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권력에 딴지를 걸다

무정부주의를 철학으로 변호하다

by 탱귤도령


처음 훈련소에 입소한 날이 떠오른다. 훈련소 정문을 지나고 고작 몇 분만에 나는 국가의 명령에 따라 살고 죽는 군인 신분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부당한 폭력과 강압이 '국가'의 이름 아래에서는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정당성을 얻는다. 콜로라도 대학교 철학 교수 마이클 휴머(Michael Huemer)의『정치적 권위의 문제: 강제할 권리와 복종할 의무에 대한 고찰 (The Problem of Political Authority: An Examination o the Right to Coerce and the Duty to Obey)』는 바로 이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는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국가의 '통치할 권리'와 시민의 '복종할 의무'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 사기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1920px-Funeraloftheanarchistgalli.jpg 카를로 카라 - 아나키스트 갈리의 장례식 (1910-1911)


저를 지켜준다고요? 갑자기요?


정치철학의 근본 문제는 다음 문장으로 요약된다. "왜 어떤 사람들은 명령할 권리가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가?" 휴머는 복잡한 정치 이론을 들먹이기 전에 우리의 일상적 도덕 직관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경단원' 비유를 제시한다. 범죄가 들끓는 마을에서 한 개인이 직접 총을 들고 범죄자를 잡아 지하실에 가둔 뒤, 이웃들에게 '치안 유지비'를 요구하며 불응 시 똑같이 가두겠다고 위협한다고 상상해 보자. 우리는 그를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깡패로 본다. 그런데 국가가 동일한 행위를 할 때 우리는 이를 '법치'와 '권위'로 부르며 도덕적으로 승인한다. 완전히 유사한 행위인데 왜 평가가 달라질까?


휴머는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개념이 바로 '정치적 권위'라고 말한다. 정치적 권위란 국가가 강제를 행사할 정당한 권리가 있고, 시민은 국가의 명령에 복종할 특별한 의무를 진다는 믿음이다. 그는 이 권위의 구성 요소를 일반성, 특수성, 내용 독립성, 포괄성, 최고성이라는 다섯 조건으로 정리한다. 국가는 거의 모든 시민에게 적용되며(일반성), 자국민에게만 특별한 권위를 행사하고(특수성), 법의 내용과 무관하게 복종 의무가 발생하며(내용 독립성), 광범위한 영역을 규제할 수 있고(포괄성), 다른 어떤 인간 집단보다 우위에 선다(최고성). 휴머는 이 다섯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도덕적 권위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묻는다.


계약서를 쓴 적이 없는데요?


정치 권위를 옹호하는 오래된 논리는 '사회계약론'이다. 사회계약론은 보호를 받는 대가로 시민이 국가에 복종하기로 합의했다는 논리를 편다. 휴머는 실제 현실에서 이러한 계약이 존재한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존 로크와 같은 초기 계약론자들은 국가 형성 시기에 명시적인 합의가 있었으리라 추측했지만 사실 대부분의 국가는 유혈 정복과 권력 장악을 거쳐 세워졌다. 명시적 사회계약론은 역사적 근거에 비추어 볼 때 명백한 허구다.


그렇다면 암묵적 동의는 어떤가? 투표를 하거나 국가 인프라를 이용하는 행위 자체가 동의의 표시라는 주장에 대해 저자는 '합리적 탈퇴 옵션'이 없는 선택은 동의 여부가 의미 없다고 반박한다. 잠든 사이에 자유의사 없이 배에 강제로 실려 온 사람에게 "바다에 뛰어내리지 않는 한 선장의 권력에 동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꼴이다. 지구상의 모든 땅을 국가 체제가 점유한 현실에서 떠날 자유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계약은 존재하지 않는 유령에 불과하며 국가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실질적 근거가 될 수 없다.


민주주의와 결과주의


이제 민주주의가 구원투수로 등판한다. 민주주의자들은 다수가 찬성하고 평등한 투표권이 보장되며, 토론의 절차를 지켰다면, 그 결과로 나온 법률은 정당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멀다. 실제 민주정은 이익 집단의 로비와 정치인의 선동, 편견에 휩싸인 유권자의 기분에 좌우된다. 다수결 원칙 또한 도덕 면허가 될 수 없다. 다수의 의지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권리를 자동으로 부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의 한 방법일 뿐, 정치 권위의 궁극적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결과주의적 정당화도 충분하지 않다. 국가는 치안과 국방, 사회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유익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서 그가 나를 강제할 권리를 얻지는 못한다. 국가는 치안이나 국방처럼 꼭 필요한 일뿐만 아니라, 감시와 사찰 등 개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수많은 일을 저지르며 이를 '권위'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휴머는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재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이 곧 권위의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한다.


