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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귤 Apr 10. 2021

오름-2

비밀스러운 장소

  제주도의 오름은 동서남북 방향마다 볼 수 있는 풍경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된다면 같은 쪽의 오름을 두 곳 방문하는 것보다 여러 방향의 오름에 가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대부분의 오름이 동쪽과 서쪽에 몰려있어 여행을 와서 굳이 남쪽의 오름까지 방문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나는 서귀포의 풍경이 궁금해 몇 군데를 가 보았다.


  남쪽의 대표 오름이라 할 수 있는 송악산은 아쉽지만 자연 복원을 위한 휴식년제로 인해 2021년 7월 31일까지 정상부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해안을 따라 난 둘레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먼 걸음을 보상할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 


  고근산은 서귀포 시내 가까이 있는 오름으로 서귀포 시내 쪽에 숙소를 잡았다면 가볍게 방문해 볼 만하다. 차로 산 밑까지 운전해서 가면 등산 구간은 왕복 1시간 정도로 무난하다. 군데군데 공용운동기구들과 빽빽한 나무는 흔히 볼 수 있는 집 앞의 산책로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정상의 작은 분화구가 제주 오름임을 말해주었다. 분화구를 따라 둥글게 걷다 보면 곳곳에 전망대가 있는데 북쪽으로 한라산, 남쪽으로는 서귀포 시내를 바다와 함께 조망할 수 있다. 특히 북쪽 전망이 너무 아름다워서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조용히 한라산을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되어 줄 것 같다. 


  군산오름은 오름이라기보다 전망대라는 이름이 왠지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특이하게 차로 올라갈 수 있는 오름으로 정상 바로 밑 주차장까지 차로 가서 약 10분만 걸어 올라가면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다. 날씨가 맑으면 한라산부터 가파도, 마라도~서귀포 시내까지도 한눈에 볼 수 있어 남쪽에서는 뷰가 가장 멋진 장소가 아닐까 싶다. 거기다 일몰 시간에 가면 노을 맛집으로 붉게 물드는 서귀포 시내와 지는 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운전인데 올라가는 길이 좁은 1차선 비포장도로라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만나면 머리가 아플 수 있다. 정상의 주차장도 넓지 않아서 차가 많다면 회차를 하기 힘들 수 있어서 초보운전자는 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심각히 고려해봐야 한다.

고근산과 군산오름

  남쪽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오름은 물영아리오름이다. 이곳은 화구에 습지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습지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있고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서 학술 가치가 높은 곳이라고 한다. 오름에 도착하면 넓은 초지에서 풀을 뜯는 소와 빽빽하게 차 있는 나무를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다. 사실 나에게는 이 풍경이 물영아리오름에서 하이라이트였다. (괜히 올라갔....)


  등반로는 생각보다 경사가 급했고 숲이 우거져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낮에 갔음에도 조금 음침한 기분이 들었었다. 비 오는 날 물영아리오름이 예쁘다는 말이 있던데 왠지 비 오는 날은 더 무서워 혼자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정상에는 특이하게 분화구 안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데 길을 따라 내려가면 습지를 볼 수 있다. 산꼭대기에 습지가 있다는 점이 신기하긴 했지만, 습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나에게는 그냥 풀로 보일 뿐이었다. 거문오름과 함께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곳이었다. 

물영아리 오름(입구 - 등반로 - 정상)

  많은 오름을 다니면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오름을 찾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멋진 전망이 있지만,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곳.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 바람이 쐬고 싶을 때 혼자 조용히 왔다가 갈 수 있는 그런 오름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욕심을 놓게 되었다. 오름이 카페처럼 신상 오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많은 사람의 발길이 닿은 곳에서 나만의 숨겨진 아름다운 장소를 찾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오름을 다니다 보니 유명한 곳은 유명한 대로 알려지지 않은 곳은 알려지지 않은 대로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오름을 가서 뱀이 나올 것 같은 숲길을 헤치며 올라가다 중간에 포기한 적도 있었고 관리가 안 된 길을 뚫고 힘들게 올라갔는데 '에계'라는 탄식이 흘러나오는 곳도 있었다. 대체로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 경치가 예쁜 것 같다.


