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위한 예술을 예찬하다

예술을 예술이도록 하라

by 탱귤도령


오늘날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다분히 '기능적'이다. 작품 앞에서 우리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효용이 있는지, 어떤 정치적 올바름을 대변하는지, 혹은 얼마나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던지는지를 먼저 묻는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며 "예술은 그 자체로 존재할 권리가 있다"라고 일갈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오늘 다룰 책의 저자인 제드 펄(Jed Perl)이다.


Jed Perl (1951~)


제드 펄은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비평가로,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에서 20년간 미술 비평을 담당하며 동시대 비평의 최전선을 지켜왔다. 그는 단순한 감상 비평을 넘어 학구적인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예술의 정수를 전달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가 쓴 책 『권위와 자유: 예술의 방어(Authority and Freedom:: A Defense of the Arts)』 는 단순히 예술을 찬미하는 에세이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성역이 침범당하는 시대에 던지는 일종의 비평 선언문이다.



예술의 심장을 뛰게 하는 두 파동


Edward_Burne-Jones_The_Golden_Stairs.jpg 에드워드 번 존스 - 황금계단 (1880)


이 책의 핵심적인 철학적 토대는 권위(Authority)와 자유(Freedom)라는 두 힘의 역학 관계다. 펄은 이 두 힘이 예술의 생명력 그 자체라고 말한다. 여기서 '권위'는 흔히 생각하는 억압적인 권력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을 지탱하는 '질서 부여의 충동'이자 전통, 형식(Form)을 의미한다. 화가에게 사각형 캔버스가 주는 제약, 소설가에게 이야기의 기승전결 구조가 주는 제약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권위이다.


반면 '자유'는 그 권위에 의문을 던지고 실험하며 유희하는 마음이다. 펄은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말한 "전통과 발명 사이의 오랜 싸움"이야말로 예술이 존재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권위라는 제약이 있기에 상상력은 더욱 날카로워지며,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통해 진정한 자유가 발현된다. 저자의 통찰에 따르면, 예술가는 귄위와 자유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진자 운동을 통해 작품을 직조해 내는 존재다.


만들기와 행하기


펄은 현대 예술 비평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로 '만들기(Making)'와 '행하기(Doing)'를 혼동하는 점을 꼽는다.


행하기(Doing): 정치인, 사회운동가, 혹은 시민들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수행하는 외부적 활동이다. 여기서는 합의와 결과, 사회적 효용이 중요하다.

만들기(Making): 예술가가 자신의 도구(단어, 소리, 색채, 재료)를 가지고 매체 자체의 논리에 따라 무언가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다.


예술은 '만들기'의 영역이며, 이는 현실의 실용적 가치와는 완전히 다른 궤적을 그린다. 예술가는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쏘아 올리는 선동가가 아니라, 자신의 스튜디오 안에서 작업 도구와 치열한 대화를 나누는 장인이다. 화가 샤르댕은 예술을 "해변을 낀 채 떠 있는 섬"에 비유했다. 예술은 그 자체의 법칙과 논리가 지배하는 독립된 세계라는 뜻이다. 펄은 예술을 '예술-사회', '예술-정치'처럼 하이픈(-)으로 연결하여 도구화하는 현대의 경향이 예술만이 전달하는 고유한 초월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피카소, 아레사 프랭클린



파블로 피카소


저자는 추상적인 이론에 머물지 않고 풍부한 사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특히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아레사 프랭클린의 소울 음악은 이 책의 논지를 상징하는 핵심 사례다.


우리는 <게르니카>를 반전(反戰) 정치 미술의 전형으로 알고 있지만, 펄의 분석은 이와 다르다. 피카소는 폭격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보도하는 방식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수십 년간 천착해온 미노타우로스 신화, 그뤼네발트의 십자가 처형 도상, 신고전주의의 인체 표현 같은 예술적 전통(권위)을 자신의 스튜디오 안으로 소환했다. <게르니카>는 시대적 고통에 대한 반응이기 이전에, 피카소가 자신의 예술적 도구들과 나눈 치열한 격전의 산물이다.


