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시작에 대한 오해

과학과 신앙, 그리고 불확실성을 환영하기

by 탱귤도령


코스모스 다큐멘터리 오프닝(1979)


코스모스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 있으며, 미래에 있을 그 모든 것이다.


- 칼 세이건(Carl Sagan)


그때는 존재(sat)도 없었고, 비존재(asat)도 없었다. 공중도 없었으며 그 너머의 하늘도 없었다. 무엇이 만물을 가리고 있었는가? 어디에, 누구의 보호 아래 있었는가?


- 리그베다(Rig Veda), 창조의 노래(Nasadiya Sukta) 1연



해답을 갈구하는 인간


우리는 '시작'이 있는 이야기에 익숙하다. 신화는 언제나 태초의 혼돈을 잠재우는 빛의 출현으로 시작하고, 근대 과학 역시 138억 년 전 '빅뱅'이 일어난 후 시간과 공간이 탄생했다고 가르쳐왔다. 오늘날 대중에게 빅뱅은 단순한 과학 이론을 넘어, 현대판 ‘창세기’처럼 소비되고 있다.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는 문장은 종교인들에게는 신의 지문을 찾을 수 있는 증거로, 과학적 대중에게는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현대 우주론의 최전선에서 '빅뱅'은 더 이상 절대적인 '시작 시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빅뱅은 시간과 공간의 절대적 시작이라기보다, 현재의 물리 법칙이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는 경계일 가능성이 크다. 138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는 우리가 관측 가능한 현재 우주 진화 단계의 시작점일 뿐이며, 우주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됐거나 심지어 영원할 수도 있다는 것이 현대 우주론의 새로운 추세이다. 한마디로,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흐름 속에 두둥실 떠있을지 모른다.



스크린샷 2025-12-28 132432.png 이제 무한을 향해 가자(Et sic in infinitum) - 로버트 플러드, 1617



빅뱅 ≠ 시작, 빅뱅 = 전이(轉移)


표준 우주론에서 말하는 빅뱅의 시작점인 '특이점(Singularity)'은 물리적으로 매우 기이한 개념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방정식을 거꾸로 돌리면 우주는 무한한 밀도와 무한한 온도를 가진 한 점으로 수렴한다. 로저 펜로즈와 스티븐 호킹의 특이점 정리에 의해 수학적으로 유도된 이 개념은 오랫동안 우주론의 정설로, 우주 탄생 표준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물리학에서 ‘무한대’가 등장한다는 것은 대개 설명의 완성이 아니라, 이론의 한계를 뜻한다. 이는 마치 컴퓨터가 처리할 수 없는 연산을 만났을 때 오류 메시지를 띄우는 것과 같다.


특이점은 ‘모든 것이 시작된 점’이라기보다, 이론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지점에 가깝다. 놀랍게도 많은 현대 우주론 학자들 사이에는 특이점의 존재를 신뢰할 수 없다는 광범위한 합의가 존재한다. (니아예시 압쇼디, 필 헬퍼, 2025) 뜨거운 빅뱅은 실제 역사적 사실이나 시간의 절대적 시작점으로서의 특이점은 신기루에 가깝다. 빅뱅은 ‘무에서의 창조’가 아니라, 이전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전이(Transition)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즉, 빅뱅 이전에 무엇인가가 있었을 가능성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다음 소개하는 내용은 빅뱅이 우주의 탄생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임을 설명하는 이론들이다.


1. 인플레이션 이론(Inflation Theory): 빅뱅 이전의 폭발적 팽창


앨런 구스(Alan Guth)가 제안한 인플레이션 이론은, 우리가 ‘뜨거운 빅뱅’이라 부르는 상태 이전에 극단적인 팽창 국면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시기에는 진공 자체가 막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 에너지가 입자와 복사로 바뀌며 우리가 아는 뜨거운 빅뱅의 상태를 만들어냈다.


인플레이션은 한 번 시작되면 우주 전체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인플레이션이 국소적으로 멈춘 '거품 우주' 중 하나일 뿐이다. 이 모델에서 빅뱅은 우주 전체의 시작이 아니라, 끝없이 팽창하는 거대한 다중 우주 속에서 우리들이 사는 동네가 만들어진 국소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태초'는 우리가 관측 가능한 시간 너머로 무한히 후퇴한다.


