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두리에서 길을 찾다 3
이런 비슷한 제목의 책이 있다.
그 책에서는 학교가 아니라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했다.
나에게는 그곳이 학교였다.
한 반에 60명, 70명은 예사인 콩나물교실에서 공부를 했다.
획일적이고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학교생활이 나의 정서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열정적인 선생님, 실험정신이 강한 선생님들이 계셨던 덕분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국어과목을 맡으신 분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종례를 할 때 칠판에 우리나라 근현대시를 쓰시고는 아이들에게 필사하게 하셨다.
아마 한 달에 한번 정도였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 > <소년>, 김동명 시인의 <내 마음은>이라는 시가 기억에 남는다.
교실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선생님이 시에 대해 설명하고 함께 감상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나는 공책에 시만 쓴 게 아니라 그에 어울릴 삽화도 그려 넣었다.
공부나 시험과는 상관없지만 제자들에게 좋은 시를 알려주려 하셨던 담임선생님의 열정이 존경스럽다.
고등학생일 때 음악선생님이 독특한 시험문제를 주셨다.
몇 가지 정통 클래식을 지정해서 듣게 하고는 시험시간에 방송으로 음악을 틀어서 작곡가와 제목을 쓰게 하는 문제였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포함된 몇 곡이었다.
선생님은 자꾸 들어서 귀에 익히라고 하셨다.
그래서 해당 카세트테이프들을 사서 아침마다 틀어놓고는 등교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지루해했지만 내신에 반영되는 시험이니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했다.
실제로 시험문제는 몇 개 되지 않았고 난이도도 낮았다.
시험이 끝나고 아이들은 들인 시간에 비해 문제 비중이 작다고 허탈해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하니 선생님은 계획이 있었던 거였다.
억지로라도 클래식을 듣게 하여 클래식과 친해지라는 의도였다.
사실 그전까지는 세미클래식이나 아는 정도였지 협주곡이나 몇 악장으로 구성된 클래식은 전곡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선생님께 고맙다.
입시 위주의 학교교육에 그런 시험이 없었다면 시간을 내서 정통 클래식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을 테니까.
중학교에서 방학숙제로 내준 박물관 관람기는 경복궁을 처음 가고 박물관을 처음 관람한 계기가 되었다.
그때는 박물관이 경복궁 안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박물관 내에 아주 커다란, 거의 집채만 한-어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불상이 있었고 그 앞에 관람객들이 던져 넣은 동전들에 지폐까지 기득 쌓여 있어서 무척 놀라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저 많은 돈들을 누가 훔쳐가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었다.
미술교과서에는 서양화가들의 작품이 손바닥만 한 크기로 실려 있었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반 고흐, 시슬레의 명화들을 감상하면서 서양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학년마다 봄가을에 가는 소풍, 고2 때 갔던 수학여행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학창 시절에 여행을 갈 수 있었을까?
우리집은 여행과는 담을 쌓고 살았으니 말이다.
학교 덕분에 동구릉과 서오릉 등의 왕릉, 행주산성, 경주를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한 영향으로 성인이 되어서 서양미술과 관련된 전시회를 가고, 박물관 관람을 즐겨한다.
역사 유적지를 찾아간다.
근현대시를 좋아한다.
학창 시절에 뇌리에 각인된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 잠시 멈추어 감상한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학교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