아레사 프랭클린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노래가 1960년대 시민권 운동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탁월한 기예(Craft) 덕분이었다. 그는 어릴 적 교회에서 익힌 복음성가(Gospel)의 엄격한 형식과 리듬이라는 '권위'를 완벽하게 장악했고, 그 탄탄한 토대 위에서 소울이라는 '자유'를 발산했다. 그의 예술적 성취는 사회적 울림에 앞서, 자신의 소리라는 매체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직조해 낸 결과였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 베를린 거리 (1913)


펄의 논의는 현대 철학의 거장들의 통찰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한나 아렌트의 '권위' 개념을 인용하며, 예술적 권위가 전통이라는 기초를 보강하고 확장하는 힘(auctore) 임을 설명한다. 예술가들이 소네트의 14행이라는 규칙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억압의 산물이 아니라, 수천 년간 쌓여온 음악적·문학적 전통의 권위를 계승하는 행위이다.


또한 이사야 벌린의 논의를 통해, 진정한 자유는 무질서한 방종이 아니라 질서(권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고조로 발휘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음악가가 악보라는 규칙을 완벽하게 따를 때 역설적으로 가장 창조적인 연주가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펄은 미켈란젤로의 건축이 보여준 파격적인 실험 또한 고전적 건축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권위와 자유의 고귀한 결투'였다고 해석한다.


무관심성


로렌스 알마 타데마 -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 (1888)


저자는 현대인들이 예술에서 자꾸 '적실성(relevance)'을 찾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예술-사회, 예술-정치, 예술-젠더, 예술-돈 등으로 파편화된 현대 예술계는 작품 그 자체의 내적 논리보다 그것이 속한 범주의 적실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인종, 젠더, 환경 같은 당대의 시급한 문제들이 예술의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때, 우리는 예술만이 줄 수 있는 신비로운 초월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펄은 예술의 가장 큰 가치가 역설적으로 그 '무관함(irrelevance)'에 있다고 주장한다. 예술은 우리를 현실의 타협과 소음에서 잠시 떼어내어 완전히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별개의 장소(A Place Apart)로 안내한다. 우리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7번이나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 매료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서가 아니라, 현실과는 다른 완벽한 질서와 상상력의 세계를 우리 눈에 그려내기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의 용기 있는 퇴각


폴 고갱 - 라발의 옆모습이 있는 정물 (1886)


100페이지 남짓한 이 짧은 책의 핵심 메시지는 "예술을 예술이게 하라(Let art be art)"는 것이다. 펄은 W. H. 오든의 유명한 선언 "시는 아무것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를 인용하며 예술의 자율성을 재확인한다. 예술은 사회를 직접적으로 개조하거나 선동하는 도구가 아니다. 예술가가 사회적 요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고 자신의 스튜디오로 들어가 도구와 씨름하는 것은 이기적인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 정신의 자유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지켜내려는 용기 있는 퇴각이다.


비평가들은 펄의 책을 두고 "순진하다(innocent)"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긴급한 사회적 위기(기후 변화, 불평등) 속에서 예술의 무용성을 옹호하는 것은 특권적인 태도일 수 있다. 동시에 모든 것이 정치화된 시대에 예술만의 고유한 영역을 지키려는 그의 시도가 "신선하다(refreshing)"는 평가도 받았다. 이처럼 펄은 예술이 세상을 구원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개인의 내면을 구원할 수 있는 '별개의 장소'로 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예술을 정체성의 좌표나 정치적 선언문으로만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작품 그 자체가 가진 독립적인 생명력을 존중할 것인가? 저자는 예술가들에게 다시 스튜디오의 작업 도구로 돌아갈 것을, 관객들에게는 작품에 서린 내밀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당부한다. 모든 것이 수단화되는 이 시대에 예술이라는 최후의 성소를 지키려는 펄의 비평적 선언은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예술 작품 앞에서 느껴야 할 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순수한 기쁨과 경이로움임을 말해준다. 이것이 저자가 옹호하고자 했던 예술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61Q+aDLYz4L._AC_UF1000,1000_QL80_.jpg Authority and Freedom - Jed Perl,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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