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은 환상일까

사랑은 지속되어야 한다

by 탱귤도령


스크린샷 2026-03-03 115918.png 낸 골딘 - 성적 의존의 발라드 연작 (1983)


30대 초반의 매력적인 남성 브렛은 음악 업계에서 성공한 인물로 수많은 여성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하지만 그의 연애는 늘 실패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뜨거운 열정과 환희로 시작하지만, 관계가 깊어지는 순간 마법처럼 욕망은 사라지고 친밀감은 숨 막히는 족쇄로 변한다. 브렛은 상대가 진짜 내 짝이 아니라고 중얼거리며 새로운 자극을 찾아 떠나지만,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그의 내면에 있다.


관계적 정신분석학(Relational Psychoanalysis) 이론가 스테판 미첼(Stephen A. Mitchell, 1946~2000)은 『사랑은 영원할 수 있는가?: 시간이 흐르며 변하는 로맨스의 운명(Can Love Last?: The Fate of Romance over Time)』 에서 브렛과 같은 현대인의 고질적인 병폐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미첼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로맨스는 시간이라는 파도를 견뎌낼 수 있는가? 사랑은 지속될 수 있는가?


왜 우리는 스스로 로맨스를 파괴하는가


대부분의 연인은 시간이 흐르며 열정이 식는 이유를 익숙함이나 성격 차이 탓으로 돌리곤 한다. 미첼의 시각은 자못 색다르다. 그는 우리가 파트너에게 설레지 않는 이유는 사랑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사랑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우리가 의도적으로 생명력을 갉아먹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Home)이라는 안식처를 원한다. 익숙함과 예측 가능성은 우리에게 생존의 안전을 보장한다. 하지만 로맨스의 연료는 그 정반대인 모험(Adventure)에 있다. 우리가 파트너를 완전히 소유하고 통제하여 내 손바닥 안에 있다고 믿는 순간, 파트너가 지닌 매력적인 사랑의 원천인 '타자성'은 증발한다.


브렛의 사례를 다시 보면 이 지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그가 '지루하다'며 밀어냈던 안정적인 여성 베티는 사실 그에게 정서적 한계를 시험하는 모험을 제안하고 있었다. 브렛은 베티가 주는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와 헌신이 두려워 그녀를 지루한 여자로 규정하며 도망쳤다. 우리가 오랜 관계에서 느끼는 '권태'는 상대를 상처받지 않을 만큼 사랑하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채택한 무의식적 전략이다. 낭만적 사랑을 지속한다는 것은 상대가 결코 내가 완전히 알 수 없는 독립된 타자임을 인정하는, 그 떨리는 긴장감을 기꺼이 견뎌내는 일이다.


성(Sexuality)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Edvard_Munch_-_Vampire_(1895)_-_Google_Art_Project.jpg 에드바르 뭉크 - 뱀파이어 (1895)


많은 이가 성욕을 저급한 충동으로 치부하며, 사랑이라는 고귀한 감정과 분리하려 한다. 미첼은 반대의사를 밝힌다. 성은 단순한 생물학적 충동이 아니라,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흔들리는 관계적 사건이다. 우리는 상대를 욕망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그 욕망에 의해 내 자아도 흔들린다. 몸이 반응하고 감정이 고조되는 경험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완전히 통제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성에는 쾌락뿐 아니라 취약성과 불안이 함께 깃들어 있다.


우리는 통제권을 잃는 불안을 견디기 힘들다. 그 탓에 사랑을 안정과 존중의 영역에 고정시키고, 욕망은 위험하고 외부적인 것으로 분리하거나 반복 가능한 패턴으로 통제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관계가 안전해지나 긴장은 약해진다. 사랑은 따뜻하나 밋밋해지고, 욕망은 짜릿하나 공허해진다. 성은 사랑을 망치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살아 있게 만드는 긴장이다. 성이 선사하는 불안과 흔들림을 함께 견딜 때 로맨스는 유지된다.


이상화와 환상은 제거되어야 하는가


스크린샷 2026-03-04 094536.png 마르크 샤갈 - 생일 (1915)


"사랑하면 콩깍지가 씐다"는 말은 로맨스의 허황됨을 비웃는 관용구다. 소위 '현실적인' 이들은 연인의 결점을 보지 못하는 것을 '객관적 시야의 결여'로 비난한다. 하지만 미첼은 '이상화(Idealization)'야말로 사랑을 생생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도구라고 항변한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객관적인 현실'은 생존을 위해 편집된 무미건조한 정보일 뿐이다. 오히려 이상화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는 파트너의 숨겨진 아름다움과 잠재력을 발견해 낸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아름답고 완벽하게 보는 것은 순진한 착각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숨겨진 신성한 가능성을 상상적으로 현실화하는 필수적 작업이다. 상대를 특별하게 여길 때 우리는 상대를 실용의 잣대로만 따지는 도구적 이성을 넘어선다. 문제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를 '특별한 존재'가 아닌 '내 필요를 채워줘야 할 도구'로 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상대를 너무 잘 알게 되었다는 자만심은 상대를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로맨스의 사망 선고와 다름없다.


로맨스를 지속하기 위한 4가지 통찰


Saul-Leiter-Self-Portrait-with-Nude_circa-1947.jpg 사울 레이터 - 누드와 함께 있는 자화상 (1947)


사랑의 지속을 위해 우리는 다음 4가지 원칙을 유념해야 한다.


첫째, 안전의 환상을 경계하라. 오랜 관계가 지루한 것은 상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 아니라,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대를 '지루한 존재'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상대는 언제나 내가 알 수 없는 새로운 면모를 지닌 타자임을 기억하라.


둘째, 이상화를 허용하라. 상대를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은 착각이 아니라 관계의 연료이다. 일상적인 실용주의의 렌즈로 파트너를 보지 말고, 그 안에 깃든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찬양하라.


셋째, 의존의 공포를 인정하라. 상대에게 화가 나는 이유는 그가 내게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이 그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이 주는 공포를 인정할 때, 불필요한 복수극이나 거리 두기를 멈출 수 있다.


넷째, 사랑은 행동이자 결단이다. "사랑이 식었다"는 말 뒤에 숨은 자신의 수동성을 직시해야 한다. 사랑은 '빠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선택하고 자신을 던지는 의지적 행위가 로맨스를 완성한다.


두 사람을 위한 모래성


© Rinko Kawauchi, Untitled, from the series _Illuminance”, 2011.jpg 카와쿠치 린코 - 무제, 일루미넌스 시리즈 중 (2011)


저자는 로맨스를 두 사람을 위한 모래성에 비유한다. 모래성은 영원하지 않다. 밀물이 들어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래성이 무너질 것을 알기에 매일 정성스럽게 다시 쌓아 올린다. 로맨스가 끝나는 이유는 우리가 모래성을 돌성으로 바꾸려 하거나(고착된 통제), 밀물이 무서워 성 쌓기를 포기하기(정서적 단절) 때문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환상을 버려라. 대신 매 순간 변하는 파트너의 낯선 모습에 다시금 매료되기를 선택하라. 사랑은 두 사람의 의지와 환상이 만나 끊임없이 '수행하는 행위'다. 당신은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다 안다고 자부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로맨스는 이미 죽어가고 있다. 사랑은 지속될 수 있다. 당신이 모래성을 매일 아침 다시 지을 용기를 지녔을 때에만.


41IjbjaYcPL._AC_UF1000,1000_QL80_.jpg Can Love Last? - Stephen A. Mitchell,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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