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깡마르고 거무튀튀한 누룽지
밥물 깊은 곳에 내려 앉은 것은
힘이 없어서 눌려 깔린 것이 아닙니다
한여름 뙤약볕을 이겨내고 몸집과 내실을 키웠기에
물의 부력을 저항하고 먼저 바닥으로 내려 간 것입니다
솥단지 바닥 밑에서 화산불처럼 올라오는 기운을
온몸으로 까맣게 막아 내어 어깨 위에 차곡차곡 쌓인
동지들이 사랑받는 하얀 쌀밥으로 태어나고,
바닥에 눌어붙은 이 몸에 주걱이 내려와 굳어 버린
등딱지를 토닥거릴 때도,
밥그릇에 담기지 못한 슬픔보다
무엇인가를 이루는데 일조한
무한한 기쁨을 느낍니다
말려지고 저장되어 죽음의 잠을 깊이 자더라도 언젠가
다시 물과 결합하여 부드럽고 구수한 누룽지로의
부활을 기대하기에
더 깊은 사랑으로 다시 만날 것을
이 단단한 몸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