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티 Sep 26. 2021

기억의 아득한 접점들

 끝없이 이어진 넓은 길. 열네 살인 나와 친구들은 ‘츄리닝 공장’을 찾아 길을 따라 걸었다. 길 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눈부신 빛만 가득했고, 우리는 그 빛 속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리 풍경이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분명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회색 벽돌로 된 담벼락과 비스듬히 서 있는 전봇대의 풍경이 전혀 달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거리를 채운 햇살을 바라보며, ‘우리가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 연속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갇힌 우리는 찾아야 할 그곳에 영원히 도착할 수 없을 것이다.


  꿈이었다. 이상했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라 잊고 있었는데, 왜 뜬금없이 그때 일이 꿈으로 나타났을까? 낡아서 훼손된 필름처럼, 그 기억은 시간의 긴 터널을 지나오며 휘발되어 대부분 사라져 버렸고, 몇 장면만이 희미하게 생각날 뿐이었다. 기억나는 장면들도 다른 중력장에 존재하는 공간처럼 어딘가 휘어져 보였고, 그 안에서 뭔가를 기억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일그러지는 듯했다.

  담임이 우리(나와, 아마도 반장, 그리고 또 한 명 누군가)에게 장기 무단결석 중인 친구의 집 주소를 건넸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주소지로 찾아가 친구의 상황을 알아본 후, 친구에게 등교하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던 것 같다. 친구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경미? 아니면, 미정? 어쩌면 현미일지도 모를, 우리 세대의 흔한 여자 이름이었다. 담임이 친구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 그 애….’라고 친구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 같다. 키가 크고 마른 아이였다. 아니, 아닐지도 모른다. 그때 기억에 관해서는 무엇 하나도 자신 있게 재현할 수가 없다.

  친구의 동네에 도착하니, 복잡하게 연결된 비탈진 골목길 옆으로 서로 기대고 서 있는 허름한 집들이 보였다. 그리고 기억은 ‘점핑’하여 미닫이 방문을 열고 한 아주머니가 서서, 우리에게 친구가 집을 나가 암사동의 츄리닝 공장에서 일을 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그린다. 얼핏 보이는 방 안에는 색이 바랜 분홍 이불이 너저분하게 깔려 있었고, 아주머니는 미닫이문에 한 손을 기댄 채, 친구의 근황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다음의 기억은 우리가 암사동에 가서 친구를 찾아다녔다는 것, 그게 전부다.

  당시 나는 나름의 사춘기, 질풍노도의 중심에 서 있었고, 내 주변의 여러 상황도 그리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내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했기에, 그 일은 내게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없었다. 그냥 좀 특이했던 경험일 뿐이었다. 그런데 꿈으로 다시 나타나다니, 의외였다. 꿈이란 것이, 깨어난 직후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잔상과 감정들로 나름 심각하지만, 잠시 시간이 흐르면 별일이 아닌 것이 된다. 그 꿈도 그랬다. 그냥 골방 구석에 있는 먼지 쌓인 상자를 열어 그 안의 사진을 잠시 꺼내 보는, 그런 기억의 환기…, 정도였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렀다.


  봄이 오는 어느 저녁,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리사이틀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을 듣고 있었다. 1악장이 끝나고, 김선욱 피아니스트는 부드럽게 손가락을 움직여 2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피아노 소리가 창백하지만 단호하게 공간을 가르며 내게 전달되는 찰나, 그 일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츄리닝 공장’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생각났다. ⟨비창⟩과 츄리닝 공장이라니, 전혀 무관한 두 이름 사이에서 나는 어리둥절했다. 어떤 이유로 그 단어가 머릿속에 등장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내 안 그림자 같은 공간에서 형태 없이 부유하던 그 기억을, 베토벤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의식의 공간으로 건져낸 듯했다. 주파수가 맞았다고 할까? ⟨비창⟩의 울림에 공명한 내 심장이, 공장을 찾아다니던 그때의 심장 위로 딱 맞게 포개졌던 것 같다. 겹쳐진 마음은 ⟨비창⟩의 선율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암사동 어딘가에서 일을 했을 친구와 그 친구를 찾아다니던 우리는 모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밀려 그곳에 있었던 거라고.


  무엇이 우리를 낯선 동네에서 친구를 찾아다니게 했을까? 무엇이 우리에게 친구를 찾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게 했을까? 무엇이 친구를 공장으로 내몰았을까? 그날 어린 나는, 친구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말하던 어른들의 모습에 놀랐었다. 무슨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들의 태도가 납득되지 않는다. 십수 년 동안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날의 일은 내게 흐릿하게 떠오르는 기억이지만, 그 아이에겐, 감히 추측하건대, 선명하게 날이 선 시간이었을 거다. 친구 인생의 슬픈(슬프다고 규정해도 될까) 변곡점에서, 나는 엑스트라 배우처럼 잠시 스쳐 갔을 뿐이다. 그 접점의 순간을 무어라 해야 할까?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왔을 무수한 접점들, 그것을 생각하면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잠시 후…, 자욱하게 일어나는 감정들을 털어내고 다시 연주에 집중했을 때, 피아니스트는 ⟨비창⟩의 2악장을 마치고 3악장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에게 잠시 신이었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