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가?

불가지론, 의심의 변론서

by 탱귤도령


περἰ μἐν θεῶν οὐκ ἔχω εἰδέναι, οὔθ᾽ ὡς εἰσὶν οὔθ᾽ ὡς οὐκ εἰσιν οὔθ ὁποῖoί τινες ἰδέαν· πολλὰ γὰρ τὰ κωλύοντά με εἰδέναι, ἥ τε ἀδηλότης καὶ βραχὺς ὤν ὁ βίος ἀνθρώπου.

신들에 관해서는, 그 존재 여부나 종류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주제 자체가 모호하고 인간의 수명은 너무나 짧은 탓입니다.
- 프로타고라스(BC 490~420) , <신들에 관하여>


나는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난상토론이 지겹다. 유튜브에 검색해 보면 질리도록 영상이 많다. 항상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데 서로 완고하게 주장을 굽히지 않고 얼굴만 붉히며 모호한 결론으로 토론이 마무리된다. 이런 소모적인 논쟁이 신물 나는 분(나를 포함해)들의 답답함을 뚫어줄 책이 있다. 종교철학자 존 셸런버그(J. L. Schellenberg)의 저작 『의심할 수 있는 지혜: 종교적 회의주의의 정당화(The Wisdom to Doubt: A Justification of Religious Skepticism)』 를 읽어보자. 셸렌버그는 종교적 도그마와 과학주의를 모두 비판하는, 현대 종교철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인 실재에 대해 확신하거나 혹은 부정하는 행위가 얼마나 오만한지 논리적으로 해부한다. 셸렌버그는 인류를 '진화의 초기 단계에 있는 어린 종'으로 규정하며, 우리가 우주에 대해 내리는 현재의 모든 확신—그것이 유신론이든 무신론적 자연주의든—이 얼마나 조숙하고 무모한 것인지 날카롭게 해부한다. 그는 믿음이나 불신 모두 현재 우리가 가진 증거만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설파한다.


1920px-John_Martin_-_The_Great_Day_of_His_Wrath_-_Google_Art_Project.jpg 존 마틴 - 진노의 날 (1851-1853)


인간의 유한성과 주체 양태(Subject Mode)


첫 번째로 주목할 점은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주체'로서 지닌 결함이다. 셸런버그는 우리가 어떤 명제를 믿을 때, 그 명제가 정교하고, 상세하며, 심오하고, 매력적일수록 오류에 빠질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신의 본성은 이러이러하며 그는 인간을 이렇게 구원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종교적 주장은 앞의 네 가지 특성을 극단적으로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증거나, 우리 시대에는 접근 불가능한 증거가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심오하고 매력적인' 주장을 믿는 것은 마치 우리가 거대한 미로의 입구에 서서 미로의 가장 깊은 곳의 지도를 완벽하게 그렸다고 확신하는 것만큼이나 오만한 일이다.


잡을 수 없는 실재, 대상 양태(Object Mode)


두 번째 논거는 우리가 탐구하고자 하는 대상인 '궁극적 실재' 자체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만약 궁극적인 존재가 실제로 있다면, 그 존재는 유한한 인간의 언어와 개념으로 포착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심오할 것이다. 셸런버그는 현재 인류가 가진 종교적 개념들이 '궁극'이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협소하거나 조잡하다고 지적한다. 마치 유아기 아이가 양자역학을 이해하려 애쓰는 것처럼, 인류는 아직 궁극적 실재의 본질을 담아낼 지적 틀조차 갖추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신이나 절대자의 모습이 실제와 부합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영락없는 어불성설이다.


K7eeLqjh_LAg_2400x2400.jpg 안젤름 키퍼 - 밤의 명망 있는 질서 (1997)


