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국수를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초파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맵게 비벼진 시뻘건 국수를 젓가락으로 집어 후루룩 먹으면서 눈으로는 초파리의 비행 궤도를 분주히 쫓았다. 놈은 한참을 날아다니더니 마침내 식탁 위에 살포시 앉았고, 기회를 놓칠세라 나는 잽싸게 왼손으로 그곳을 탁 내려쳤다. 젓가락을 든 오른손 대신 왼손을 사용했다는 핸디캡이 있었지만 꽤 정확한 조준이었다. 하지만 손을 뒤집어 결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저만치에서 검은 점이 비웃는 듯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며칠 전 책상 위에서 아들의 복숭아를 노리고 있는 초파리를 발견하고, 놈을 처치하기 위해 살살 다가가 손바닥을 휘둘렀던 적이 있었다. 나를 닮아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고딩’ 아들이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다.
“왜 초파리를 죽여야 해요? 곤충 중에 초파리가 제일 귀여운데. 애완 곤충이라 생각하고 그냥 두면 안 될까요?”
세상에나 애완 곤충이라니…. 역시 4차원 아들다웠다. 아들은 종종 내게 이런 식의 생뚱맞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아들의 초파리에 대한 과한 애정을 끌어내리기 위해, 그리고 어떤 질문 공세에도 끄떡없는 엄마의 내공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최대한 자극적으로 대답해야만 했다.
“초파리, 귀엽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초파리는 한 세대가 짧다. 엄마가 대학 생물실험 때 초파리를 키워봐서 알아. 알에서 금방 성충이 되어 마구마구 짝짓기를 하더니만, 알을 또 마구마구 낳더라. 순식간에 초파리 천국이 되었어. 죽이지 않으면 이곳은 초파리의 왕국이 될 거다. 그러면 국을 끓일 때, 날아다니던 초파리들이 뜨거운 김에 화상을 입어 국 안으로 빠지게 되고, 우리는 국에 빠진 초파리를 떠먹게 되겠지.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달려드는 초파리들과 경쟁해야 할 거야. 그래도 괜찮겠니?”
이 대답이 바로, 내가 초파리를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 가족의 위생과 쾌적한 생활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살생을 해야만 하는 이유였다.
일단 놓친 초파리는 포기하고 국수를 마저 먹었다. 마지막 가닥까지 다 먹고 나니 입안이 얼얼하게 매워져서 시원하고 ‘달달한’ 것이 먹고 싶어졌다. 마침 냉동실에 있던 커피 아이스크림이 떠올라 그릇에 담아 가져와서는 싹싹 다 먹어버렸다. 국수에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나니 배가 부르고 나른해졌지만 읽고 있던 손보미의 장편소설 《작은 동네》를 펼쳐 들었다.
그때 책 너머로 작은 뭔가가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나는 그것이 아까 손바닥 스매싱을 피해 달아난 초파리라고 생각했다. 녀석은 잠시 내 주변에서 왔다 갔다 하더니 아이스크림을 담았던 그릇에 사뿐히 앉았다. 그릇 가장자리에서 탐색을 하던 초파리는 목표물을 발견했는지 자석에 끌려가는 쇳가루처럼 점점 안쪽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는 그릇 안쪽 벽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드디어 녀석을 없앨 찬스가 왔다. 놈이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있을 때, 화장지로 꾹 눌러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장지를 꺼내기 위해 살짝 몸을 일으켰던 나는, 이내 슬그머니 앉고 말았다.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먹고 있는 초파리를 차마 죽일 수가 없었다. 노안이 왔고, 이십 년 전에 받은 눈 교정 수술 효과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깨알만 한 초파리의 등에서 나는 ‘집중’과 ‘만족’이라는 단어를 읽을 수 있었다. 날개를 바짝 접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초파리의 등에도 표정이 있었다. 초파리는 행복했다. 내겐 그리 보였다. 녀석은 점점 더 그릇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등에서 이 단어가 느껴졌다) 먹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실컷 먹고 실컷 행복을 느낀 후 죽게 해주자, 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나는 초파리에게 측은지심을 느꼈다. 녀석을 계속 지켜봤다. 심지어 속으로 말도 걸었다. ‘너 그러다 배 터져 죽겠다. 맛있냐? 야, 그거 유기농 아이스크림이다. 비싼 거야. 유화제가 덜 들어가서 먹고 나서도 속이 편하다.’
그렇게 한참 먹기만 하던 녀석은 어느 순간 먹는 것을 멈추는 듯 보였다. 이제 다 먹은 건가, 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초파리는 갑자기 휙 날아올랐다. 그런데 그 비행이 좀 이상해 보였다. 위로 올라가다 뭔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착각인지 모르지만,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몸이 무거워져 날기가 버거운 듯 보였다.
‘바로 이때다. 놈을 처리할 절호의 찬스.’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뿐이었다. 팔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느리게 날고 있는 녀석 양쪽으로 손바닥을 가져가 한 번 ‘짝’하고 치기만 하면 되는데, 손이 들리지 않았다. 뭔가가 날 망설이게 했다. 그렇게 초파리의 목숨을 내 손바닥 위에 놓고 머뭇거리는 사이, 위아래로 몇 번 힘겹게 날던 초파리는 어느 순간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초파리가 사라진 공간을 멍하게 보고 있는데, 졸음이 무겁게 몰려들었다. 《작은 동네》를 덮고 거실 소파로 가 누웠더니 바로 깊은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두어 시간 푹 자고 눈을 떴을 때, 작은 검은깨 같은 게 소파 아래에 떨어져 있는 걸 보았다. 뭔가 싶어 고개를 빼고 들여다보니, 죽은 초파리였다. 초파리 사체가 왜 거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아까 아이스크림을 먹던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믿어졌다.
우리의 목숨이 신에게 달려있다고 한다면, 초파리의 목숨을 쥐고 있던 잠깐 동안 나는 초파리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다. 나로 인해 초파리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죽을 수도 있었다. 허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초파리를 지켜보며 죽음을 유예하는 동안, 운명의 결정권은 내 손을 떠나 알지 못하는 곳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잠시 후 초파리는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죽음을 선고받고는 소파 밑에서 죽어버렸다. 왜 죽었는지는 나도 초파리도 모른다. 신이라고 부르거나 운명이라고 말하거나 또는 우연의 경우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언가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옅게 한숨을 쉰 후, 화장지 한 장을 가져와 초파리를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신과 죽음에 관한 나의 얄팍한 사유, 점점 위험한 영역까지 상상하려는 그것도 같이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다시 책을 펼쳤다.
* 유희경의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제목을 변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