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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 착각하는 '자기주도학습'

공부는 잘하는데 왜 스스로 결정은 못할까

by 허군

요즘 ‘자기주도적인 아이로 키우자’는 말을 정말 자주 듣는다. 아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고, 숙제를 하고, 책도 찾아 읽는 모습. 주변에서 그런 아이를 보면 자연스레 말한다. “와, 저 집 아이는 자기 주도적이야” 하지만 정말 그것만으로 자기 주도적인 아이가 된 걸까?


가끔은 그 말이 너무 납작하게 느껴진다. 물론 주어진 일에 대해 스스로 움직이는 태도는 중요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챙기는 아이. 그건 분명 대단하고 멋진 태도이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부지런함’, 혹은 ‘성실함’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자기 주도성’이라는 말속에는 조금 더 복잡하고 섬세한 무언가가 숨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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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자기 주도적인 아이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해야 할 때, 그 일이 나에게 정말 필요한 일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고, 필요하다고 느끼면 스스로 해보려는 마음을 내는 것. 반대로 그게 지금 나에게 맞지 않다고 느껴지면, 그 이유를 또박또박 설명할 수 있는 용기. 그 모든 선택이 아이 ‘스스로’에게서 시작될 때, 그제야 비로소 진짜 자기 주도성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러니까 부모인 우리는, 정작 아이에게 그런 선택의 기회를 잘 주지 못한다. “스스로 해보라”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아이가 잘못된 길을 선택할까 봐, 실패를 겪을까 봐, 상처받을까 봐 그 길을 가보기도 전에 얼른 막아버릴 때가 많다.


"그건 안 돼."
"그렇게 하면 안 될 거야."
"이게 더 빠르고 쉬운 길이야."


물론 아이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지만, 그 순간마다 아이는 자기 생각을 접고, 결정을 미루게 된다. 사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무심결에 아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경험을 토대로 아이가 해야 할 결정을 강요하는 순간이 참 많았다. 특히 눈앞에 결과가 훤히 보이는 결정이라면, 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건 아니야”, “그렇게 하면 힘들어” 같은 말을 꺼내고 만다.


예를 들면, 흐린 날씨에 굳이 우산을 안 들고 가겠다고 할 때가 있었다. 나는 비 맞고 돌아오면 감기 걸릴까 걱정되기도 하고, 친구들한테 우산 같이 쓰자는 말도 못 할까 봐 기어코 아이의 손에 우산을 쥐어서 내보낸다. 그리고 속으로는 ‘이건 도와주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변명한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 우산 없이 나가서 비를 맞고 돌아온다면, 아이는 어떤 걸 느끼게 될까? 축축하게 젖은 신발 속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다음에는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스스로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우산이 없는 친구와 어깨를 맞대고 빗속에서 웃으며 걸어오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날의 비가 아이에게는 불편함이 아니라 기억에 남을 작은 모험이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어쩌면 아이는 그런 날들을 통해, 조금씩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 나갈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아직 경험이 쌓이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실패할 것 같은’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그 실패가 아이에겐 훌륭한 데이터가 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아, 다음엔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 "이 길은 너무 멀고 힘들었으니까, 다음엔 다른 길을 가야지."…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결국 아이는 자기만의 기준과 판단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쌓이는 수많은 작고 사소한 결정의 경험들을 토대로 아이는 진짜 자기 삶을 주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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