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는 우리 혼자일까

ET를 찾아서

by 탱귤도령


쏟아지는 별밤 아래서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저 먼 행성에도 나처럼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며 나도 UFO를 찾아보겠노라고 흥분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지금 소개할 책 『외로운 행성들: 외계 생명의 자연철학(Lonely Planets: The Natural Philosophy of Alien Life)』 유년기의 설렘을 과학의 엄밀한 언어와 철학의 깊은 사유로 되살려내며 우리를 다시금 광막한 별들의 바다로 이끈다.


저자 데이비드 그린스푼은 나사(NASA)의 행성 탐사 전략 고문이자 저명한 과학자로서, 우주생물학을 단순히 생명체를 찾는 기술이 아닌 '인류는 우주에서 어떤 존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외계 생명체를 찾는 여정은 결국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밝히는 장엄한 탐구다. 이 책은 인류가 우주에서 정말로 혼자인지, 아니면 거대한 생명의 네트워크 속에서 잠시 길을 잃은 아이들인지 해답을 구한다.


풍요로운 다수의 세계


71cGCb4r51L._AC_UF1000,1000_QL80_.jpg 칼 세이건 - 창백한 푸른 점 초판 (1994)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자들은 이미 우주에서 지구가 유일한 생명의 거처일 리 없다는 '풍요의 원리(Principle of Plenitude)'를 설파했다. 철학자 메트로도로스의 말처럼 "거대한 밭에 옥수수 한 포기만 자라는 것이 이상하듯", 광대한 우주에 지구의 생명만 존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선구적인 사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밀려 잊히게 된다.


이후 코페르니쿠스, 조르다노 브루노를 거치며 외계생명체가 가득한 '다수 세계' 가설은 과학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초기 외계생명체 탐구는 "관측 데이터보다 믿음이 앞서 나갔던 시기"였다. 퍼시벌 로웰의 화성 대운하 소동은 관측의 한계와 희망적 사고가 결합된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1960년대 마리너 4호가 보내온 화성의 황량한 사진은 지구 밖 풍요로운 행성을 그리던 인류에게 깊은 환멸을 안겨주었지만, 역설적으로 환상이 걷힌 자리에서 비로소 현대적인 우주생물학이 탄생했다.


희귀한 지구?


625359876_18098232460912612_8910996104355488418_n.jpg 아돌프 샬러 - 코스모스 삽화 (1980)


이 책의 백미는 희귀한 지구 가설(Rare Earth Hypothesis)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대목이다. 희귀한 지구론자들은 지구 생명이 태양과의 거리, 거대한 달의 존재, 목성의 방어막 등 수천 가지 우연이 겹쳐진 기적의 산물이며, 복잡한 생명체는 우주에서 극히 드물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신의 반려묘를 예로 들며 반박에 나선다. 저자와 반려묘가 만난 사건은 확률상 거의 불가능했다. 특정한 부모 고양이가 만나야 하고, 특정한 날씨와 장소에서 인연이 닿아야 한다. 하지만 일어날 수 없던 일은 아니다.


희귀한 지구 가설은 생명을 지구적 조건에 고정된 수동적 존재로만 바라본다. 그러나 지구의 생명은 극한 환경(심해 열수구, 지하 깊은 곳, 방사능 환경 등)에서도 번성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다른 행성의 생명체는 그 행성의 조건에 맞게 진화했을 것이다. 우리가 지구의 특정 조건들(예: 달의 조석력)을 생명 탄생의 필수 조건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가 우연히 그런 환경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부여한 의미에 가깝다. 달이 없었다면 지구의 자전축이 불안정했을 수 있지만, 생명은 그 불안정한 기후 시스템에 맞춰 또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으리라.


생명은 행성에 얹혀사는 수동적인 손님이 아니다. 생명은 행성의 대기 성분을 바꾸고 지질학적 순환을 조절하며 자신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창조'한다. 희귀한 지구론자들이 전제 조건이라 부르는 많은 특징은 사실 생명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도 생명은 그곳의 조건에 맞춰 자신들만의 '최적의 환경'을 구축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구와 똑같은 환경만이 생명을 낳을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은 인간중심적 오만이다.


기술적 사춘기와 인류의 운명


Berkey_image_crop.jpeg 존 버키 - 심우주 탐사 일러스트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외계 문명의 수를 추정하는 드레이크 방정식의 가장 불확실한 변수인 L(기술 문명의 존속 기간)을 탐구한다. 인류는 지금 핵무기, 환경 파괴, 통제 불가능한 인공지능 발전 등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기술적 사춘기"를 지나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문명은 우주의 찰나에 사라지는 짧은 불꽃에 그칠 것이다.


그린스푼은 비관에 빠지는 대신,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지능적 가이아 모델"를 제시한다. 생명이 무의식적으로 행성을 조절해 왔다면, 이제는 인간의 지성이 의식적으로 지구를 관리하는 '심리대(Psychozoic Age)'로 진입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일견 오만으로 보이지만 문명의 생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진화 단계다.


이 책의 가장 매혹적인 전망은 불멸자들(The Immortals)에 관한 이야기다. 만약 우주에 우리보다 앞서 탄생한 문명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이미 사춘기의 진통을 겪고 살아남은 존재일 것이다. 그린스푼은 수억 년의 시간을 견뎌낸 문명은 더 이상 생물학적 한계나 이기적 탐욕에 갇혀 있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들은 기계와 융합했거나 순수한 에너지의 형태일 수도 있으며, 그들의 기술은 우리에게 마법과 다름없을 것이다. 우리가 언젠가 포착할 외계 신호는 '불멸자들'로부터 온 생존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유년기의 끝: 불멸자와의 조우


tumblr_ns17x9M6e51qztcdbo1_1280.jpg 아돌프 샬러 - 외계생명체 (1994)


그린스푼은 영성의 언어로 책을 마무리한다. 그는 테야르 드 샤르댕의 '오메가 포인트' 개념을 빌려 우주가 물질에서 생명으로, 다시 정신으로 진화해 신적인 통합에 이른다는 거대한 서사를 제시한다. 현재 인류가 겪는 위기는 우리가 우주적 생명 공동체의 일원임을 깨닫지 못한 데서 오는 '영적 위기'다. 우리는 아직 우주적 사춘기를 지나는 중이다. 저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릴 불멸자들의 존재를 상상하며, 우리는 이 행성을 지키고 우주와 소통하는 성숙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린스푼은 책의 말미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주는 영혼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현재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지구를 지켜낸다면, 언젠가 우리도 저 별들 사이의 '불멸자들' 대열에 합류하여 우주적 대화의 일원이 될 것이다. 아서 클라크의 소설 『유년기의 끝』에서 인류가 종의 유년기를 매듭짓고 우주적 지성으로 진화하듯 말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서로를 보살펴야 한다. 저자는 인류가 외로운 행성에서 홀로 사라질 것인지, 아니면 불멸자들이 기다리는 우주적 바다의 일원이 될 것인지는 오로지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논조는 칼 세이건식 낙관주의를 반영한다. 칼 세이건은 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외계인이라면 인류의 오랜 어리석음과 잔인함을 해결한 '자비로운' 문명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쉽지만 외계 문명이 자비로울지, 폭력적일지는 실제로 조우하기 전에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만일 '어둠의 숲' 가설처럼 문명 간 조우는 필연적으로 문명의 멸망으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이 책에는 최악의 가능성이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독서를 즐겨주시길 바란다.


4117K403VXL._AC_UF894,1000_QL80_.jpg Lonely Planets - David Grinspoon,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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