스크린샷 2026-03-17 170622.png 나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권위의 굴복, 인간 본성의 역설


왜 수십억 명의 인류가 이토록 근거 없는 권위에 복종하는가? 그는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통해 인간이 권위에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보여준다. 제복과 제도적 지위의 힘은 합리적 판단을 방해한다. 일단 복종이 시작되면 인지 부조화를 줄이려 우리는 "이 권위는 정당하다"며 스스로를 설득한다. 국기, 애국가, 의례, 장엄한 건축물은 권위를 심미적으로 포장한다. 난해한 법률 용어는 법을 신비화하여 시민들이 감히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만든다. 휴머는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스톡홀름 증후군'과 유사하다고 분석한다. 압도적인 폭력을 보유한 가해자(국가)가 가끔 베푸는 호의(복지)에 감동하며 피해자(시민)가 가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시는 구조다.


무정부주의에 흔히 제기되는 반론은 인간 본성에 호소한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악한 탓에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국가 권위가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정말로 인간 개개인이 악하다면 독점적이고 합법적인 권력을 일군의 무리에게 쥐어주는 것이 과연 안전할까? 국가 권력을 손에 넣은 소수의 인간들은 개인의 범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참극을 낳았다. 20세기 자국의 지도자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은 1억 명이 넘는다. 권력의 집중은 남용을 낳고, 권력 분산(아나키)은 상호 견제를 강제한다.


휴머식 무정부주의의 비전


휴머는 치안과 사법이 시장의 경쟁 체제로 전환되는 '아나코-자본주의'을 지지한다. 그가 제안하는 시스템은 민간 보호 기관들이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관 간의 분쟁은 민간 중재 법원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이다. 국가라는 독점 기업은 서비스 질이 낮고 비용(세금)은 높지만, 경쟁이 도입되면 더 저렴하고 효율적인 보호가 가능하다. 국가 간의 전쟁은 권력욕과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전쟁보다 평화로운 중재를 선택할 경제적 동기가 크다. 휴머는 국가의 독점이 사라진 자리에 자발적 협력과 질서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독자를 설득하려 한다.


야만을 대체하는 다른 야만을 소환하라고?


anarchism.jpg 아나키즘 활동가들의 시위


휴머가 전개하는 국가 권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아나키즘의 정당성 부여는 분명 탁월한 지적 성취다. 그는 국가를 도덕적으로 예외의 존재로 인식하는 사고방식을 해체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복종의 의무가 사실은 심리적 착각과 전통이란 이름의 강제에 기반하고 있음을 증명한 논리도 강력하다.


그러나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아나코-자본주의는 국가라는 괴물을 몰아낸 자리에 '자본'이라는 더 야만적인 괴물을 앉히는 위험한 도박이다. 사법 서비스가 시장 상품이 되는 순간, 정의의 척도는 지불 능력으로 전락한다. 이는 공적 독점을 있는 자의 사적 독점으로 바꾸고, 법과 질서가 자본의 논리에 완전히 종속되는 신봉건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유재산권의 절대 숭배 위에 세워진 자본주의는 강자의 지배를 영속한다. 휴머의 해법은 병증보다 더 치명적인 독을 처방하는 셈이다.


아나키즘은 국가의 강제력을 거부하는 동시에 시장의 폭력으로부터도 해방되는 길이어야 한다. 국가라는 공적 억압과 자본이라는 사적 착취를 동시에 거부할 때 비로소 개인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국가 권위를 해체하는 작업은 설득력 있지만, 그 공백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더 많은 논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복종하는가. 무엇이 강제를 정당화하는가. 강제와 권위를 넘어선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휴머의 책은 많은 사람들이 애써 외면해 왔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더 나은 대안을 찾는 임무가 우리에게 맡겨졌다. 열정적으로 토론하고 싸워보자.


61+b5UA9kfL._AC_UF1000,1000_QL80_.jpg The Problem of Political Authority - Michael Huemer, 2012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