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혐오의 서구 문화사
인류의 역사가 억압의 그늘에서 해방의 광장으로 진보해 왔다는 믿음은 과연 타당할까? 적어도 '성(性)'의 영역에서 이 낙관론은 빛이 바랜다. 고대 그리스 전장에서 서로를 껴안고 죽어갔던 남성 연인들을 보며 눈물 흘렸던 필리포스 2세의 시대에서, 동성애를 '신이 내린 벌'이나 '질병'으로 규정하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가두 시위까지, 그 이면에는 어떤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그리스 고전학을 전공한 해리 태너(Harry Tanner) 박사의『죄에 관한 퀴어한 이야기(The Queer Thing About Sin)』는 이 궁금증을 다룬다. 고전학자의 전문성과 복음주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겪었던 개인적 트라우마를 결합한 저자는, 호모포비아가 신성한 도덕 원칙이 아니라 대중을 통제하려 설계한 '자기절제의 정치학(politics of self-control)'의 산물임을 날카롭게 논증한다.
저자의 탐구는 "왜 성서가 쓰인 수천 년 전 사람들은 퀴어한 사랑을 죄라고 결정했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 이후 기독교 신앙에서 위안을 찾았던 저자는 친구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이 충돌하는 고통을 겪는다. 복음주의 공동체는 그에게 레위기 18장 22절을 인용하며 "남자와 동침하는 것은 가증한 일"이라고 가르쳤고, 그는 스스로를 '고치려' 잔혹한 전환 치료를 자원하기도 했다.
후일 전공한 고대 그리스어는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텍스트 분석 방법론을 공부하며, 그는 성서 또한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의 손을 거쳐 수정되고 해석된 '텍스트'임을 깨닫는다. 이는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맹목적 신앙을 파괴하는 동시에, 퀴어한 사람들이 영웅과 시인으로 대접받았던 고대 그리스의 풍요로운 세계로 그를 초대했다. 태너는 이후 박사 과정을 밟으며 호모포비아가 어떻게 서구 문화의 뼛속까지 스며들게 되었는지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서구 사회에서 고대 그리스는 흔히 '동성애의 낙원'으로 묘사되곤 한다. 19세기 오스카 와일드는 그리스의 동성애 문화를 '고결한 사랑'이라 예찬했고, 케네스 도버 같은 고전학자들은 철저한 '능동-수동'의 위계 모델로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태너는 이러한 시각들이 각 시대의 편견이 투영된 현대판 신화라고 지적한다. 실제 그리스의 성 문화는 도시국가마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고 평등했다.
가령 메가라와 보이오티아에서는 신분과 나이의 장벽을 넘어선 평등한 연인 관계가 존재했다. 보이오티아에서 발견된 술잔(skyphos)에 그려진, 하나의 망토를 함께 두른 두 남성의 모습은 당시의 결혼 의식과 일치하며, 그들이 맺었던 유대가 ‘사회적 동반자’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동성 연인을 찬양하는 사포의 시(詩), 참주를 살해한 동성 연인을 숭앙한 아테네 등 목록은 다채롭게 이어진다. 혐오가 없던 시절의 그들은 단순히 '성적 지향'이 아니라 '관계의 깊이'에 집중했다.
발명된 희생양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이고 논쟁적인 지점은 퀴어 혐오의 시발점을 ‘경제적 변화’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아테네가 제국주의적 팽창을 거듭하며 빈부격차가 심화하던 기원전 400년대 후반, 하층민의 굶주림은 극에 달했다. 이때 클레온(Cleon) 같은 선동가들은 대중의 분노를 돌릴 '희생양'을 물색했다.
그들이 선택한 무기는 바로 '자기 통제(sophrosyne)'였다. 클레온은 동성애를 자기 절제 없는 '부유한 엘리트들의 사치스럽고 방탕한 행위'로 낙인찍었다. 기원전 420년대, 단지 동성애를 즐겼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은 그리투스(Gryttus) 사건은 국가 권력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생명을 빼앗은 최초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한 마디로, 퀴어 혐오는 부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통치 기술로 역사에 처음 등장했다.
서구철학의 거인 플라톤 역시 이 혐오의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태너는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처형 이후, 생존을 위해 동성애 욕망을 지적 탐구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다고 분석한다. 플라톤은 사랑을 '천상의 사랑'과 쾌락만을 목적으로 하는 '세속적 사랑'으로 나눴다. 이 가르침은 훗날 사도 바울을 거쳐 기독교 교리의 핵심으로 이식된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차별의 근거로 삼는 성서 텍스트들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레위기의 조항들은 단순한 도덕적 단죄가 아닌, 유대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분류 체계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를 허무는 성적 행위는 신성한 질서에 위협이 되는 '부정한 혼합'으로 여겨졌고 정죄의 대상이 되었다. 소돔과 고모라 일화도 마찬가지다. 흔히 동성애 때문에 멸망한 사례로 인용되지만 저자는 에제키엘서 등을 인용해 소돔의 진짜 죄악이 '교만과 가난한 자를 돕지 않은 불친절'이었음을 밝힌다. 훗날 경제적 위기에 처한 기독교 통치자들이 공동체의 곤란을 타개하려 이 일화를 퀴어를 혐오할 명분으로 단순화했을 뿐이다.
로마인들에게 섹스는 쾌락보다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였다. 로마 남성이 타인을 정복하는 것은 남성성의 증명이었으나, 수동적 역할을 맡는 것은 수치로 여겨졌다. 역사가 수에토니우스 등은 황제들의 퀴어한 성생활을 기록하며 그들이 '국가를 관리할 절제력이 없는 인간'임을 강조하는 프로파간다 전략을 구사했다.
초기 기독교는 어떠했나. 사실 예수는 동성애를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는 전통적인 가부장 가족 모델에서 벗어난 이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남자친구(παῖς)를 치료해달라고 간청하는 로마군 백부장을 따뜻하게 맞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 대에 이르러 기독교는 억압의 종교로 변모한다. 저자는 바울이 사용한 단어들인 arsenokoitai(남자와 잠자는 자)와 malakoi(부드러운/수동적인 자)가 당시의 매춘 문화를 향한 비판이었을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결과적으로 성소수자를 탄압하는 가장 강력한 문자적 근거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성적 자기 통제는 경제적 빈곤 속에서 결속력을 다져야 했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었다.
책의 후반부에서 태너는 퀴어 탄압의 역사를 경제 위기 주기와 연결한다.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대역병과 경제 붕괴 상황에서 동성애자를 화형에 처해 신의 분노를 달래려 했던 사례나,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가 전쟁 부채를 충당하기 위해 동성애자들에게 벌금을 물렸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패턴은 현대에도 반복된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부상과 함께 등장한 '가족 가치' 강조로 증폭된 혐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확산한 성소수자 혐오는 모두 경제적 불안정을 소수자에 대한 공격으로 무마하려는 오래된 비극의 재연이다. 자원이 고갈되고 불평등이 심화하며 부채가 쌓일 때, 권력자들은 다시 '자기 절제'와 '전통 가치'를 무기로 혐오의 불길을 당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진리’라고 믿어온 금기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주머니와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는가? 호모포비아는 신성한 진리가 아니라, 인류가 경제적 공포에 대응하며 만들어낸 정치적 발명품일 뿐이다. 퀴어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단순히 소수자를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위기 때마다 반복되는 지배층의 기만적인 '희생양 정치'를 거부하는 일이다.
타인의 삶을 죄악으로 매도하는 '자기절제와 전통적 가치'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 맞서, 다시는 혐오의 사슬에 묶이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혐오를 선동하는 작금의 시대에 이 책의 통찰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