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는 충돌하는가?

누가 진리를 말하는가

by 탱귤도령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논할 때 대중적으로 가장 환영받는 태도는 '화해주의'다. 과학은 우주의 물리 법칙을 탐구하고 종교는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다루기에 서로 부딪힐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제안한 '비중첩 교권(NOMA)'은 이런 입장을 대표한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할 뿐, 피 튀기는 라이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가 갈등 관계에 있었다는 전통적 시각은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왜곡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과학의 적대자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며 현실은 더 복잡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전쟁보다는 복잡한 상호작용, 때로는 공생에 가까웠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 제리 코인은 그의 저서 『믿음 vs 사실: 왜 과학과 종교는 양립할 수 없는가?(Faith Versus Fact: Why Science and Religion Are Incompatible)』 에서 이 평화 조약문을 과감히 찢어발긴다. 저자는 과학과 종교가 단순히 갈등하는 수준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근본적인 방식에서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라고 소리 높인다. 코인은 종교적 교리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과학과 이성에 의해 검증될 수 있는 가설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조화로운가?


Tiffany_Education_(center).jpeg 루이스 티파니 - 교육: 과학과 종교의 조화 (1890)


코인은 종교-과학 갈등론이 역사학적으로 비판받아왔음을 인정하면서도, 갈등의 핵심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인식론적 토대'에 있다고 본다. 코인은 화해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갈등이 실재한다는 증거라고 꼬집는다. 유독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서만 "수많은 책과 공식 성명서들의 끊임없는 생산"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뭘까? 정말 두 영역이 조화롭다면 왜 이토록 필사적인 중재의 노력이 필요할까? 끊임없는 화해 시도는 두 영역 사이에 메울 수 없는 단층선이 있음을 방증한다.


코인은 과학자 집단 내의 도드라지는 '비신앙' 비율도 언급한다. 일반 대중과 달리 과학자 집단에서는 무신론과 불가지론의 비율이 훨씬 높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자 집단인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 중 93%가 무신론자 또는 불가지론자이며, 단 7%만이 인격신을 믿는다. 저자는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자체가 종교적 신념의 거부를 촉진한다고 본다. 과학의 핵심 방법론인 '증거 요구'와 '회의주의 문화'가 삶의 태도로 전이되어 종교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의심과 확신


1920px-Der_ungläubige_Thomas_-_Michelangelo_Merisi,_named_Caravaggio.jpg 카라바조 - 의심하는 성 도마 (1602)


코인이 가장 집요하게 파고드는 지점은 과학과 종교의 방법론적 차이다. 과학이란 단순히 정교한 연구 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과학은 '우주에 대해 무엇이 사실인지 알아내기 위해 인간이 고안한 신뢰할 수 있는 도구들의 집합'이다. 여기에는 관찰, 가설 설정, 실험, 비판적 검증과 오류 수정의 프로세스가 포함된다. 과학의 핵심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인식론적 겸손함과,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언제든 기존의 믿음을 폐기하겠다는 열린 태도에 있다.


반면 종교는 계시, 도그마, 권위, 그리고 '신앙'을 도구로 삼는다. 코인에게 신앙이란 증거가 없거나 심지어 증거에 반함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진실이라고 믿는 상태를 의미한다. 과학에서 증거 없는 확신은 죄악이지만, 종교 안에서는 귀중한 미덕으로 칭송받는다. 저자는 진화론 강의를 듣고 "굉장히 설득력 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신앙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말했던 한 청중의 사례를 언급한다. 이 지점에서 과학과 종교의 방법론은 돌이킬 수 없는 평행선을 걷게 된다.


