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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수첩 Feb 18. 2016

재석이랑 호동이 있어도 안되는 건 안돼

지상파의 외침 '케이블스럽게' 만들어 봐 

피디와 작가가 머리를 맞대서 아이디어를 짜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끝냈다고 해서 바로 방송을 내보낼 수는 없다. 아이템이 TV를 통해 방송되기 위해서는 '시사' 과정을 거친다. 본사 제작의 경우, 팀장급인 CP(Chief Producer) 혹은 내부 전체 시사를 통해 평가를 받고, 수정 작업을 거친다. 외주 제작인 경우에는 자체 시사, 본사 외주관리팀장의 시사 등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야, 이거 너무 케이블스럽지 않아?"
"자막, CG 촌스러워. 꼭 케이블 같애."


불과 몇 년 전, 지상파 방송의 시사 현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평가였다. 소위 '센'아이템을 다뤘거나, 자막, 컴퓨터 그래픽에 튀는 느낌이 있다면 '케이블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다. '구성은 이렇게', '자막은 이렇게' 기존의 포맷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던 지상파가 케이블스러움을 인정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졸려, 누가 보면 지상판줄 알겠다."
"호흡이 너무 길어. 여기가 지상파냐?"


반대로 케이블과 종편도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아이템과 구성은 지상파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방송을 만들어왔다. '좀 더 강하게', '좀 더 세게'를 내세운 방송으로 화제성을 만드는 것이 케이블의 목표일 때가 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구를 얼마나, 어떻게 보게 하느냐가 아니라, 그냥 '보게'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방송도 달라졌고, 시청자도 달라졌다. TV 본방사수의 시대를 지나 인터넷, VOD, 스마트폰 등 시청형태에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케이블을 상대하는 지상파의 여유로움은 크게 시청률의 우위에서 나온다. 아무리 케이블이 날고 뛴다 할지라도 공중파의 시청률을 따라 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중파 평일 예능 시청률의 급격한 하락

현재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중파 평일 예능 시청률의 급격한 하락이다. KBS는 월요일과 수요일 심야 예능에서 발을 뺀 지 오래고, 그나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동네 예체능>과 <해피투게더>도 5%의 시청률을 넘지 못하고 고전 중이다.  

케이블과 종편에서 2%만 나와도 대박으로, 지상파 시청률로 환산하면 곱하기 5를 해야 한다는 계산법이 실제로 존재했었다. 하지만 케이블의 사정도 많이 달라졌다. tvN의 약진이 돋보이는 가운데 나영석 PD가 이끄는 <삼시세끼>는 두 자릿수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또한 <집밥 백선생>, <한식대첩> 등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 3%대의 꾸준한 시청률을 기록하는 <SNL 코리아>와 <코미디 빅리그>도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통합시청률 집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더 치열한 시청률 전쟁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는 재석이랑 호동이가 있잖아."            

 
시청률의 안정성 외에도 지상파 예능이 내세우는 여유로움에는 유재석과 강호동이 존재했다. 아니, 했었다.

이제는 JTBC <아는 형님>, <마리와 나>의 강호동, <슈가맨>에 출연하는 유재석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재석의 종편 진출이 생각보다 '빨랐다'라고 말하지만, 방송가 사람들은 생각보다 '늦었다'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의 시청률 하락과 폐지를 통해 지상파 방송이 주는 특별한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참신한 콘텐츠와 유연한 방송 환경 속에서 유재석의 또 다른 매력이 나올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한 <비정상회담>을 선두로 <냉장고를 부탁해>, <썰전> 등 젊고 공격적인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는 JTBC. 단순히 여운혁PD, 윤현준 PD와 의리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하고, 위기를 돌파하려는 본인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야, 케이블스럽게 좀 만들어 봐."

요즘 지상파 시사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고 한다. 모든 분야는 아니지만, 적어도 예능은 케이블의 빠른 호흡과 톡톡 튀는 자막, CG, 음악을 참고하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지상파라서 시청률을 보장 받고, 케이블이라서 낮은 시청률과 완성도를 눈감고 지나치는 시대는 끝났다. 

방송국과 채널의 홍수 속에 살아남는 프로그램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건, 양질의 콘텐츠는 지상파든 케이블이든 찾아보고, 돌려서 보고, 보고 또 본다. 하지만 수준 이하의 콘텐츠는 아무리 지상파라도 냉정하게 외면 받는 시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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