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동화] 그 바위, 그 바우 2

그 소년을 본 적이 있다

by 숲별바람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

햇살이 미지근하게 내 몸을 적시고 있던 오후, 나는 한 소년을 보게 되었어.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의 손을 잡고 동학사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그 소년이 전혀 낯설지 않았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야. 그 소년을 보자마자 내 가슴은 뜨겁게 달구어지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던 거야. 나도 모르게 비 오듯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


그 소년은 잠깐 내 곁을 스쳐갔을 뿐이지만 나는 그 후로 며칠 동안 끙끙 앓으며 지내야 했지. 그건 가슴앓이와도 같았어.

"바위 할아버지, 어디가 편찮으세요?"

아기 바람이 걱정되는 듯 내 위에 앉더니 내 몸을 가볍게 쓰다듬으려 묻더군.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햇살에 반짝이는 계곡물에 눈길만 주고 있었어.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지.

"그 소년이야, 그 소년."

아마 누가 봤다면 미쳤다고 했을 거야. 멍한 눈길로 허공을 보며 계속 그 말만 중얼거렸으니 말이야.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잊지 못했던 그 소년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어. 정말 꿈같은 일이었어.

어느새 내 기억의 방향은 세월의 강을 훌쩍 뛰어넘어 아득한 옛 일을 더듬고 있었지.




내가 그 소년을 처음 알게 된 때는 천 년도 훨씬 넘은 아득한 옛날이야. 그즈음 이 땅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삼국이 아우러져 있었지.

나는 그때만 해도 아주 넓고 큰 너럭바위였어. 지금은 세월과 비바람에 깎이고 닳아 이렇게 작은 바위가 되었지만 말이야.

세상은 뒤숭숭했어.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힘이 세어지더니 백제를 침범해 왔거든.

백제의 힘은 아주 약해져 있었어. 오랫동안 흉년이 든 데다가 임금님이 나라 다스리는 일에 소홀하여 충신은 감옥에 갇히고 간신들만 날뛰던 때였어. 그러던 차에 신라가 쳐들어온 거야.

내가 있던 곳에서도 백제와 신라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어. 하지만 누구나 짐작하고 있었지. 머지않아 신라가 승리할 것임을...... 다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울 뿐이었지.




처음에 신라는 경상도에 있는 작은 나라였어. 하지만 그 나라가 길러낸 화랑들의 힘은 무척 컸단다. 신라가 강해진 것은 화랑들의 공이 컸어.

나는 그때 그 소년을 알게 된 거야. 열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앳된 모습의 소년이었어.

소년의 이름은 바우였어. 그 당시 신라군과 싸우던 백제 군사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어.

그래서 같은 백제 군사들은 바우를 유난히 귀여워하고 아껴주었어. 전쟁 중에도 따스한 인간애는 있는 법......

더구나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으니 군사들은 한마음 한뜻이 될 수밖에.




바우는 가난한 과부의 아들이었어.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었지.

바우는 어머니를 미워했단다. 집이 가난하다고 누이를 궁녀로 들여보냈기 때문이야.

궁녀가 되면 밥을 굶지 않아도 되었지. 궁궐에서 곡식과 옷감을 수시로 보내주니까 전보다 넉넉하게 살 수 있었어.

하지만 바우의 집이 누이로 인해 살만해졌다 해도 바우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어. 아무리 못 먹고 못 입어도 누이와 함께 사는 게 더 좋았을 거야.


신라가 쳐들어와 군사들이 많이 필요하게 되자 바우는 아무 망설임 없이 집을 뛰쳐나와 전쟁에 참여했어. 홀로 남은 어머니가 눈물로 말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어.

바우는 누구보다 누이가 걱정되었어. 나라가 멸망하면 궁녀들이란 적국으로 끌려가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알 수 없으니까.

"어머니가 무척 보고 싶겠구나. 아직 어린 나이인데......"

가끔 아저씨뻘 되는 군사들이 물어도 바우는 도리질만 했지.

하지만 밤이면 바우가 나직하게 휘파람 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 달을 올려다보며 부르는 휘파람 소리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지.

파르스름하게 땅 위에 드리우는 달빛, 그 아래에 서 있는 바우를 볼 때면 가슴이 저릿저릿하게 시리곤 했어.

그리고 나는 분명히 들었어. 바우가 어머니를 부르며 흐느껴 우는 것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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