  숨겨진 장소라고 해서 생각나는 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예전부터 인터넷으로 쇼핑을 할 때도 유명하지 않은 사이트에서 비주류의 예쁜 옷을 잘 찾아내곤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친구를 검색의 달인이라고 불렀다. 검색의 달인 친구가 제주도에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친구는 이번 여행에서도 검색 실력을 발휘해서 아무도 모르는 시크릿 한 산책로라며 한 장소를 찾아왔다. 그 이름은 '고살리탐방로'. 이곳을 가고 사람들이 안 가는 곳은 안 가는 이유가 있구나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여행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작은 주차장에 차가 한 대밖에 세워져 있지 않아서 정말 비밀스러운 곳에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댔다. 입구부터 나무가 한그루 쓰러져 있었는데 그때는 사진 포인트라며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길의 형체가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가면 갈수록 싸한 느낌이 들었고 나뭇가지가 뱀으로 보이기도 했다. "뱀이야!"라고 호들갑스럽게 놀라기도 나무줄기에 걸려 넘어질 뻔도 했지만 우리는 숨겨진 비경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꿋꿋이 나아갔다. 하지만 결국 '여기가 끝인가?'라고 생각될 정도로 길이 흐릿해진 곳에서 우리는 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듯한 예쁜 연못도 봤지만, 그 기쁨은 잠시였고 돌아온 차에서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야생을 찾는다면 '고살리 탐방로'로

  제주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투숙객에게 속닥속닥 알려주는 곳, 웨딩촬영 업체가 신랑 신부와 조용히 사진 찍으러 가는 곳이었던 안돌 오름. 지금은 제주에서 가장 핫한 오름이 되어버렸다. 나도 처음은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됐었다. 여행을 왔던 친구가 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는데 거기 사장님이 데려가 주셨는데 너무 좋았다고 했다. 


  안돌 오름은 오름과 편백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전에는 오름을 방문한 사람들끼리의 은어로 '비밀의 숲'이라고 편백숲을 불렀지만, 언제부터인가 내비게이션에 '비밀의 숲'이라고 검색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편백숲 앞에 임시매표소도 생겨서 소액의 입장료(2,000원)를 내야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도 많아지고 인위적인 모습이 많이 생겨 조용히 산책하기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편백숲 사이에 꽃도 심어 두고 갖은 소품을 둬서 사진을 찍기에는 여전히 예쁜 곳인 것 같다. 기다랗게 늘어선 편백 앞에서는 셔터를 막 눌러도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진짜 안돌'오름'은 편백숲과 5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주차하는 구역도 따로 있다. 보통 사람들은 편백숲에서 사진만 찍고 가지만 편한 옷과 운동화를 챙겨 왔다면 오름에 올라가 보는 것도 좋다. 길이 잘 정비되지 않아 올라가기 조금 힘들지만 30분 정도면 정상에 갈 수 있는 짧은 코스이다. 정상에 닿을 때쯤 마지막 경사로를 걸으면 주변의 넓은 초원과 빽빽한 편백숲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다. 편백숲이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을 때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바다와 풍차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 


  안돌 오름 하면 이곳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난다. 정상에는 작은 벤치가 있는데 그곳에 누워 낮잠을 자던 한 여행자가 있었다. 그 모습이 이질감 하나 없이 정말 잘 어울렸던 그런 오름이다. 

이제는 연예인 안돌오름

  이외에도 많은 오름이 있지만,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기억에 남는 두 개의 오름을 골라보았다. 내 기준에서 여기는 슬리퍼를 신고 올라가도 크게 무리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 잔뜩 꾸미고 왔다면 이곳들을 방문해도 괜찮을 것 같다.


