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한 아이디어의 계보학
멀티버스라는 단어를 마주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스파이더맨이 나오는 마블 영화의 화려한 시각 효과? 아니면 난해한 SF 소설의 설정 놀음? 세인트 조셉 대학교의 물리학 교수인 폴 핼퍼른은 저서 『멀티버스의 유혹: 여분의 차원, 다른 세계, 그리고 평행 우주(The Allure of the Multiverse: Extra Dimensions, Other Worlds, and Parallel Universes)』 를 통해 멀티버스라는 기괴한 이론이 학계의 수면 위로, 대중들의 화젯거리로 떠오른 궤적을 치밀하게 추적한다. 저자의 논지는 명확하다. 멀티버스는 과학자들이 단순히 재미로 만들어낸 상상이 아니라,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논리적 필연성'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핼퍼른은 책의 초반부에서 멀티버스 이론의 계보를 되짚는다. 고대 힌두교 철학자들은 우주가 억겁의 시간에 걸쳐 창조와 파괴를 반복하며 끝없이 무한하게 순환한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혁명가 오귀스트 블랑키는 무한한 우주 공간에 우리와 똑같은 역사가 무한히 반복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니체는 유한한 물질과 에너지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미래에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핼퍼른은 이러한 철학적 가설이 어떻게 훗날 물리학자들의 수식 속으로 스며들었는지를 흥미롭게 서술한다.
먼저 우리를 본격적인 과학의 영역으로 안내하는 주인공은 양자역학이다. 양자역학은 모든 것이 확률의 안갯속에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휴 에버렛 3세라는 젊은 물리학자가 등장한다. 그는 관찰자가 측정하는 순간 파동 함수가 하나로 붕괴된다는 기존의 해석을 거부하고 '다세계 해석'을 내놓았다. 에버렛에 따르면, 당신이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 짜장면을 선택한 순간, 짬뽕을 먹는 당신이 존재하는 또 다른 우주가 실제로 분화된다. 비록 우리가 다른 우주를 관측할 수는 없지만, 수학적으로는 모든 세계가 동시에 실재한다는 이론은 현대 멀티버스 담론의 강력한 기둥이 되었다.
1970년대 고안된 '인플레이션 이론'은 우리 우주가 빅뱅 직후 초고속 팽창을 겪었다고 설명하는데, 이 과정에서 팽창이 단 한 번에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내는 영원한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안드레이 린데 같은 학자들은 마치 끓는 물속의 거품처럼, 무수히 많은 거품 우주가 생성되고 있다는 모델을 제시했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무한한 거품들 중 하나일 뿐이며, 다른 거품 우주는 우리 우주와는 전혀 다른 물리 법칙에 지배된다.
여기에 만물의 최소 단위를 진동하는 끈으로 보는 '끈 이론'이 가세하면 이야기는 더욱 방대해진다. 끈 이론은 우리가 사는 4차원을 넘어 10차원 혹은 11차원의 세계를 상정하며, 그 여분의 차원들이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로 말려 있다고 설명한다. 그 말려 있는 방식에 따라 우주의 물리 상수가 결정되는데, 그 가짓수가 무려 10의 500 제곱이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숫자에 이른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 하필 우리는 수많은 우주 중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이토록 완벽하게 조율된 우주에 살고 있는가? 중력이 조금만 더 강했거나 전자기력이 조금만 약했어도 별과 은하, 그리고 인간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를 소개한다. 무수히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면, 그중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대다수의 우주는 관찰자가 없으므로 무시되고, 오직 운 좋게 조건이 맞는 우주에서만 지적인 존재가 태어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게 된다는 논리다.
이 지점에서 과학계의 격렬한 대립이 발생한다. 회의론자들은 관측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멀티버스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 공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칼 포퍼의 기준에 따르면 과학의 본질은 반증 가능성에 있는데, 멀티버스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다른 우주에서는 그럴 수 있다"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준다. 관찰할 수 없는 우주의 무한한 탄생을 가정하는 이론은 '가장 단순한 설명이 최선'이라는 오컴의 면도날 원칙과도 어긋난다.
핼퍼른은 이러한 비판이 정당한 평가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옹호론자들의 입장도 충실히 대변한다. 그는 시카고 고층 빌딩 거주자의 비유를 들고 온다. 시카고 고층 빌딩 거주자는 건물 아래 암반층을 직접 볼 수 없지만 건물이 무너질까 염려하지 않는다. 탄탄한 지층이 고층 빌딩을 지탱하듯, 멀티버스라는 수학적 구조가 우리 우주의 물리 법칙과 가설을 일관성 있게 설명해 준다면 그 존재를 상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합리적이다.
또한 역사적 선례는 과학사에서 한때 '비과학적'으로 취급받던 개념들이 중심 이론으로 편입되었음을 알려준다. 물리학자들은 초기에는 4차원 개념을 거부했으나 현재는 상대성 이론의 핵심이다. 우리는 블랙홀 내부 특이점이나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관측할 수 없지만 이론적 정합성을 근거로 과학적 진실로 받아들인다. 게다가 핼퍼른은 다른 우주가 영원히 검증 불가능한 영역에 머물지 않으리라 낙관한다. 우리 우주가 만들어질 때 이웃한 우주와 충돌했다면 우주 배경 복사(CMBR)에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고, 이를 편광 프로필 분석을 통해 탐지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 핼퍼른은 멀티버스의 무한한 혼돈을 거부하고 단일 우주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시도들도 소개한다. 폴 스타인하르트와 닐 투록은 '순환 우주' 이론을 제시한다. 이들은 시공간이 주기적으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이전 주기의 정보를 정화하고 새로운 주기를 시작한다고 본다. 로저 펜로즈는 우주의 종말이 수학적 변환을 통해 다음 우주의 탄생(빅뱅)으로 연결된다는 시나리오도 내놓는다.
저자는 멀티버스 담론이 '미세 조정 문제'나 '신의 설계 가설'을 우회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엉성하게 내놓은 가설이라는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멀티버스 이론은 단순한 몽상이 아닌 우주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가설이라며 옹호한다. 직접적인 실험 증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면서도, "무조건적인 거부"보다는 "신중한 개방성"으로 검토해 달라고 제안한다.
엄밀히 따지면 이 책은 전문가적 관점에서 멀티버스 이론을 심도 있게 고찰하는 책은 아니다. 우주론 입문자를 대상으로 멀티버스 이론을 찍먹(?)하게끔 친절하게 서술한 대중과학서에 가깝다. 그 탓일까? 멀티버스 논쟁의 핵심 철학적 문제들—특히 반증 가능성 문제나 인류 원리 비판—은 비교적 짧게 지나간다. 저자는 과학이 발전하여 멀티버스를 뒷받침할 증거가 축적되리라고 낙관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늘 강조하듯이 지금은 '회의론'에 비중을 두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다른 우주의 존재를 영원히 증명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중우주론은 인간의 지성이 더 이상 넘어서기 힘든 거대한 장벽으로 밝혀질지 모른다는 예상은 나만의 기우일까? 우주의 비밀을 풀기 위해 끊임없이 경계를 넓혀온 물리학의 여정이, 이제는 인간 지식의 영구적인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을지 모른다. 지금 가장 정직한 답변은 '우리는 아직 모른다'라는 고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