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있다. 여성들이 태어나 자라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그리고 결혼하여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여성들만 겪을 수 있는 불합리하고 차별받는 일들을 풀어낸 소설이다.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여성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나는 그보다 더 일찍 태어난 세대이고 내 또래들은 70년생 이미경들이라고 칭할 수 있겠다.
1970년 전후로 태어난 이미경들은 외동이나 남매, 자매가 드물었다. 최소한 삼 남매 내지 세 자매였고 그 이상의 형제들로 구성된 경우도 흔했다. 아이들이 생기는 대로 낳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아들을 낳기 위한 목표도 있었다. 지금의 저출생 현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그 무렵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가족계획이라는 제도를 시행했고 그에 맞추어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를 내세웠다. 그 표어는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라는 표어로 바뀌었다.
어쨌든 70년생 이미경들은 아들들에 비해 진학률이 높지 않았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옆에 모자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과 우리 중학교와 자매결연 같은 것을 맺었는지 그 공장 여직공들이 우리 학교 야간부에 많이 다녔다.
직공들은 우리보다 몇 살 위 언니들이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일이 끝난 저녁에 학교에 와서 공부를 했던 것이다.
몇 년 후 내 중학교 동창들도 그와 비슷한 길을 걷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연합고사를 치러야 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렵고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취업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 중에서도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닌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대학을 가는 대신 취업을 하기 위헤서였다. 일부 명문 여상은 연합고사 커트라인이 높아서 반에서 몇 등 안에 들어야 진학할 수 있기도 했다. 대개 형제가 많은 집의 딸들이었다. 공부 잘하는 딸 대신 아들을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딸은 일찌감치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은 직장인이 되었고 대개 남동생이나 오빠의 학비를 대는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심지어 중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공장 직공이나 안내양으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을 내 동창들과 언니들....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