인류 역사의 유아기


셸런버그의 논지 중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강력한 부분은 시간의 규모에 대한 통찰이다. 그는 인류의 지적 탐구 역사가 불과 몇 천 년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우주의 나이와 인류가 앞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할 때, 우리는 아직 인류라는 종의 '유아기'에 머물러 있다. '회고적 양태'는 과거의 인류가 종교적 탐구를 수행하며 얼마나 많은 탐욕, 도그마, 분쟁에 휘말려 왔는지를 고발한다. 셸렌버그는 이러한 과거의 결함들을 볼 때, 현재의 형이상학적 신념은 마치 원시인이 무전기를 보고 신의 목소리라고 믿는 것과 같은 수준의 오해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망적 양태'는 미래의 인류가 발견하게 될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나 철학적 도약이 현재의 우리 신념을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만들지를 예견한다. 미래 인류가 전 우주적인 도서관과 같은 지식 공유 체계를 구축하고, 과학과 예술과 종교가 창조적으로 융합된 새로운 탐구 방식을 개발한다면, 현재 우리가 매달리고 있는 '인격신'이나 '과학적 자연주의' 같은 개념들은 헌신짝처럼 버려질 것이다. 셸렌버그는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려는 현재의 확신을 부끄럽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직 '종교적 진화의 유아기'에 있다는 자각은 회의주의를 부른다. 우리는 아직 진리를 말하기에는 너무나 어리다.


오만함


인간의 유한성(주체/대상 양태)과 인류의 미성숙함(회고/전망 양태)을 합치면, 현재 우리가 종교적 진리에 도달했다고 믿는 행위 자체가 극도의 '오만' 임이 드러난다. 그는 이를 '제한 양태'와 '미성숙 양태'로 명명한다. 우리는 아직 충분한 조사를 거치지 않았고, 적절한 인지적 훈련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정답을 내놓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치 시험 문제를 절반도 읽지 않은 아이가 확신하며 '정답'을 외치는 느낌이랄까. 이토록 제한적이고 미성숙하며 결함 많은 과정을 거쳐온 존재가 감히 "우리는 우주의 궁극적인 진리를 안다"라고 선언한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지적 오만인가? 종교인들은 성경, 코란, 불경, 베다경, 몰몬경에 적힌 내용이 우주를 포괄하는 완전무결한 진리라고 진지하게 믿는다. 이런 류의 진리 선언에 저자는 냉정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근거 없는 과학자들의 낙관


많은 지식인이 과학적 성공에 고무되어 '자연적인 것이 실재의 전부'라고 믿곤 한다. 셸렌버그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인류의 전체 수명 중 찰나에 불과한 최근의 성과에 도취되어 우주의 성격을 최종판결하려고 한다. 인류사에서 한때 완벽하다고 믿었던 과학 이론도 오류로 판명되어 교체되었던 전례를 볼 때 현재의 과학이 우주의 진상을 파악했다는 선언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또 자연주의자들은 '자연'의 개념을 극도로 좁게 설정한다. 미래의 과학이 현재는 '초자연적'이라 불리는 현상들을 포괄하는 한층 거대한 법칙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경우 현재의 자연주의와 유물론은 우스꽝스러운 편견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일갈한다. "과학을 진정으로 신뢰한다면, 과학이 가르쳐 준 광대한 미래를 존중하여 현재의 결론을 유보해야 한다."


214A9235.jpeg 안드레스 세라노 - 오줌 예수 (1987)


의심은 후퇴가 아닌 느릿한 전진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회의주의는 삶의 활력을 앗아간다'거나 '행동의 근거를 없앤다'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회의주의가 오히려 실용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반박한다. 믿음은 자기기만(Self-deception)을 동반할 위험이 크지만, 의심은 우리가 아직 모른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함으로써 더 깊은 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회의주의는 막다른 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조건"임을 밝힌다. 우리가 종교적 실재에 대해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적인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진리에 대한 가장 정직하고 경건한 태도다. 그는 탐구를 멈추자고 말하지 않는다. 더 긴 탐구를 위해 지금 당장 성급하게 단정 짓는 태도를 보류하라 말한다. 그의 책은 유신론자들에게는 자신의 확신이 가진 '지적 오만'을 성찰하게 하며, 자연주의자들에게는 과학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또 다른 형태의 근본주의를 경계하도록 촉구한다.


우리는 아직 신이나 우주의 근원을 소리 높여 설파하기에는 너무나 어리다. 인간은 너무나 유한하고 (Subject), 대상은 너무나 거대하며 (Object), 우리는 너무나 짧게 생각했고 (Retrospective), 앞으로 생각할 시간은 너무나 많이 남았다 (Prospective). 무언가를 섣불리 믿거나 부정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미성숙함을 직시하는 겸손함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최종 결론을 내릴 만큼 오래 사유하지 못했다.


스크린샷 2026-03-16 104901.png The Wisdom to Doubt - J.L. Schellenberg,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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