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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귤 Apr 10. 2021

행복

감사합니다. 제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만의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에게 최우선 가치는 언제나 행복과 건강이었다. 사람은 행복의 힘으로 살아가고 행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건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갈망해서 그럴까? 나는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데는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아침에 학교에 가다 보면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을 선물해주신 부모님께도 정말 감사했다. 


  늦은 나이에 취업 준비를 하면서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식당이나 카페에서 일할 때 정직원을 제외하면 아르바이트 중에는 내가 가장 고령자인 경우가 많았다. 또래 중에 사원증을 걸고 멋진 직장을 다니는 친구도 있었고 나보다 어린 친구가 먼저 취업을 해서 나갈 때도 있었지만, 아르바이트는 이때만 할 수 있는 특혜라고 생각하며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어떻게 보면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도 작게나마 돈을 벌며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고 아직 20대 청춘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이런 긍정적인 마음 덕분인지 긴 시간의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우울함이나 좌절감을 크게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긴 레이스 끝에 드디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직장을 얻게 되었고 시간은 더 흘러 어느덧 내 나이는 30살을 훌쩍 넘었다. 직장에서도 자리를 잡아 신입의 티를 벗어가고 있었고 퇴근 후에는 치킨 정도는 마음 편히 먹을 만큼 대학 시절보다 생활도 풍족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상에서 행복을 찾던 소중한 마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취업한 뒤에도 나의 생활패턴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다. 주로 만나는 사람들과 관심사가 바뀐 것 같다.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나이대가 높아졌고 결혼을 하신 분들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직장에서는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재테크 이야기와 누군가의 승진, 월급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취업을 하면서 메신저 대화방에는 차, 집, 재테크 같은 이야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연휴 때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도 ‘돈은 얼마 받냐?’, '집은 언제 살래?' 이런 말을 꼭 한 번씩 들었던 것 같다.


행복했던 20대 마지막 아르바이트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듣고 있던 이런 이야기에 언젠가부터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돈을 많이 벌어 우쭐대보고 싶기도 하고 멋진 성과로 인정도 받아보고 싶어졌다. 내 미래를 위해서는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돈이 꼭 필요하고 이것이 없으면 뒤처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퇴근하고도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지, 어떤 자격증을 따 볼지 같은 생각을 하며 더 나은 스펙에 집착했고 꽤 오랜 시간을 취직 전보다 조급하고 치열하게 살았다. 돈이 내 행복의 기준이 되어가고 나를 좀먹고 있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2019년에는 하늘을 본 날이 있었는지, 사진도 없고 기억도 나질 않는다.


  이러한 생활이 제주도에 와서 180도 바뀌었다. 처음에는 육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자마자 영어 학원을 끊고 틈틈이 재테크 영상을 봤다. 하지만 친구들이 오고 한두 번 제주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제주에서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여기서 만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 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산과 바다로 돌아다녔고 나를 돌아볼 여유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오름과 바다가 쉬는 날 새로운 성취만을 궁리하며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나를 족쇄에서 풀어준 것이다. 예쁜 카페도 가고 숲길을 걷기도 하며 가진 혼자만의 시간들은 파도가 치지 않는 먼바다처럼 내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어 주었다. 더 이상 조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하늘이 보였다. 출근길의 푸른 하늘과 퇴근길에 밝게 빛나는 달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에 온 지 반년쯤 지나고부터는 '행복하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기 시작했다. 행복에는 어떠한 기운이 있는지 가만히 있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뭐가 그렇게 좋아요?"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었다. 제주에서 나는 무엇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지 깨달았고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었던 20대의 나를 되찾았다. 

행복한 퇴근길

  돈과 명예도 물론 좋다. 하지만 뭐든지 적당한 중용이 필요한 것 같다. 이제는 제주를 떠나도 가끔 나를 돌아보며 마음속 저울을 잘 맞춰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 마음이 시기, 질투, 욕심으로 가득 차 저울이 너무 기울어졌을 때 이 책을 다시 펴볼 것이다. 그때 이것이 제주 생활을 회상하며 나 자신을 다잡아주고 저울을 균형있게 맞춰주는 지침서가 되어주면 좋겠다.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한 해를 만들어 준 제주. 감사합니다.


영화 '라라랜드'가 생각나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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