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다시 올게! 우도
소가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우도(牛島)라는 이름을 가진 이 섬은 제주 속의 작은 제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잘 보존된 돌담과 옛 가옥들이 오래전 제주 풍경을 많이 닮았다고 한다. 게다가 작은 섬 안에 꾸역꾸역 오름과 해변도 들어가 있어 정말 제주도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길을 따라 자전거나 스쿠터를 타고 우도를 돌아보다 보면 자연과 전통마을이 어우러진 옛 제주도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우도의 크기는 여의도의 약 3배 정도로 제주의 부속 도서 중에 가장 크다고 한다. 섬을 한 바퀴 도는 거리는 12km 정도로 걸어서 돌아보기에는 조금 큰 편이다. 가파도나 마라도를 생각하고 무작정 걸어서 출발했다가는 본섬으로 돌아오는 배를 놓칠 수도 있다. 구석구석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아서 당일치기로 온다면 최소한 점심시간 전에 배를 타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나 소머리오름(우도봉)까지 올라가 보려면 오전 일찍 출발하는 배를 타야 조금은 여유 있게 우도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도는 동쪽의 성산 일출봉 뒤쪽에 떠 있는 섬으로 성산포항에서 여객선을 타면 15분이면 닿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우도에는 매년 약 2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고 하는데 성수기에는 30분 간격으로 있는 배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가득 찬다. 많은 방문자에 따라 상업적 가치를 본 외지인들이 우도에 카페나 식당을 곳곳에 차렸고, 최근에는 거대한 리조트 공사까지 시작되면서 우도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옛 모습을 잃어가는 모습에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반대했지만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버린바 나는 앞으로 우도가 좋은 방향으로 변하길 기도한다.
우도에 도착해서 배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알록달록 자전거와 전기 삼륜차들이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는 가게로 들어가 렌트를 하고 나면 우도 여행이 시작된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겨울에는 찬 바람을 피해 가림막이 있는 전기차를 탈 수 있다. 자전거나 차를 받고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일단 해안도로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출발하면 된다.
나는 제주도에서 삼륜 전기차를 처음 타봤는데 땅의 감촉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승차감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는 히터도 나오고 보기보다 안락했다. 운전법도 간단해서 차라고는 놀이동산의 범퍼카 정도만 타봤던 사람이라도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라도 자전거나 삼륜 전기차 같은 것을 타기 힘든 사람들은 우도를 순환하는 관광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참고로 제주 본섬에서 렌트한 차를 우도에 가지고 들어가려면 여러 조건이 있기 때문에 잘 확인을 해야 한다.
우도에는 하고수동 해수욕장, 검멀레 해변, 산호 해수욕장(서빈백사) 이렇게 유명한 3개의 해변이 있다. 해수욕장이라고 하지만 내가 본 우도의 해변들은 물놀이를 하는 곳이라기보다 관상용 해변에 가까운 것 같았다. 해변이 그다지 넓지 않기도 하고, 숙소를 우도에 잡지 않는 이상 물에 선뜻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여름에도 물놀이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고수동 해수욕장은 본섬의 월정리 해수욕장의 축소판 같았다. 물이 얕고 맑아서 에메랄드빛을 띠었고 해변 뒤쪽으로는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져 있었다. 근처에 바다가 보이는 카페들이 많아 잠시 쉬었다 가기 좋았다.
산호 해수욕장은 홍조단괴(홍조류의 퇴적작용에 의해 형성된 알갱이)로 이루어진 해변으로 학술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가서 보면 해변의 자갈이 알갱이가 크고 하얘 '우와'하며 신기하게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놀람은 3초(?) 정도일 뿐이었고 서빈백사에서 나에게 더 기억에 남은 것은 해변에서 멀리 보이던 본섬의 모습이다. 제주도 바깥에서만 볼 수 있는 우뚝 솟은 한라산과 올록볼록 솟아있는 여러 오름의 모습이 정말 예뻤다.
검멀레 해변은 우도봉의 협곡 속에 자리 잡고 있는데 검정 모래와 절벽이 그러데이션을 그리듯 어우러져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검멀레 해변이 있는 절벽은 후해 석벽(바다를 등지고 솟아 있는 바위 절벽)이라고 해서 우도 8경 중에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해수욕장이라기보다 검은 모래 퇴적지에 가까운 것 같았다. 과연 이곳에서 해수욕하는 사람이 있을까?
