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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군 Oct 28. 2021

육아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단어 '넛지 Nudge'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방법

 요새 우리 가족의 저녁 일상에서 자전거 산책은 빼놓을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서 홍시를 집에 데리고 온 다음, 저녁을 먹고 나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산책한다. 불과 1-2주 전만 해도 킥보드만 타겠다던 홍시는 이제 킥보드 보다 자전거를 더 좋아한다.


 한 달 전, 홍시에게 새로운 자전거를 사줬다. 집에 물려받은 자전거가 있긴 한데 너무 커서 잘 못 타는 것 같기에, 4살 아이들한테 잘 맞는 14인치 자전거를 새로 구입했다. 직구로 구매한 자전거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조립을 시작했다. 아들에게 줄 자전거를 샀으니 빨리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 세 가족이 함께 자전거 라이딩을 다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새로운 자전거를 가지고 집 밖을 나섰다. 주변에 자전거를 타는 형, 누나들도 있었고, 홍시도 새로운 자전거를 싫어하는 거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의욕적으로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직접 홍시 발을 잡고서 페달링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고, 뒤에서 살짝 밀어주면서 속도를 느낄 수 있게도 해줬다. 홍시가 킥보드 보다 빠른 자전거의 속도감을 느끼고, 형 누나들이 타는 걸 보면 금방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홍시는 자전거에 흥미는커녕, 그날 이후로 자전거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가끔 자전거를 타자고 물어봐도  절대로 타지 않겠다고 하는 홍시를 보며 내가 뭘 잘 못한 건 없었나 생각했다. 내가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칠 때 너무 강압적이지는 않았는지, 홍시가 자전거를 탈 때 뭔가 불편한 게 있었는지 계속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책 넛지(Nudge)가 생각났다. 전에도 육아를 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됐었던 책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또 한 번 이 책이 생각났다. 넛지라는 게 어려운 단어처럼 들리지만 알고 나면 쉽다. 누군가에게 어떤 선택이나 행동을 유도할 때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개입으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쉽게 말하면 누군가가 무언가로 고민할 때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찔러서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도한다는 뜻이다.


 이 '넛지'를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홍시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 나는 오랫동안 기다린 자전거가 집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너무 신이 났었다. 그래서 빨리 조립해서 홍시를 태워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자전거를 조립할 때, 홍시는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잘 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홍시에게 자전거를 빨리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에, 새 자전거를 보여주며 엄청 재미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홍시와 함께 밖으로 나갔었다. 홍시 입장에서 보면 '나는 자전거에 흥미도 없고 잘 타지도 못하는데, 그리고 지금 집에서 잘 놀고 있었는데 굳이 아빠는 왜 나가서 자전거를 타자고 하는 걸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홍시에게 자전거를 타러 가자는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타기 싫은 자전거를 배워야 하는 건 어른이나 아이한테나 스트레스이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복도에 쓸쓸히 놓여있는 자전거를 보면 마음이 안 좋았지만 그래도 홍시를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홍시가 자전거에 흥미를 자연스럽게 갖게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나랑 정양이 즐겁게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랑 정양은 현재 자전거가 없기에 홍시한테 자전거를 타는 게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 건지 알려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홍시 입장에서 보면 '엄마랑 아빠는 타지도 않는 자전거를 왜 자꾸 자기한테 타라고 하는 걸까'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정양과 같이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쌓고,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자전거를 구입하기로 했다. 때마침 사려고 예약을 걸어놨던 자전거 가게에서 우리가 예약한 자전거가 도착했다고 연락이 와서 고민 없이 자전거를 샀다. 그리고 나와 정양의 자전거를 처음 산날 홍시와 같이 밤 산책을 나섰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홍시는 킥보드를 탔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산책했다. 같이 경주도 하고 걷기도 하고 벤치가 보이면 쉬기도 하면서 평소의 어느 날과 같이 똑같이 저녁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홍시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저녁 산책을 나가는데 홍시가 자기도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왜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자전거를 타는 걸 보니, 자전거가 킥보드 보다 빠르고 재미있어 보여서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저녁 산책을 나섰다. 홍시가 일단 자전거에 흥미는 가졌지만 아직 제대로 타는 법을 배우지는 못해서 잘 가르쳐줘야겠다 생각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홍시가 자전거를 혼자서 탈 수 있다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홍시 발에 손을 대고 직접 페달링을 안 해줬는데, 홍시는 어색하지만 스스로 조금씩 페달링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제 엄마가 자전거 타는 걸 봤다며 혼자 할 수 있다며 그렇게 홍시의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홍시는 엄마, 아빠가 함께 자전거 타는 걸 보여주고 난 다음날부터 자전거가 없이는 못 사는 4살이 되었다. 마트를 갈 때도, 산책을 갈 때도, 캠핑을 갈 때도 자전거와 함께 집을 나선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서 페달링뿐만 아니라 내리막 길에서는 브레이크로 속도를 줄이며 내려가고, 사람이 앞에 있을 때 벨도 울리며 자전거를 탄다.


 이번에 홍시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면서 다시 한번 '넛지'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부모가 원해서 아이한테 강요하면 아이들은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육아를 하면서 매번 이런 걸 생각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내가 아이와 함께 하려던 무언가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넛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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