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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고시와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속도인가

조금 느려도 괜찮아, 웃을 수 있다면

by 허군

며칠 전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랄 만한 기사를 읽었다. ‘7세 고시’라는 말은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4세 고시’라는 단어도 있다니. 처음에는 그냥 인터넷에서 과장된 표현이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신문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진짜였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6세 미만 영유아 중 절반 가까이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영어, 수학, 코딩은 기본이고, 심지어 인터뷰 준비까지 시킨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아직 제대로 글씨도 못 쓰는 아이들이 '시험'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살아가는 세상. 이게 과연 정상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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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한 ‘4세 고시’, 유명 학원이나 초등 입시를 위한 ‘7세 고시’라는 단어는 어느새 우리 아이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었다. 아들 친구 중에도 벌써 학원 스케줄로 꽉 찬 아이가 있다. 영어유치원이 끝나면 영어학원, 그다음엔 수학학원, 주말에는 코딩과 제2외국어 수업까지 이어진다. 아직 친구들과 흙장난 치며 뛰어놀 나이인데,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서는 바로 숙제를 시작해야 한다. 유치원생이 구구단을 외우고 영어로 대화하는 게 당연해진 시대. 심지어 한 달에 150만 원이 넘는 영어유치원 비용을 두고 "그 정도면 싼 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초등학생들이 치르는 '황소 고시'라는 학원 시험에는 300명 정원에 1,800명이 몰린다고 한다. 학원 입학을 위해 따로 과외를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런 현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했다. 우리도 언젠가 이 흐름에 휩쓸리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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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시험과 평가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놀이보다 시험 준비가 먼저고, 창의적인 활동보다 반복 학습이 일상이 된다면, 한창 자아가 자라나는 시기의 아이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예전에는 친구들과 놀며 넘어지고, 깨지고, 울면서 세상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아주 작은 실패를 경험할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정말 중요한 건 뭘까?' 하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게 됐다. 빠르게 앞서가는 대신, 우리 아이가 진짜 배워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사교육이 모두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아이 스스로 관심을 보이는 분야를 좀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도록 돕는 사교육이라면, 충분히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아이가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 있다면,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 흥미를 키워줄 수도 있다. 주말에는 미술관에 함께 가서 다양한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게 해줄 수도 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와 연결된 일일 클래스나 체험 수업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아이가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경험을 쌓는 사교육이라면, 분명 아이에게 좋은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천천히, 누군가는 빠르게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남들도 하니까"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몰아세운다면, 결국 아이는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아들에게 "친구들과 똑같이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해주려 한다. 아직은 그 말의 의미를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그 말이 아이에게 작은 버팀목이 되기를 바란다.


얼마 전, 아들이 말했다. "아빠, 우리 반 친구들은 벌써 영어를 잘해." 나는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 영어는 천천히 시작해도 돼. 배우고 싶을 때 시작해도 늦지 않아. 뭔가를 배우는 데는 정해진 시간이 없는 거야."


그래서 결심했다. 아이가 자신의 속도로 자랄 수 있도록, 조급해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봐 주기로. 친구들보다 조금 늦더라도 괜찮다고, 그건 실패가 아니라고 알려주기로 했다. 학원에서의 경쟁보다 친구와 함께 웃고 다투는 시간을 먼저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가도 괜찮다. 아이 스스로 웃을 수 있는 힘을 가진다면, 그것이 결국 우리가 믿는 가장 확실한 정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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