사실의 영역을 주장하는 종교


Maqamat_hariri.jpg 야히아 이븐 마흐무드 알 와시티 - 아바스 왕조 도서관의 학자들 (1237)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통찰은 종교가 결코 화해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가치와 의미'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폭로하는 데 있다. 화해주의자들은 종교가 인간의 도덕적 삶에 대한 비유적 지침이라고 주장하지만, 코인은 이것이 실제 종교의 작동 방식과 신자들의 심리를 무시한 기만이라고 일갈한다. 대다수 종교의 뿌리에는 반드시 우주와 세계에 대한 '사실 주장(Existence claims)'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것이 없다면 종교는 그 권위를 유지할 수 없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부활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만약 예수가 실제로 죽음에서 물리적으로 살아나지 않았다면 대속과 구원이라는 신학적 구조는 무너진다. 코란이 신의 계시라는 주장, 힌두교의 윤회설, 혹은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아담과 이브의 실존 역시 모두 '사실'에 관한 선언이다. 만약 이 모두가 사실이 아니라면 종교 교리의 중심축은 무너져 내린다.


그는 종교가 '사실'에 관한 것이 아니라 느낌의 구조나 신화의 의미에 관한 것이라 주장하는 '세련된 신학자들'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기독교 니케아 신경에 담긴 동정녀 탄생, 육신의 부활, 천지 창조 등은 명백히 은유가 아닌 현실 세계에 대한 사실 주장이다. 실제로 리처드 스윈번, 존 폴킹혼, 앨빈 플랜팅가와 같은 저명한 현대 신학자들조차도 성서적 사건들이 '실제로 참(actually true)'이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인정한다.


충돌하는 세계관


1920px-Newton-WilliamBlake.jpg 윌리엄 블레이크 - 뉴턴 (1795-1805)


종교가 내세우는 '사실'들이 과학의 검증대 위에 오를 때, 그것들은 여지없이 거짓으로 판명된다. 현대 유전학은 인류가 단 한 쌍의 조상으로부터 시작될 수 없음을 증명했고, 진화생물학은 인간이 신의 특별한 설계 없이도 저절로 출현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뇌과학은 영혼이라 불리던 의식의 활동을 뇌라는 물리적 기관의 작용으로 이해한다. 종교의 사실 주장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사실이 부정당할 때마다 종교는 과거에 역사적 사실이라고 철석같이 주장하던 신념을 이제는 '상징'이나 '비유'라고 둘러대며 후퇴한다. 코인은 묻는다. 무엇이 비유이고 사실인지 판가름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결국 그 기준조차 과학이 밝혀낸 사실에 의존하지 않는가?


종교가 과학의 빈틈을 찾아 초자연적 존재를 끼워 넣으려 애쓰는 '틈새의 신' 전략은 과학의 영토가 넓어질수록 종교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과학이 초자연을 다룰 수 없다는 주장도 일축한다. 초자연적 존재가 자연 세계에 '관찰 가능한 영향'을 미친다면 즉시 과학적 검증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반복되는 과학적 관찰은 초자연적 명제를 꾸준히 반증해 왔다.


믿음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코인은 과학과 종교 사이의 어설픈 회색지대를 허용하지 않으며, 이성을 가진 존재라면 마땅히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야 한다고 일갈한다. '상호 존중'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그에게 종교와 과학의 대화는 진리 탐구에 실패한 방법론(종교)에 부당한 신뢰성을 부여하는 행위일 뿐이다. 코인은 말한다. 진정한 경이로움은 기도실의 어둠 속이 아니라, 의심과 검증을 통해 밝혀지는 광활한 우주의 진실 속에 있다고. 거대 은하의 나선팔이 야훼의 무지개보다 경이롭다고 말이다. 다만 코인의 논의가 완전히 무결한 것은 아니다. 과학 역시 검증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적 전제(자연주의, 인과성)를 기반으로 세워진 세계관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화해 담론에 가려졌던 종교계와 과학계의 긴장을 다시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독자에게 묻는다. 만약 당신의 믿음이 틀렸다는 증거가 제시된다면, 그것을 기꺼이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71uUCzSEsJL._AC_UF894,1000_QL80_.jpg Faith vs Fact - Jerry Coyn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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