2. 끈 이론(String Theory): 충돌하는 막(Membrane)들의 노래


만물의 최소 단위를 점 입자가 아닌 진동하는 '끈'으로 보는 끈 이론은 특이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 끈은 물리적으로 더 이상 압축될 수 없는 최소 크기를 가지기 때문에, 우주가 한 점으로 수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끈 이론의 확장인 에크피로틱 모델(Ekpyrotic Model)'은 우리 우주를 고차원 공간에 떠 있는 3차원 '막(Brane)'으로 상정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빅뱅은 두 개의 막이 고차원 공간에서 서로 충돌할 때 발생하는 거대한 에너지 방출 사건이다. 막들은 주기적으로 충돌과 반발을 반복하며, 빅뱅은 우주의 탄생이 아니라 고차원적 충돌이 빚어낸 거대한 불꽃놀이의 한 장면에 지나지 않는다.


3. 루프 양자 우주론의 '빅 바운스(Big Bounce)'


공간 자체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이 이론은 우주가 한 점으로 수축하다가 특정 임계 밀도에 도달하면 중력이 거대한 '반발력'으로 변한다고 주장한다. 풍선을 압축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공기 분자들 사이의 척력 때문에 튕겨 나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현재의 우주 이전에는 수축하던 우주가 있었고, 그 우주가 붕괴하다가 특정 지점에서 다시 팽창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빅뱅이다. 여기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우주는 그저 영원히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거대한 호흡'을 하고 있을 뿐이다.


4. 홀로그래픽 빅뱅(Holographic Big Bang)


이 가설은 우리 우주를 4차원 상위 우주에서 발생한 사건의 '투영'으로 본다. 4차원의 거대한 별이 블랙홀로 붕괴할 때, 그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에 남겨진 정보들이 3차원적인 팽창 우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모델에서 시간의 시작은 우리 우주 내부의 사건일 뿐, 우주 전체의 근원적인 탄생과는 무관하다. 우리는 거대한 폭포수의 물방울 속에 살며 그 폭포의 시작을 우주의 탄생이라 부르고 있는 셈이다.


5. 등각 순환 우주론(Conformal Cyclic Cosmology, CCC)


이 이론은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우주의 숙명을 역설적으로 이용한다. 우주가 무한히 팽창하여 모든 입자가 붕괴하고 빛(광자)만 남게 되면, 질량이 없는 광자들에게는 시간과 거리라는 개념이 사라진다. 이때 우주의 크기는 수학적으로 의미를 잃게 되며, 이 '텅 빈 거대함'은 역설적으로 '빅뱅 직후의 조밀함'과 수학적으로 동일해진다. 우주는 그렇게 한 시기를 마감하고 다음 시기로 부드럽게 넘어간다. 빅뱅은 종말과 탄생이 만나는 '매음새'일 뿐이다.


6. 블랙홀 우주와 우주론적 자연선택


리 스몰린(Lee Smolin)은 다윈의 진화론을 우주론에 적용한 '우주론적 자연선택(Cosmological Natural Selection)' 가설을 제안했다. 그는 블랙홀의 중심에서 시공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기 우주(Baby Universe)가 팽창한다고 가정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블랙홀을 많이 만들어내는 우주가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리게 된다. 수많은 세대가 지나면, 다중우주는 생명 탄생에 최적화된 우주들로 채워지게 된다. 우리 우주는 그 이전 우주의 블랙홀에서 탄생한 우주들의 영원한 연쇄망 속의 한 페이지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7. 스스로를 창조하는 닫힌 시간 곡선(CTC) 모델


일반 상대성 이론은 특정 조건(ex. 웜홀) 하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경로인 '닫힌 시간 곡선(Closed Timelike Curve)'를 허용한다. 이 모델에서 초기 우주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여 자기 자신을 다시 낳는 구조를 가진다. 우주는 외부 원인 없이 스스로 자신의 원인이 된다. 이는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우주는 스스로를 창조했다"는 답으로 대체한다.


