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내가 존경하는 건넛집 흰둥이는 만날 때마다 인간만큼 인정머리 없는 족속도 없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슬픈 현실을 인정하면서 시작해야겠다. 권위주의가 이기고 있다. 트럼프, 푸틴, 시진핑, 김정은, 네타냐후, 에르도안, 모디, 하메네이, 오르반, 윤어게인 등등..... 깡패보다 불량한 지도자들과 이들의 지지자들이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이런 시대유감적 상황에 활명수처럼 소화제가 되어줄 책이 있으니 『고양이로부터 배우는 파시즘 생존전략(Lessons from Cats for Surviving Fascism)』 이다.
저자 스튜어트 레이놀즈는 캐나다의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이자 정치 비평가로서, 유머와 풍자를 통해 복잡한 정치적 사안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레이놀즈는 파시즘을 "예측 가능성에 의존해 번영하는 시스템"으로 규정하고, 이에 맞서기 위해 고양이의 본능적이고도 이기적인 특성들을 전략적으로 모방하라고 조언한다.
저자가 가장 먼저 주목하는 고양이의 특성은 '예측불가능성'이다. 시스템이 피지배층의 다음 행동을 완벽히 계산할 수 있을 때, 권력의 효용은 극대화된다. 그러나 고양이는 소파에서 평온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도 갑자기 냉장고 위로 뛰어올라 주인을 심판하는 듯한 시선을 보낸다. 이러한 돌발적이고 비논리적인 행동은 권력자가 설계한 통제 매뉴얼의 범위를 벗어난다. 파시스트는 모든 것이 명확한 범주 안에 있기를 원한다. 그 탓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무능함을 드러낸다.
바닷가재 복장을 하고 파시즘 비판 팸플릿을 나눠주거나, 새벽 3시에 우쿨렐레 잼 세션을 여는 등 황당한 행위는 권력이 설정한 정상성의 범주를 파괴함으로써, 통제의 매뉴얼 자체를 무력화한다. 권력이 우리를 식별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려 할 때, 비논리적 행동을 통해 식별 불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라. "왜 저들은 책장 위에 올라가 있는가?"라고 권력자가 당혹스러워 할 때 비로소 저항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권위주의자들은 희생과 근면을 강조한다. 대중을 과로하게 만들고, 불안과 공포 속에서 소진되도록 유도한다. 지친 인간은 비판적 사고 능력을 상실하고 권력의 명령에 순응하게 된다. 여기서 저자는 고양이의 '낮잠'에 담긴 전략적 의미를 포착한다. 고양이는 권력의 시간표를 완전히 무시한다. "나는 지금 낮잠을 잘 것이고 당신 문제는 나중에 처리하겠다"라고 말할 때 파시스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생산성의 굴레를 거부하고 일광욕을 즐기며 낮잠을 자는 행위는 체제의 도구로서 기능하기를 거부하는 저항의 몸짓이다. 우리가 충분히 쉬고 활력을 되찾을 때, 권력은 우리를 더 이상 만만한 먹잇감으로 여기지 못한다.
권위주의자들은 깃발, 동상, 배너 등 권력의 상징물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확인받기 위해 시각적 증거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고양이는 이러한 권력의 환상을 가장 사소하고도 우아한 방식으로 무너뜨린다. 정돈된 책상의 물건을 무심하게 바닥으로 밀어버리는 고양이의 눈빛은 "너에게는 통제권이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는 고양이를 본받아 권력의 상징물에 작고 의도적인 타격을 가해야 한다. 강철 동상에 붙인 스티커 한 장, 혹은 온라인에 게시된 날카로운 풍자 밈(meme) 하나는 권력의 정당성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지도자들이 "당신은 규칙을 어겼어!"라고 분노할 때, 우리는 고양이처럼 가릉거리며 비웃어주면 그만이다.
파시즘은 '안전'과 '효율'을 구실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목줄을 채우려 한다. 권위주의 정권은 종종 "당신을 더 좋은 시민으로 만들어줄 것"이라며 특정한 규칙, 라벨, 혹은 순응을 강요한다. 고양이처럼 그런 제안을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단칼에 거절하라. 고양이는 설령 목줄을 차게 되더라도 그것을 벗기기 위해 매 순간을 할애한다. 고양이는 사고를 친 뒤에도 고개를 까딱이며 갸르릉 거리는 것만으로 주인의 분노를 무력화한다. 권위주의자들은 공포와 억압에는 능숙하지만, 유머와 호감에는 놀라울 정도로 취약하다. 그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규칙을 비웃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른다.
고양이는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빈 상자든, 주인의 의자든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권위주의자들이 독점하고 있는 대화, 의사결정 과정, 물리적 장소에 당당하게 들어가 앉으라. 권력의 중심부에서 여유를 부리는 행위는 체제의 위계를 근본적으로 흔든다. 파시스트들은 즉흥적인 상황에 약하며, 누군가 정해진 역할을 거부할 때 무력하다.
고양이는 평소에는 다정하고 협조적일지라도 자신의 경계가 침범당할 때는 즉각 발톱을 드러낸다. 당신이 언제든 할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줄 때 지도자들은 풀이 꺾인다. 고양이는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주인의 키보드 위를 걷거나 당당하게 음식을 요구하며 '흔들리지 않는 자의식'을 뽐낸다. 체제는 당신을 작고 무력한 존재로 느끼게 만들지만, 고양이는 결코 그렇게 두지 않는다. 지도자가 명령할 때 고양이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핥으며 무관심하다. 체제가 당신을 피지배자로 규정할 때, 당신 스스로를 '언제나 상전'인 고양이로 인식하라.
또한, 저자는 고양이 특유의 '이기적 연대'에 주목한다. 고양이는 서로를 그루밍하고 체온을 공유하며 위협 앞에서는 미묘하게 팀을 이룬다. 파시스트가 이해하지 못하는 유일한 언어는 바로 '돌봄(Care)'이다. 권력은 우리가 서로를 불신하며 각자도생하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서로의 발바닥을 핥아주고 따뜻하게 보살필 때 그들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간다. 상당히 이기적이면서도 상당히 이타적으로 연대하는 고양이 떼는 무너뜨릴 수 없는 요새와 같다.
레이놀즈의 책은 파시즘과 권위주의를 비이성적이고 웃긴 대상으로 폄하함으로써 권력의 성벽을 무너뜨린다. 철학자 미셸 푸코가 말했듯 '웃음'은 기존의 체계를 산산조각 내는 전복적 힘을 지닌다. 권력이 당신을 '말 잘 듣는 노동자'나 '애국적 시민'으로 정의하려 할 때, 고양이처럼 행동함으로써 그 정의를 비웃고 새로운 주체성을 창조하라. 권력은 당신의 공포와 예측 가능성을 먹고 자란다. 고양이처럼 영리하게 독립적으로, 때로는 '심술궂게' 굴어라. 내가 눕고 싶은 자리에 당당히 눕고, 부당한 대우에 대해 크게 야옹거리며, 내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그루밍해주는 일상에서 저항이 시작된다. 고양이는 결코 지배당하지 않는다. 당신 또한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