의원과 시장, 시의회도 같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절대 반대다 함께 외쳐주셨죠. 그게 국방위원회의 심의 바로 전날이었는데요. 덕분에 결국 다음날 국방위원회에서 개정안심사가 보류가 됐죠.
수원전투비행장 화성이전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구성된 건 언제부터죠? 범대위에서 활동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2017년도 2월에 처음 범대위가 생겼어요. 화성시가 갑자기 군공항 예비후보지가 된 걸 알고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죠. 이 예비후보지라는 게, 화성시장도 받아들이지 않은 걸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거거든요. 이 지방자치시대, 지방분권시대에 이건 원천무효다, 주장을 하게 된 거죠.
사일 동안 물만 먹으면서 단식하셨잖아요.
단식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어찌 보면 제 자신을 정화하는 기분이었어요. 생각도 선명해지고 앞으로 어떻게 활동해야겠다 계획도 세우고요. 저를 희생해서라도 어떻게든 끝까지 막아야겠다, 그렇게 결심을 다지는 시간이었죠.
범대위 활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이게 몇 사람이 나서서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저희 회원들이 화성시 읍면동 구석구석에 다 퍼져있어요. 1인 시위도 하고 수백 수천 명이 모여서 항의농성을 하러 가는데요. 화성에서부터 가는 차량 비용만 해도 만만치가 않죠. 기부해 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데 드는 비용은 자비로 각출해서 내죠. 그래서 시민들이 응원해 주시면 그게 제일 힘이 많이 나죠.
흔히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저항의 표현을 단식이라고들 한다. 마땅한 항의의 수단을 가지지 못한 미약한 개인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해 가며 마지막으로 내세우는 처절한 주장인 셈이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내는 것도 사회에 대한 강한 일갈이다. 이토록 강력한 의사표시를 해가며 막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지, 그저 무심히 지나던 사람이라도 한번쯤 궁금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김진표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나요?
간단히 말씀 드리자면, 군 공항이 옮겨갈 해당 지역의 시장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서 거기에서 동의를 얻어서 시작하겠다는 거예요.
수원전투비행장의 화성 이전을 쉽게 하기 위해서
이전을 반대하는 주민이나 지자체장의 의견은 무시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그저께 갤럽에서 조사한 결과가 나왔는데 화성시민의 70퍼센트가 반대한다고 나왔어요. 그런데 수원에서 한 조사에서는 50대 50 거의 반반으로 나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설문조사의 질문 자체를 아주 헷갈리게 해 놓았더군요. 군공항이라고 쓰지 않고 통합공항이라고 쓰니까 어르신들은 그게 뭔지 잘 모르는 거예요.
화성 시민들은 이런 개정안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그래서 저희가 계속 홍보를 나가는 거예요. 코로나 2단계 전까지는 통장회의 같은 곳까지 다 찾아 다니면서 열심히 홍보를 했어요. 제일 열심히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시기인데… 그런데 또 코로나가 이렇게 발목을 잡네요.
달랑 하얀 마스크 하나를 친구 마냥 달고 다니는 요즘, 사람을 만나는 것에 누구보다 목마른 사람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뜻이 다른 이들은 설득을 하고, 뜻이 같은 이들은 서로 힘을 북돋우며 긴긴 싸움을 이어가야 할 텐데 큰일이었다. 가슴속에서 피가 끓고 천불이 나는 것 같아도 목청껏 외칠 수 없는 상황이 참 답답하고 힘들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상황들이 두터운 벽처럼 느껴졌던 지난 일년. 도무지 내 편이 아닌 것만 같은 코로나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만에 하나라도, 김진표 의원이 발의한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화성에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요?
일단은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길바닥에라도 누울 각오로 반대할 겁니다. 우선 소음문제로 생존권이 박탈당할 것이고, 화성시에서 공들인 사업들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는데 소음으로 시끄러워지면 다 소용이 없어지겠죠. 관련한 재산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전부지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한다는 의견도 많아요.
구체적으로 화성시민들이 떠안게 될 희생은 어떤 것일지?
비행기는 바다 쪽으로 뜬다고 상관없다고 말을 하지만, 천만의 말씀! 비행기는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항로가 달라진다고 해요. 바람이 항상 한 쪽으로만 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소음이 여기서도 나고 저기서도 나고…
공항 근처에 안 살아보신 분들은
그 소음이 어느 정도일지 감을 잡기가 힘드실 것 같아요.
서산의 해미 비행장에 자주 견학을 갔었어요. 거기도 소음이 굉장히 심하다고 해서 가봤는데, 비행장에서 500미터나 떨어진 곳에서도 시끄러워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더라고요. 주변 축사에서 키우는 소들도 새끼를 배면 그냥 사산하는 경우가 많고 주민도 유산이 잦다고 해요. 여기도 군 공항이 들어오면 15~20킬로미터 반경까지는 굉장히 시끄럽다고 봐야죠.
군공항 이전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듣고 계신데. 어떤가요?
공항이 들어오면 땅 팔아버리고 떠나야겠다, 그렇게는 못 살겠다고 하죠. 축산이나 양계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예민한 문제에요. 닭이나 소들이 병들고 그러니까요. 근처의 공장들도 비행기 진동에 흔들립니다. 그러면 정밀기계 같은 것들은 문제가 생기죠.
