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의 매력
오름이란 '산(山)'이라는 말의 제주 방언으로 제주에서는 불룩하게 나온 지형은 대부분 오름이라고 칭한다. 제주도에는 크고 작은 약 360개의 오름이 있고 오름 탐험가라고 해서 제주에 머물면서 1년에 100여 개가 넘는 오름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나는 제주 오름의 10분의 1도 채 가보지 못했지만, 최대한 다양한 곳을 방문하면서 오름의 매력을 찾아보려고 했다.
오름을 다니며, 내가 느낀 오름의 가장 큰 매력은 사방이 뻥 뚫린 산이라는 것이다. 보통 육지에서 등산을 하면 정상 이외에 오르는 길은 나무로 가려져 경치라고는 나무와 풀덤불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름은 올라가는 길에 키 큰 나무가 없고 낮은 풀이나 억새가 주로 있어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올라갈 수 있다. 시야가 트여있어 하늘을 보며 올라가면 마치 구름 속으로 걸어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적당한 높이에 닿으면 넓은 초원과 고즈넉한 제주 시골마을의 풍경 그리고 멀리 바다까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제주 오름이 이런 모습을 가진 것은 아니므로 취향에 따라 잘 찾아가야 한다.
제주의 오름은 보통 300~400m 정도로 아주 높지 않아 가벼운 산책코스로 좋은데 큰노꼬메오름과 어승생악은 이러한 생각을 하고 갔다가 큰코다친 곳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연인과는 함께 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둘이 올라갔다가 혼자 내려올 수 있다. 높이부터 큰노꼬메는 834m, 어승생악은 1,169m로 일반적인 오름보다 많이 높다. 차로 많이 올라가서 걷는 구간은 길지 않지만, 경사가 정말 심했다. 하지만 힘들게 올라간 만큼 보통의 오름보다 더 높은 곳에서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제주의 오름들이 지겨워져서 색다른 것이 필요하다면 이곳에 올라가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제주에 와서 한라산은 이미 가봤고 다른 등산다운 등산코스를 찾고 있다면 영실코스를 추천하고 싶다. 나는 등산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영실코스는 백록담에 가는 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산행이었고 다음에 한 번 더 가려고 찜해둔 곳이다. 사방이 뚫린 경사진 등산로를 걷는데 멀리 보이던 초록색으로 덮인 거대한 바위산은 마치 마추픽추에 갔을 때 봤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경사로가 끝나면 높낮이가 적은 평야 지대가 나타나는데 곳곳에 피어있는 꽃과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 모를 풀들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눈이 오는 날은 작은 나무들에 눈꽃이 맺혀 더 예쁘다고 하니 겨울에 꼭 다시 오려고 한다.
영실코스는 주차장에서 윗세오름까지 왕복 6~7시간 정도가 걸리고 경사가 심한 구간도 있기 때문에 단단히 준비하고 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등산로 바로 밑 주차장은 자리가 금방 꽉 차서 대기를 해야 할 수 있으니 아침 일찍 가거나 첫 등반팀이 내려 올 1~2시 무렵에 가는 것이 좋다. 마음 편히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1~2km 정도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올라가도 된다.
차가 없거나 시간이 없을 때 간단하게 들르기 좋은 오름이 있다. 바로 도두봉으로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뷰를 가진 매력덩어리 오름이다. 공항에서도 가깝고 정상까지 왕복 30분도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에 무지개 해안도로를 걷다가 가볍게 들르기 좋다. 올라가는 길이 예쁘진 않지만, 꼭대기에 가면 남쪽으로는 제주공항 활주로와 시내를 북쪽으로는 시원하게 펼쳐진 끝없는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비행기 이착륙도 정말 가까이서 볼 수 있어 타이밍을 잘 맞추면 날아가는 비행기와 나란히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테마가 있는 오름으로는 거문오름과 산굼부리가 있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한라산 천연 보호구역, 성산 일출봉과 함께 2007년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오름이 예뻐서 유네스코에 등재가 된 줄 알았지만 오름에서 가이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오름 자체가 등재된 것이 아닌 용암동굴계가 등재가 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문오름은 당일 방문은 불가하고 최소 하루 전에 미리 인터넷이나 전화로 예약을 해야 방문할 수 있다. 게다가 1일 450명으로 인원도 제한되어있다. 운동화를 꼭 신어야 하고 소액의 탐방료가 있으니 방문 전에는 거문오름 사이트의 안내문을 한 번 읽어보고 가는 것이 좋다.
