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과학자의 우정!

알베르 카뮈 그리고 자크 모노, 20세기의 천재들

by 탱귤도령


과학자와 철학자의 우정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용감한 천재: 과학자, 철학자, 그리고 프랑스 레지스탕스에서 노벨상까지 그들의 대담한 모험(Brave Genius: A Scientist, a Philosopher, and Their Daring Adventures from the French Resistance to the Nobel Prize)』 을 읽어보면 생각보다 흥미로운 케미를 엿보게 된다.


좌- 알베르 카뮈 우- 자크 모노


책의 주인공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자크 모노(Jacques Monod, 1910~1976)다. 저자 션 B. 캐럴(Sean B. Carroll)은 위스콘신 대학의 진화생물학자이자 세계적인 과학 저술가다. 그는 과학의 엄밀함과 인문적 통찰력을 결합해, 분자생물학자와 실존주의 철학자의 지적 탐구가 어떻게 하나의 운명적 궤적을 그려내는지 추적한다.


조심스럽게 개인적 기억을 덧붙이자면, 나는 고등학생 시절 카뮈의 글을 읽으며 질풍노도의 시절을 벗어났다. 자크 모노의 저작은 복잡한 화학식에 막혀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카뮈와 모노 모두 프랑스인이자 노벨상 수상자라는 사실은, 두 사람의 인연을 모르던 시절에도 자못 흥미로웠다. 이 책을 고른 이유 역시 그러한 궁금증이 적잖은 지분을 차지했다.


거대한 용광로


파리에 방문한 히틀러와 나치 지도부, The New York Times


역사의 격변기는 때로 평범한 이들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비범한 잠재력을 깨우는 촉매제가 된다. 디드로의 말처럼, 천재성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지만 비범한 사건이 그 질량을 가열하지 않는 한 무감각한 상태로 남기 마련이다. 1940년 나치 독일의 파리 함락은 바로 그 가혹한 촉매제였다. 당시 알베르 카뮈는 26세의 무명작가였고, 자크 모노는 30세의 박사 과정 학생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치 점령이라는 비극은 이들을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카뮈는 군홧발로 짓밟히는 조국을 보며 세계의 부조리와 폭력을 절감했고, 모노는 소아마비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총을 들었다.


저항의 불꽃 속에서 맺어진 운명적 우정


1944년 바리케이드에서 매복 중인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원들, The New York Times


모노와 카뮈는 각각 자기 방식으로 전체주의 체제에 맞섰다. 두 사람 모두 레지스탕스였고,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목숨을 걸고 자유를 지키려 투쟁했다. 카뮈는 지하 저항 신문 『콩바(Combat)』 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매일 밤 게슈타포의 눈을 피해 기사를 썼다. 그는 기사 하나를 쓰고자 목숨을 걸면서 단어의 진정한 무게를 배워갔다. 모노는 철도 파괴 작전과 무기 투하를 지휘하는 저항군 참모로 활약했다.


이러한 '공통의 모험'은 두 사람 사이에 깨지지 않는 연대를 형성했다. 카뮈는 1957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직후 모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진정한 우정을 느끼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당신은 그중 한 명"이라며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카뮈는 피카소나 사르트르, 오웰과 같은 거장들과 교유하면서도 "내가 아는 단 한 명의 진정한 천재는 자크 모노뿐"이라고 공언할 정도로 모노의 지적·인간적 역량을 높게 평가했다.


맹목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다


알베르 카뮈 <반항하는 인간> 초판 표지 (1951), Wikipedia


두 사람의 우정은 단순히 과거의 전우애에 머물지 않았다. 194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이데올로기의 광풍 속에서 두 사람의 '용기 있는 천재성'은 더욱 빛났다. 소련의 어용 과학자 리센코가 현대 유전학을 '부르주아 과학'이라 매도하며 사이비 과학을 퍼뜨릴 때, 모노는 이를 "이데올로기적 테러리즘"이라 규정하며 단호히 비판했다. 이는 당시 프랑스 지성계를 지배하던 공산주의 노선에 정면으로 맞서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카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반항하는 인간』을 통해 소련 전체주의 체제를 고발했고, 이로 인해 장 폴 사르트르를 비롯한 동료 지식인들과 결별하며 고립을 자초했다. 그러나 이 고립은 모노와의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 직업과 배경은 달랐으나, 두 사람은 정중한 매너 속에 깊은 도덕적 헌신을 품은 동지로 남았다.


과학과 철학의 창조적 만남


자크 모노, corbis


이 책의 백미는 생물학자 모노의 연구와 철학자 카뮈의 사상이 어떻게 창조적으로 교차하는지 설명하는 지점이다. 모노는 유전자 조절 메커니즘인 오페론(Operon) 이론을 정립해 현대 분자생물학의 기초를 닦았다. 모노는 자신의 과학적 발견을 철학의 층위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카뮈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모노의 대표작 『우연과 필연(Chance and Necessity)』 은 제목을 고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경구에서 따왔지만, 핵심 주제는 카뮈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모노는 우주에 인간을 위해 예정된 계획이나 목적은 없다고 보았다. 인간을 창조의 정점에 두었던 기존의 세계관을 뒤집는 생각이었다.


모노에게 인간의 존재란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어떠한 당위도 목적도 없는 철저한 생물학적 확률 게임의 결과였다. 모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인간은 광대한 우주의 가장자리에 홀로 서 있는 이방인이며,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외부의 권위는 존재하지 않다고. 모노의 결론은 카뮈가 말한 '부조리(Absurd)', 즉 의미를 갈구하는 인간과 우주의 침묵 사이의 모순과 정확히 일치했다. 절대적 신(神)에 기대지 않고, 오직 인간 자신의 선택을 통해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는 모노의 주장은 카뮈의 실존적 반항을 생물학적 언어로 번역한 것과 다름없다. 실제로 모노는 『우연과 필연』 의 첫머리에 카뮈의 『시지프 신화』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며 카뮈에게 받은 영향을 자랑스레 드러냈다.


바위를 끌어올리는 투쟁


알제리 전쟁


카뮈와 모노는 단순히 머리가 좋은 천재를 넘어, 진실을 좇아 안락함과 명성을 기꺼이 포기한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카뮈는 알제리 전쟁 당시 양측의 폭력을 모두 비판하다가 또다시 지식인 사회에서 고립되었고, 모노는 68 혁명 당시 최루탄이 터지는 바리케이드 위에서 부상당한 학생을 부축하며 지식인의 책무를 몸소 실천했다.


이 책은 두 지성인의 연대기가 한 시대를 어떻게 풍미했는지를 보여준다. 카뮈는 46세의 이른 나이에 '부조리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모노는 카뮈의 사후에도 공적인 영역에서 인권과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모노가 헝가리 혁명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소련에 핍박받던 동료 과학자들의 탈출을 도왔던 일화나, 피임의 자유를 위해 보수적 종교인들과 맞섰던 행적은 모노가 카뮈가 묘사한 '반항하는 인간'이었음을 예증한다.


이 책은 바위를 굴려 올리는 모든 인간, 80억 명의 시지프스에게 보내는 찬가다. 카뮈와 모노는 우리에게 우주에 정해진 의미는 없으나, 그렇기에 우리가 스스로 의미를 창조해 가는 모든 순간이 고귀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역사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개인의 주관과 실존에 충실했던 두 천재! 그들은 특정 진영이 아니라 사실과 양심에 충성하는 태도를 고수했다. 교조주의와 혐오가 다시 득세하는 오늘날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에토스(Ethos)가 아닐까.


Brave Genius - Sean B. Carroll,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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