(이외에도 수많은 모델이 있으나, 모두 다 알 필요는 없으니 생략하도록 하겠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빅뱅 자체는 지난 100년 간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수행한 수십 가지 실험과 관측에 의해 뒷받침되는 확고부동한 과학적 사실이라는 점이다. 다만 '빅뱅으로 우주가 뽕하고 탄생했다'는 대중적 견해와 다르게, 빅뱅은 무(無)에서 유(有)가 창조된 순간이 아니라 매우 뜨겁고 조밀한 상태에서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한 특정 시점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빅뱅 이전에도 우주는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지금과는 다른 상태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21253c985be259aa6dd8bfbf66ae4787.jpg 우주의 중심 - 프란티셰프 쿠프카, 1932~33


몇몇 종교인들의 오판


위에서 길게 설명했듯이, 과학자들은 더 이상 빅뱅을 무에서부터 우주가 시작된 사건으로 말하지 않는다.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창조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기독교 신학자들은 우주의 탄생을 creatio ex nihilo(無에서부터의 창조)로 설명한다. 다시 거듭 강조한다. 빅뱅 이론이 설명하는 내용은 138억 년 전 우주는 매우 뜨겁고 밀도가 높은 상태에 있었고, 그 이후 팽창해 왔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무(無) → 유(有)가 아닌 특정 상태 → 다른 상태를 기술하는 이론이다. 가톨릭교에서는 교황 비오 12세가 섣불리 빅뱅을 창세기의 실제적 증거로 환영했다가 빅뱅 이론의 창시자인 조르주 르메트르 신부에게 만류당했던 일화도 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 개념을 어설프게 빅뱅 이론에 적용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빅뱅 이론을 가장 잘못된 방식으로 환영한 집단은 안타깝게도 종교 변증론자들이었다. 그 명단은 비단 비오 12세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신학자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liliam Lane Craig)는 중세 이슬람 철학에 영감을 받아 '칼람 우주론적 논증(kalam cosmological argument)'을 내놓았다. 그는 "존재하기 시작한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우주는 존재하기 시작했다(빅뱅). 그러므로 우주에는 초월적 원인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 논증의 핵심은 빅뱅을 '절대적 시작'으로 고정하는 데 있다.


문제는 이 주장이 현대 우주론의 발전된 논쟁 지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크레이그는 보르드-구스-빌렌킨(BGV) 정리를 인용하며 인플레이션 우주라도 반드시 시작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우주론의 흐름은, 특정한 우주의 시작점 개념을 문제 삼으며 영원성 또는 순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BGV 정리에 기여했던 앨런 구스도 "우주는 시작 없이 영원할 가능성이 더 높다'라고 말한다. 정말 영리한 호교론자(護敎論者)라면 시작이 없는 영원한 우주와 신의 창조를 조화시킬 신학적 이론을 정교화하는 작업에 골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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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과학자들: 과학주의를 경계하라


독단적 태도가 종교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종교적 도그마 못지않게 주류 과학계도 '자연주의적 독단'에 빠져 있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의 과학적 성취와 놀라운 실험 결과들에 도취된 나머지 형이상학적 질문에까지 과학의 권위를 확장하려 한다. 일례로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저서 《위대한 설계》에서 과학이 모든 철학적 질문에 답할 것이라며 호기롭게 철학의 죽음을 선언한다. 《무로부터의 우주》를 펴낸 물리학자 로렌스 크라우스도 과학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나 철학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냉소적 태도를 보인다. 이외에 번역되어 있는 과학자들의 책을 읽노라면, 이미 이 분들이 빅퀘스천을 전부 해결한 듯 느껴질 정도다. 과학적 연구들이 그 자체만으로 거대한 철학적 질문에 궁극적 답변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말이다.


더 나아가, 현재의 주류 우주론인 인플레이션 이론과 끈이론은 실험적 증거가 아직 부족한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음에도 마치 확정된 진리처럼 군림하곤 한다. 이러한 태도는 과학적 탐구라기보다는 종교적 도그마 수호에 가깝다. 오직 유물론적·자연주의적 설명만이 옳다는 전제 아래, 우주론적 미스터리를 해결하려는 창의적 대안을 비과학적이라며 배척하는 과학계의 권위주의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진정한 과학적 사고는 정답을 확신할 때가 아니라 지치지 않는 의심과 오류를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확립 가능하다고 과학자들 본인이 그토록 강조하지 않았는가?



1594px-Europe_a_Prophecy_copy_K_plate_01.jpg 옛 적부터 항상 계신 이 - 윌리엄 블레이크, 1794



신앙을 구원하라: 법칙의 설계자로의 후퇴


현대 우주론의 파상공세 속에서도 신이라는 개념의 유효성을 지키고 싶은 종교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제 상당히 축소된 신의 지위를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우주가 영원하다면 신은 제1원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가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데 왜 창조주라는 난해한 개념을 공연히 추가해야 하는가? "필요 이상의 실체를 가정하지 말아라.(Occam's razor)"


대신 종교인들의 필승 전략은 '법칙의 설계자'로서의 신을 옹호하는 것이다. 물리적 메커니즘을 통해 우주의 탄생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메커니즘을 가능케 하는 법칙의 기원 문제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다. 많은 과학자들의 주장대로 우주가 영원하고, 스스로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자. 여전히 "우주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법칙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유효하다. 영원한 우주 자체가 존립할 수 있게 만드는 초월적 존재를 신으로 명명하는 것에는 아무런 논리적 오류가 없다.


