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마음이 무거웠던 육아휴직 마지막 날 밤

육아휴직 후 달라진 홍시와 나

by 허군

처음 육아휴직을 시작할 때 4개월이라는 시간이 제법 길게만 느껴졌다. 홍시와 친해지고 같이 즐거운 추억을 쌓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벌써 오늘 밤이 육아휴직 마지막 날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당장 내일부터 내가 어디로 떠나는 것도 아니고 홍시를 더 이상 못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는 밤이다. 육아휴직 마지막 날 잠든 홍시를 우두커니 보고 있자니 4개월간의 추억들이 머릿속에 하나씩 지나간다



19년 4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4개월 간의 아빠 육아휴직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다. 이렇게 육아휴직 마지막 날 잠든 홍시를 옆에 앉아서 우두커니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먹먹해진다. 이제 내일부터 회사를 나가야 한다니... 믿기지 않는다. 회사에 출근한다고 홍시를 못 보는 것도 아닌데 그냥 괜히 기분이 이상하다. 무기력하다가도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면 막 웃음이 나고, 그러다가 또 아침에 어린이집 등원을 못 시켜준다는 사실에 우울해진다.


[홍시와 제주도 한 달 살기]


4개월간의 육아휴직 동안 가장 큰 추억은 아무래도 제주도 한 달 살기였던 것 같다. 직장 다니는 나로서는 육아휴직이 없었더라면 내 인생에서 아이와 제주도 한 달 살기는 생각지도 못했을 거다. 숙소부터 배편까지 오랜 시간 준비해서 아이와 함께 다녀온 제주도 한 달 살기는 정말 꿈만 같았다. 한걸음만 밖으로 나가면 펼쳐지는 제주도 바다와 숲은 나와 정양, 그리고 홍시한테 정말 멋진 추억을 안겨줬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쓰자면 홍시가 걸음마를 하고 나서 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숙소가 비싸더라도 잔디밭이 넓게 있는 집을 한 달간 빌렸는데 홍시가 걸음마를 못하니 100%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그 외에도 휴양림, 섬, 유명 관광지를 갈 때마다 홍시가 같이 손잡고 걸어 다녔으면 참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조금 남기도 한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아야 제대로 된 여행을 한 거라고 하지 않았나. 이번에는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고 왔으니 다음번엔 해외 한 달 살기를 목표로 계획을 짜 봐야겠다.


[인생의 쉼표]


누군가가 나한테 육아휴직이라 잘쉬다 왔냐고 물으면 조금은 화가 난다. 육아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육아휴직은 절대로 쉬려고 하는 게 아니다. 사실 휴직기간 동안 느낀 건데 회사를 다니는 게 육체적으로는 조금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마 홍시의 경우에는 일정 시간 동안 어린이집을 보냈기에 그나마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설거지, 빨래, 청소, 이유식, 간식 준비... 주변에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육아 및 살림을 혼자 하는 엄마 혹은 아빠들이 있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육아휴직이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육아휴직을 통해 나는 내 인생에서의 쉼표를 잠시 찍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월급 받으며 직장을 다니면서 아무런 이유 없이 4개월의 휴직은 꿈도 못 꾸는 일이다.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덕분에 육아휴직 통해서 아빠인 나도 합법적인 휴직을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회사를 4개월간 안 나간다는 게 뭔가 어색하고 회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섰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니 회사일은 머리에서 자연스레 잊히고, 머릿속에는 온통 홍시와 함께한 시간으로 채워져 갔다. 회사에 입사해서 7년간 항상 머릿속은 회사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은데 잠시나마 내 머릿속도 "쉼"이라는 단어가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인생에 있어서 4개월이라는 시간이 정신적으로 큰 전환점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분명 지금 내 머릿속 쉼표가 내가 회사에 돌아가는 데 있어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육아휴직 후 달라진 홍시와 나]


누군가가 아빠 육아휴직에 대해서 어땠냐고 물어보면 나는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하고 싶다. 지금 아빠 육아휴직을 고민하고 있다면 3-4개월 만이라도 꼭 사용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의 육아휴직이 끝난 시점이 대략 첫돌 시점인데 이 시기가 아이와의 애착형성에 정말 좋은 시기인 것 같다. 그래서 이때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고 같이 있어준다면 아이한테도 나한테도 정말 좋은 것 같다. 나 역시 생후 11개월부터 약 4개월간 육아휴직을 사용했는데 4개월 동안 아이와 정서적으로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그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아빠와의 유대감이 확실히 생긴 느낌이다.
멀리서도 나를 보면 달려와서 안아주고, 먹을 것을 손에 쥐고 있다가 내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같이 공을 주거니 받거니 놀다 보면, 이제는 진짜 홍시가 나를 믿고 의지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이런 홍시의 행동들 만으로도 4개월간의 육아휴직은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다. 사실 육아휴직이 조금 짧은 것 같은 느낌도 있긴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아쉬움이 남아야 즐거운 여행이니, 다음 여행을 기다리며 앞으로도 친구 같은 아빠,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아빠가 되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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