거문오름 산책로는 곶자왈과 삼나무 숲이 잘 보존되어있어 온통 초록초록하고 피톤치드가 넘쳐났다. 그리고 두 가지 숲이 싸움이라도 한 듯 방문자들이 걸을 수 있는 데크를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는 모습은 신기했다. 하지만 거문오름은 까다로운 방문 절차와 명성에 비해 개인적으로 조금 실망스러웠다. 나는 경치 덕후로 뻥 뚫린 길을 걷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서 주변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거문오름은 대부분 빽빽한 숲길로 전망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가이드님의 설명도 없어서 자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나에게는 집 앞의 산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거문오름은 3가지 코스가 있는데 코스들이 꽤 길어서 가장 짧은 정상 코스는 최소 1시간, 중간 분화구 코스는 최소 2시간, 가장 긴 코스는 최소 3시간을 잡고 가야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어 힘들진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야생의 숲길을 걷고 싶은 분에게는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또한, 코로나 이전에는 가이드님의 설명이 알찼다고 하니 곶자왈 숲과 제주 용암동굴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고 싶다면 코로나가 잠잠해진 뒤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굼부리'는 구덩이라는 뜻을 가진 제주말로 '산굼부리=산구덩이'라고 할 수 있다. 산굼부리 정상에는 한라산 백록담보다도 깊은 거대한 분화구가 있는데 이것에서 본떠 산굼부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산굼부리는 분화구뿐 아니라 억새가 예쁜 곳으로 유명하다. 나는 고향이 바다와 가까워 어릴 때부터 갈대를 많이 봤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지만 산 중턱에 억새가 있는 모습은 색달랐다.
이곳에서 나는 갈대와 억새가 생긴 건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산에 있는 것은 모두 억새이고 바닷가 주변엔 억새도 있지만, 갈대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억새가 조금 더 키가 작고 흰색 빛을 많이 띤다고 하는데 제주에 있는 이러한 길쭉한 갈색 식물은 성산 쪽 일부를 빼고 대부분 억새라고 한다.
분화구 쪽에 가면 일정한 시간마다 해설사님이 10분 정도 설명도 해주신다. 나만 알고 싶은 비밀이지만 해설사님이 산굼부리가 가장 예쁜 시간은 11월 초 오후 5시라고 하셨다. 마감 시간 전이라 사람들이 적고 가을의 정점이라 분화구 안으로는 단풍, 뒤쪽으로는 넓게 펼쳐진 억새를 볼 수 있다고 하셨다. 거기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한라산 뒤로 넘어가는 해의 모습이 장관이라고 하셔 11월에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산굼부리는 사유지라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로 다른 관광지보다 입장료(성인 6,000원)가 조금 비싼 편이다. 그리고 억새꽃이 피는 9월부터 11월까지는 여유롭게 산책을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산굼부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억새가 보고 싶다면 따라비 오름으로 가보자. 가을에 따라비 오름을 가면 예쁘게 줄지어 자란 억새들은 아니지만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는 야생의 억새를 볼 수 있다. 펜스로 막혀 있지 않아 더 가깝게 다가가 사진도 찍을 수 있고 해 질 무렵 가면 금처럼 반짝이는 억새 사이를 걸어볼 수도 있다. 정상은 사방이 트여있어 제주 동쪽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분화구를 따라 난 둘레길이 꽤 길어서 산등성이를 따라 산책하기도 좋다. 동남쪽 한가운데 있어 위치가 조금 애매하지만, 가을에 제주도를 방문한다면 꼭 가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