그러나 이 전략 또한 까다로운 난제에 직면한다. 설령 우주에 설계자와 유지자가 있다 한들, 그 존재가 왜 하필 성경과 꾸란, 힌두경전에 적혀 있는 인격신이어야 할까? 법칙의 설계자는 아무런 의지(Will)가 없는 수학적 원리일 수도 있고, 다른 다중우주의 초(超) 문명일 수도 있으며 우스갯소리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일 수도 있다. "우주의 설계자가 있다"는 명제와 "그 설계자는 내가 믿는 신이다"라는 결론 사이에는 수억 광년이 넘는 아득한 논리적 비약이 숨어있다.


종교인들이 이 논리적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을 반박하는 일보다 훨씬 더 불가능에 가까운 형이상학적 논증의 정교화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이다. 신학계의 아인슈타인이 나오지 않는 이상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결국 옛 지혜를 다시금 소환할 수밖에 없다. 종교 교리를 과학의 언어, 과학논문들에 기대어 규명하기보다는 키르케고르가 말했듯이 '믿음의 도약', 즉 신앙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정직한 신앙인의 태도가 아닐까. 과학자들과 공연히 논쟁하느니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사유의 퀀텀 점프를 시도하는 길이 신앙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아닐는지.



41.283_ph_web-1.jpg 여러 개의 원들(Several Circles) - 바실리 칸딘스키, 1926




불확실성을 껴안다


우리는 다시 근본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주는 시작되었는가? 아니면 영원한가? 이 모든 배후에 지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이데거가《형이상학 입문》에서 적었듯이, 왜 세상은 무가 아니라 유인가? 수천 년 전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들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인간의 삶은 짧고, 사안은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이다."


21세기 최첨단 망원경으로 우주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위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의 뇌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포식자를 피하고 먹잇감을 찾는 용도로 진화했지, 다차원 공간과 우주의 기원을 사유하도록 설계되지는 않았다. 개미 한 마리가 전 지구 전체 생태계를 사유할 수 없듯이, 우리 또한 우주라는 거대한 구조의 일부만을 겨우 가늠하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우주의 기원과 초월적 원리의 존재에 대해, 적어도 현재의 인식 조건 안에서는 ‘알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누군가는 인식의 한계를 비관적으로 판단할 테고 누군가는 이를 독단에서의 해방이라고 부를 것이다.


"판단을 중지하면, 그 뒤에 평정이 따른다(ἐποχῇ παρακολουθεῖ ἀταραξία)." 고대 회의주의 철학자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전언이다. 확신은 감옥이다. 인격신이 우주를 만들었다는 확신은 우주의 광대함을 신의 섭리와 목적이라는 좁은 틀에 가두고,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했다는 확신은 우주의 신비를 메마른 수학적 공식과 법칙에만 국한하고 그 이상을 사유하지 못한다. 우주와 세계·자연에 대한 교조적 의견을 버릴 때, 우리는 비로소 지적 겸손이라는 해방감을 얻는다.


회의주의자들의 계보를 이어 우리도 불확실성의 미학을 껴안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모른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그 순간, 코스모스가 우리 앞에 살아있는 신비로 다시 거듭난다. 지적 오만을 버리고 불가지론의 거대한 바다에 뛰어드는 것, 그것이 이 광막한 코스모스 앞에 선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도 해방적인 자세일 것이다.


28781_17681_4215.jpg 시바의 창조 춤(nataraja) - '두려워 말라'는 뜻의 아브하야 문드라 손짓(अभयमुद्रा)을 취하고 있다



"진실로 누가 아는가? 누가 여기에서 그것을 선언할 수 있는가? 이 창조물은 어디서 왔는가? 이 태초의 창조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 이 모든 창조가 어디서 왔는지, 그가 그것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만들지 않았는지, 가장 높은 하늘에서 이 세상을 굽어보는 자만이 알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조차도 알지 못할 수도 있네."


- 리그베다(Rig Veda), 창조의 노래(Nasadiya Sukta) 7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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