제주에는 동쪽과 서쪽에 비양도가 각각 하나씩 있다. 협재해수욕장에서 보이는 서쪽 비양도는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으며 일몰의 모습에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동쪽의 비양도는 우도에 붙어 있는 섬으로, 우도에서 150m 정도 되는 짧은 다리를 통해 육로로 들어갈 수 있다.
우도에 있는 비양도는 정말 작은 섬으로 주민은 살지 않고 상업용 건물만 두어 채 있을 뿐이다. 처음 들어가면 '에계 이게 섬이라고?'라는 말이 나올 수 있지만, 이곳은 캠핑족에게는 성지이자 일출 맛집으로 소문이 나 있다고 한다. 비양도는 바다 바로 앞에 넓은 초지가 있어 캠핑하기 좋고 제주도의 동쪽 끝단으로 해를 가장 먼저 마주할 수 있다. 해가 좋은 날 우도에 들어간다면 돗자리와 캠핑 의자 같은 가벼운 캠핑 장비라도 챙겨서 비양도에서 맛보기 캠핑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시계방향으로 섬을 여행한다면 비양도를 지나 소머리오름(우도봉)에 도착할 때쯤이면 몸도 나른하고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도봉에 오르기로 했다면 포기하지 말고 우도의 명물, 달달한 땅콩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힘을 내보자. 내가 먹었던 것은 바닐라 맛 투게더 아이스크림에 땅콩가루를 뿌린 듯한 맛으로 생각보다 평범했지만 지친 몸에 당을 보충하기에는 딱 좋았다.
우도봉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바람의 언덕과 우도봉 정상, 우도 등대까지 모두 들러볼 수 있다. 길이 잘 정비되어있지만, 경사가 급하고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운동화와 모자를 챙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정상을 들러 우도 등대까지 가려면 왕복 2시간은 잡아야 해서 여분의 시간을 넉넉히 두고 방문해야 한다. 여유가 없다면 바람의 언덕까지만 가도 우도와 제주도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멋진 경치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우도봉은 꼭 들러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밥도 먹고 커피도 한잔 마시면서 여유롭게 섬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제주 본섬으로 출발하는 마지막 배 시간이 가까워지는 오후 5시쯤 되면 섬은 정말 조용해진다. 왁자지껄하던 해변의 식당과 카페는 외부 좌석을 정리하며 마감 준비를 하고, 자전거와 전기차로 북적대던 도로도 텅 비게 된다. 나는 잠깐이었지만 그때의 고요한 시간이 너무 좋았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고, 보이지 않던 평화로운 마을의 일상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떠나기 전의 짧았던 그 시간이 너무 아쉬웠고 대부분의 여행객이 떠난 어둡고 조용한 우도의 밤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만의 여행 테마인 러닝을 제주에서 가장 먼저 뜨는 해를 보며 비양도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배에서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에 '우도에서 1 박하기'라는 새로운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놓았다.
우도에는 유명한 명승지나 사진 포인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맛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우도를 신나게 한 바퀴 돌고 본섬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여행을 돌아보면 딱히 기억에 남는 장소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진첩에는 어딘지 모를, 이름 없는 장소들에서 찍은 아름다운 모습들이 많이 담겨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도를 여행하는 모든 순간이 너무 아름다웠어 기억 속에서 콕 집어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빨간 점은 우도로 들어오는 항구로 배 시간에 따라 하우목동항과 천진항 중 한 곳으로 오게 된다. 우도봉을 가장 마지막 코스로 넣을 수 있도록 시계방향으로 우도를 도는 것을 많은 사람이 추천하는데 하우목동항으로 우도에 들어왔을 때는 산호해수욕장(서빈백사)만 잠깐 들렀다가 다시 시계방향으로 여행을 하는 것도 괜찮다. 파란 점은 우도의 대표적 관광지들로 왼쪽의 서빈백사 해수욕장부터 시계방향으로 하고수동 해수욕장, 비양도, 검멀레 해변, 우도봉이다. 우도의 안쪽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학교와 마트 등이 있다. 우도에서 숙박하는 게 아니라면 섬의 안쪽으로 들어갈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