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중심 철학을 뒤집어라

철학 회복의 선언문

by 탱귤도령

대학의 강의 시간표를 훑어보거나 서점의 철학 코너를 서성일 때 많은 이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바로 '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유럽에서 꽃피운 지적 전통'이라는 믿음이다. 소크라테스에서 시작해 데카르트와 칸트, 헤겔을 지나 비트겐슈타인에 이르는 견고한 계보는 오늘날 전 세계 철학도들의 뇌를 지배하고 있다.


서점에 진열된 철학책도 대부분 서양 철학자들의 이론을 상세히 분석한 책들이다. 최근의 예로 움베르토 에코가 편집한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2018) 의 목차를 훑어보자. 총 3권으로 나뉜, 수천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철학사 백과사전인데 단 한 명의 비서구 철학자도 다루지 않고 있다. 이렇게 목차 구성을 해놓고 '철학의 역사'라는 타이틀을 걸어두는 것이 정말 온당할까?


미국 바사 칼리지와 예일-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서 중국 철학을 가르쳐온 브라이언 반 노든은 『철학을 되찾기: 다문화주의 선언문(Taking Back Philosophy: A Multicultural Manifesto)에서 이런 학문적 행태를 격렬히 거부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인위적으로 조작되고 배타적으로 구축된 성벽인지를 통렬하게 고발한다.


다운로드 (3).jpeg 프랑수아 부셰 - 중국식 정원 (1742)


조작된 신화


반 노든이 가장 먼저 타격하는 지점은 오늘날의 철학적 캐논(정전)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이다. 19세기 이전의 유럽 사상가들은 비서구 철학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었다. 라이프니츠는 중국의 주역과 성리학의 이진법적 사고에 감탄했다. 크리스티안 볼프는 유교의 도덕 철학이 유일신의 계시 없이도 완벽한 윤리 체계를 세울 수 있음을 찬양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중국이나 인도의 지혜는 '철학'의 범주에서 결코 제외되지 않았다.


그러나 칸트와 헤겔이라는 거대한 산맥에 이르러 반전이 일어난다. 저자는 칸트와 헤겔이 철학의 역사를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재편했음을 폭로한다. 칸트는 유색인종이 추상적인 사유를 할 수 없다고 보았다. "철학은 오리엔트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라며 조롱한 것은 덤이다. 헤겔은 공자의 어록을 보느니 키케로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게 훨씬 낫다며 폄하했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유는 '종교'나 '신화', 혹은 기껏해야 '잠언' 수준으로 격하되어 철학의 문밖으로 쫓겨났다. 우리가 공부한 서구 철학사는 18~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가 빚어낸 '기획된 신화'에 가깝다.


이 유해한 신화는 20세기를 넘어서도 꾸준히 이어졌다. 하이데거는 철학은 그리스적인 것이며 서구의 독점물이라고 주장했다. 자크 데리다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에는 철학이 없고 사유만 있다"고 말해 청중을 당혹케 했다. 반 노든은 서구 지식인의 반복되는 실언은 비서구 문명을 문명적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편견과 선입견의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지적 폐쇄성이 부른 기만적 간판


저자는 서구 대학의 철학 커리큘럼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만약 어떤 학과가 영미권 소설만 가르치면서 간판에는 '세계 문학과'라고 써놓았다면, 우리는 이를 사기 행태로 비난한다. 그런데 왜 철학과는 오직 서구의 전통만을 가르치면서 '철학과'라는 보편적인 이름을 독점하고 있는가. 반 노든은 현재의 많은 철학과는 '유럽-미국 철학과'로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한다고 일갈한다. 이러한 폐쇄성은 단순히 이름의 문제를 넘어선다. 주류 철학계는 비서구 철학을 향해 "논리적 엄밀함이 부족하다"거나 "종교적 신념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퍼붓지만, 이는 대개 해당 문헌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리는 편견일 뿐이다.


저자는 불교의 나가르주나가 펼치는 정교한 논리학이나, 맹자의 심리학적 통찰이 서구의 현대 인지과학 및 윤리학과 얼마나 깊게 공명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준다. 데카르트의 '실체' 개념의 오류를 불교철학의 '오온(五蘊)' 이론이 메워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서구 철학이 해결하지 못한 난제들에 대해 비서구 철학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대안적인 경로를 제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서구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세운 지식의 성벽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Jean-Léon_Gérôme_-_Le_charmeur_de_serpents.jpg 장 레옹 제롬 - 뱀 조련사 (1879)


왜 '다문화주의'인가


반 노든이 주장하는 다문화주의 철학은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PC)'을 지키기 위한 구색 맞추기가 아니다. 그것은 철학 본연의 임무, 즉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도구를 활용하는 덕목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그는 철학을 일종의 '도구상자'에 비유한다. 현대 문명이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망치(서구 철학)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펜치나 드라이버(비서구 철학)도 함께 갖춰야 한다.


근대 자유주의 철학이 개인의 권리와 원자론적 자아에 매몰되어 사회 연대의 붕괴를 막지 못할 때, 유교의 관계적 자아론은 강력한 치유책이 될 수 있다. 환경 위기 앞에서 인간 중심주의 사고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만물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는 불교의 공(空) 사상이나 도가의 자연관은 회복의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다문화 철학은 '서구 철학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서구 철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가자는 제안이다. 이런 신사적인 제안조차도 무시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상아탑의 고립과 정치적 고립주의


학계의 폐쇄성은 현실 정치의 고립주의와도 궤를 같이한다. 반 노든은 트럼프 시대로 대변되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혐오의 정치가 서구가 타자의 사유 방식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한 지점에서 싹텄다고 본다. 대학에서부터 '서구의 가치만이 유일하고 보편적이다'라고 배운다면, 외부 세계에 대한 공포와 적대감을 갖게 되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철학이 상아탑에 갇혀 자기들만의 난해한 용어로 서구의 개념만을 되풀이할 때, 대중은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철학에서 찾지 못하고 저질스러운 선동가들에게 매료된다. 저자는 철학을 사치품으로 치부하고 직업 훈련으로만 교육을 축소하려는 시도가 "지배층은 인문 교육을 받고 피지배층은 기술만 배우는" 봉건적 계급 구조를 재현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철학의 탈환은 학문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하는 정치적 행위가 된다.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회는 결코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The_Qianlong_Emperor_in_Ceremonial_Armour_on_Horseback.jpg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 건륭제가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 있는 모습 (1758)


철학의 주인은 누구인가


결국 반 노든이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 것은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철학은 특정 인종이나 지역의 전유물이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고뇌와 탐구의 기록이다. 저자는 철학 교육이 '위대한 백인 남성들'의 계보를 암기하는 학문에서 벗어나, 전 세계 모든 문명이 일궈온 지적 유산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대화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학을 서구의 전유물로 여기는 편견은 인류가 수천 년간 쌓아온 지적 유산의 절반 이상을 스스로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해에 가깝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된 철학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지혜(philo)를 사랑(sophia)한다면, 왜 지혜가 담긴 상자의 색깔을 따지며 배척하는가. 철학과가 진정으로 보편적인 학문의 자부심을 지키고 싶다면, 공자의 '인(仁)'과 소크라테스의 '엘렝코스(elenchus)'를, 불교의 '무아(無我)'와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를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어야 한다. 아즈텍의 현자들과 인도의 논리학자들도 교과 과정에 초빙해야 한다. 커리큘럼의 개편은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기 위한 임시변통이 아니라, 철학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 코스다.


71QQSDedVIL._AC_UF1000,1000_QL80_.jpg Taking Back Philosophy - Bryan W. Van Norde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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