후보지로 언급되는 화옹지구 일대에 미칠 영향은?
화옹지구에는 습지가 굉장히 많아요. 아주 다양한 철새들이 쉬었다 가는 공간이죠. 아이들이 체험하고 가족끼리 놀다 가기도 좋고. 공항이 들어오면 거기 체험시설들은 다 문닫는 거죠. 군공항 예비후보지가 화성습지 딱 한 가운데예요. 마도면 남양읍 서신면 이런 곳들이 제일 영향을 많이 받죠.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 땅이 전투기 소음으로 병들어야 할 이유가 납득이 가질 않았다. 세계가 인정하는 생태 보고인 화성습지 위로 왜 철새들 대신 비행기가 날아다녀야 하는지, 생태관광의 터전으로 부쩍 성장하고 있는 화성갯벌의 가치가 왜 사라져야 하는지 말이다. 또 2005년 미 공군사격장이 폐쇄되기 전까지 “54년을 폭격과 전투기 소음으로 시달렸던 매향리 주민들이 또 다시 전투기 소음을 들어야 한다”는 건 가혹한 일이었다. 이토록 군공항 이전사업은 옮겨가는 곳에 사는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도 커다란 사건. 신중하고 또 신중해도 모자랄 일이었다.
수원시에서는 공항을 통해 지역발전을 하고 화성주민의 복리증진을 하겠다,
이런 주장을 하던데요. 화성시민은 어떻게들 생각하시나요?
그쪽에서 복리증진 안 시켜줘도 자체적으로 증진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하죠! 생각해 보십시오. 민간공항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화성시의 자금으로 만들어야 하고, 요즘 지방공항들 다 안되잖아요, 망하는 거예요. 안 되는 사업을 한다는 건 국가적인 손해죠. 잘못된 주장을 하는 광고를 기차역 같은 데 많이 설치해 놔서, 저희가 항의하고 그래요.
그래서 화성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법안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지난 11월 13일 송옥주 의원이 새로운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어떤 내용인지?
김진표 의원의 발의안이 국방부에 어느 정도 위임하는 거라면, 송옥주 의원의 발의안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인 화성시장의 권한을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전후보지 선정 심의에 앞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의 동의를 확인하도록 하고, 이전부지 선정 과정에서는 관계 지방자치단체와 국방부가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도록 하는 거죠.
화옹지구로의 군공항 이전을 막아낼 수 있는 법안이 될 수 있을까요?
우선 막아낼 수 있는 터를 닦아 준 거죠. 과반수의 찬성에서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것도 들어가 있고요. 그리고 원천적으로 후보지 선정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요. 화성시민의 목소리를 어느 정도 대변할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된 거죠.
이견이 갈리는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들이 발의되면서
법안을 병합 심리하는 안을 고려 중이라고 들었어요.
화성 시민들의 반발의 목소리를 더 강하게 담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우리 목소리를 담은 포스터나 플래카드를 읍면동 구석구석에 설치해서 최대한 많은 분들에게 알려야죠. 그리고 대대적인 서명운동도 다시 진행을 할 겁니다. 특히 인구가 제일 많은 지역이 동탄인데요.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현재 가장 의견이 덜 모아진 지역이기도 해서 저희가 그쪽 홍보에 노력을 하고 있죠. 지금은 저희 쪽으로 많이 돌아섰어요.
긴 시간 활동하면서 몸도 힘들고 마음도 지치고 하실 텐데,
괜히 시작했다 후회스럽지는 않으세요?
이제 마지막 인생길을 걷는데 우리 사는 화성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걸로 됐어요. 같이 활동하는 분들한테는 농담으로 “만약에 내가 잘못되면 나중에 비석이나 하나 세워달라”고 했어요. 군공항 반대에 앞장서서 쾌거를 이루었다, 이렇게 새겨달라고요. 우리 역사를 보면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뭔가 이뤄지더라고요. 허허허
어느 새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 늙고 지친 몸으로 선뜻 하기 힘든 일이 어디 한두 가지였을까? 생각과는 달리 쉽사리 움직이지 않은 세상일에 마음이 고단했던 적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그래도 인생을 조금 더 오래 살아 본 선배로서 걱정을 가득 담아 시작한 일이었다. 나에게 당장 닥칠 일들보다는 내 후손이 살아갈 세상이 더 걱정이 되는 나이. 이제 늙어서 세상에 큰 미련 없다는 말은, 마지막 인생길이라 두려울 것도 거칠 것이 없다는 강력한 의지로 들렸다.
화성시 마도면에서 8대째 살고 있는 토박이였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사랑하고 내 가족과 이웃이 자리잡은 터전을 지키려 애썼고 부당한 일에는 한껏 목소리를 내며 앞장 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좀더 젊었을 때는 마을로 들어오려던 공단을 삭발을 해가며 막아낸 일화도 들려주었다. 물러서지 않고 싸우면 끝내 이긴다는 교훈을,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당당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어느 날인가 세워질 그의 무덤 앞 묘비의 문장들은 부디 “군공항 없는 마을로 지켜냈다. 그리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로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