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금 중에서 후궁이 한 명도 없었던 분이 있다.
바로 18대 임금 현종이다.
현종의 비(妃)는 명성왕후인데 현종에게는 명성왕후 외에 후궁이 없었다.
조선시대 임금 중에 후궁이 없던 분은 경종(장희빈의 아들)과 순종(조선 마지막 임금)도 있었지만 두 임금은 중전이 승하한 후 계비(두 번째 중전)를 두었으니 현종처럼 중전 한 명만 아내로 두었던 임금은 전무후무하다.
왕들은 자손을 많이 두어야 했고 궁궐에는 많은 궁녀들이 있기에 아무리 재위 기간이 짧아도 후궁은 여러 명 있게 마련인데 어떻게 15년의 재위기간 동안 중전 한 명만 있었을까?
어린 단종이나, 8개월 밖에 왕위에 있지 못했던 인종에게도 후궁이 있었다.
단종은 왕비를 간택할 때 삼간택까지 올라갔던 후보들을 후궁으로 삼은 것이어서 왕이 되어 마음에 든 궁녀를 취한 사례가 아니긴 하다.
이유를 찾자면 명성왕후의 친정이 대단한 명문가였다.
조부가 대동법을 실시했으며 영의정까지 올랐던 김육이다.
그리고 명성왕후의 성격이 강하고 사나웠다.
명성왕후는 현종의 사촌들인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을 경계하여 '홍수의 변'을 일으켰을 정도로 정치적 야망을 드러낸 인물이다.
혹시라도 아들인 숙종의 왕위를 위협할까 하여 미리 화근을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현종은 재위기간 내내 예송논쟁에 휘둘렸던 유약한 왕이었다.
어쩌면 현종이 명성왕후에 대한 사랑이 극진해서 후궁을 두지 않았을까?
아마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섞였을 것이다.
명문가 출신에다 여장부 기질의 강한 아내, 구태여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고 중전과 갈등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후궁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여파로 왕실에 성인까지 자란 왕손은 한두 명에 불과해 아슬아슬하게 왕의 계보를 이어가게 되었고 결국 철종이나 고종처럼 왕의 직계자손이 아닌 먼 왕족이 왕이 되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이야기들을 볼 때 왕실에서는 후궁도 왕의 세력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