서쪽 - '효리네 민박' 이효리가 사랑한 '금오름'과 시크릿 전망대 '정물오름'


  '효리네 민박'이라는 인기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었던 금오름은 언제 가도 사람이 많은 핫플레이스이다. 길이 잘 다져져 오르기도 쉽고 분화구 위로 동그랗게 난 길을 따라 돌면 서쪽의 풍광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정상에서는 멀리 협재 바다와 남쪽으로는 산방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분화구 안쪽에는 얕게 물이 고인 연못이 있는데 내려가서 연못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신비로운 느낌의 사진을 건질 수 있다고 한다. 


  정물오름은 금오름의 그늘에 가려진 보석 같은 곳이다.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지 않아서 그런지 길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지만 30분 정도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정상에는 몇 개의 벤치만 놓여있는데 한라산 방향으로 놓인 벤치는 마치 여기 앉아 보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벤치에 앉으면 한라산과 주변의 낮은 오름들이 예쁜 곡선을 그리며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이 모습이 너무 예뻐서 액자로 만들어 소장하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오름에서 홀로 예쁜 풍경을 보고 산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너무 좋아서 노래를 틀어 춤을 췄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노랫소리에 몸을 맡겨 나만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한참을 돌고 뛰다가 어둑해질 때쯤 정신이 돌아와 지는 해를 보며 오름에서 내려갔는데 가슴이 뻥 뚫린 듯 개운했다.

금오름과 정물오름

((정물오름은 정상이 좁기 때문에 사람이 많으면 복잡할 수 있어 주차장에 차가 많다면 다른 곳으로 차를 돌리자.))


동쪽 - 오름의 정석 '용눈이오름'과 '백약이오름'


  용눈이와 백약이오름은 수학의 정석 같은 느낌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을 포기하지 않은 친구가 아니고는 수학의 정석이라는 교재를 대부분 가지고 있었는데 다양한 문제집을 풀면서도 헷갈리는 것이 나올 때는 꼭 수학의 정석을 펴보곤 했다. 


  용눈이오름과 백약이오름은 오름의 정석으로 제주도에서 여러 오름을 돌아다니다 제주다움이 뭔지 알 수 없을 때 방문하면 답을 알려줄 것이다. 뻥 뚫린 등산로와 사방이 트인 멋진 전망이 제주스러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름 곳곳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 말도 있는데 운이 좋으면 말과 옆에서 다정한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경사도 완만한 편으로 연인끼리 혹은 나이 드신 어르신을 모시고 가기 괜찮다.

용눈이와 백약이

  백약이오름은 훼손지 복원을 위해 2022년 7월 31일까지 정상부 일부 지역의 출입을 막고 있다. 그 부분이 극히 일부 지역이라 오름을 산책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지만, 제주 오름이 사람들의 발길로 많이 손상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용눈이오름도 훼손 여부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하며 휴식년제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출입 금지구역을 잘 지키고 머문 자리도 깨끗하게 정리해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을 언제 와도 볼 수 있도록 함께 유지해나가면 좋겠다.

아픈 백약이오름

  오름의 등산로에는 나무가 많이 없기 때문에 바람이 센 날은 사방에서 바람을 맞아 눈을 못 뜰 수도 있기 때문에 선글라스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무가 없어 그늘도 없기 때문에 한여름에는 양산을 가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안개가 끼거나 흐린 날에 오름을 올라가면 내 앞사람도 잘 안 보일 수 있다. 힘들게 올라갔다가 아무것도 못 보고 운동만 하다가 내려올 수 있기 때문에 오름을 계획에 넣은 날은 날씨를 꼭 잘 확인하자! 그리고 오름은 대부분 시골에 있어 오름 입구까지 대중교통이 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차가 없이 오름을 방문할 경우 미리 계획을 잘 짜야 한다.

안개 낀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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