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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hyo Nov 14. 2021

코로나 시대의 서울여행 (조선왕릉)

서울에 살다 - 조선왕릉 편

세계의 문화유산 조선왕릉. 조선시대의 왕과 왕비가 묻혀있는 곳으로 조선왕릉은 구분할 때 능과 원으로 구분을 해서 능은 왕이나 왕비의 무덤이고, 원은 왕세자나 왕세자비 또는 왕의 친척들의 무덤을 뜻한다.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는 왕릉의 보존상태가 완벽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 또한 한국인의 세계관을 ( 유교와 풍수지리 사상까지도) 담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관람정보

※ 관람 소요시간 : 1시간 내외

※ 휴일 : 매주 월요일 / 입장료 : 1000원

매표시간: 09:00~16:30  

관람시간 :  09:00~17:30  (시기별로 상이)






조선왕릉은 조선 역대 왕들의 무덤입니다. 화성 융릉과 건릉; 고양 서오릉; 서울 선릉과 정릉; 서울 태릉과 강릉; 여주 영릉과 영릉에 해당합니다



한눈에 보는 조선왕릉. 제가 다녀온 곳은 서울 태릉입니다.

출처: 문화재청 조선왕릉


탐방 순서 : 박물관-> 정자각-> 태릉

출처: 문화재청 조선왕릉
출처: 문화재청 : 조선왕릉




태릉泰陵(중종 비 문정왕후)

위치 :서울 노원구 화랑로 681

능의 형식 :단릉능의

조성 :1565년(명종 20)


* 하단의 내용은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출처 해온 것을 밝힙니다.


[능의 구성]


태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 씨의 능이다. 태릉은 왕비의 단릉(單陵)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웅장한 느낌을 준다. 능침은 『국조오례의』의 능제를 따르고 있어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병풍석에는 구름무늬와 십이지신을 새겼고, 만석에는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겨놓았다. 원래 십이간지가 문자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병풍석을 없애고 신상을 대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등장한 것인데, 태릉을 시작으로 신상과 문자가 함께 새겨져 있다. 그밖에 석양, 석호, 장명 등, 혼유석, 망주석, 문무석인, 석마 등을 봉분 주위와 앞에 배치하였다. 문석인은 두 손으로는 홀(笏)을 공손히 맞잡고 있는데, 왼편의 문석인의 경우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고 있는 반면 오른편의 문석인은 그 반대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능침 아래에는 홍살문, 판 위, 향·어로,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었으며, 정자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94년에 복원하였다.



[능의 역사]



1565년(명종 20)에 문정왕후 윤 씨가 세상을 떠나 산릉 자리를 중종의 정릉(靖陵) 부근으로 하였다가(신정릉(新靖陵)), 명종의 반대로 산릉 자리를 다시 정하였다. 이후 현재의 자리로 산릉이 결정되면서 능의 이름을 태릉(泰陵)이라 하였다.
원래 문정왕후는 남편인 중종 곁에 묻히는 것을 소원하여, 봉은사 주지 보우와 의논하여 장경왕후(두 번째 왕비)의 능 옆에 있던 중종의 정릉을 풍수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현재의 선릉 동쪽 부근으로 천장 하였다. 그러나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홍수 피해가 자주 일어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문정왕후는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문정왕후(文定王后) 이야기]



문정왕후 윤 씨(재세 : 1501년 음력 10월 22일 ~ 1565년 음력 4월 7일)는 본관이 파평인 파산 부원군 윤지임과 전성 부부인 이 씨의 딸로 1501년(연산 7)에 태어났다. 1515년에 중종의 두 번째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1517년(중종 12)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당시 장경왕후의 아들인 인종이 왕세자로 책봉된 가운데 문정왕후가 경원대군(명종)을 낳자, 인종을 지지하는 대윤(大尹)과 경원대군을 지지하는 소윤(小尹) 간의 권력싸움이 있었다. 이후 1544년에 중종이 세상을 떠나고 인종이 즉위하자 대윤이 정권을 잡았으나, 인종이 재위 9개월 만에 승하하고 경원대군(명종)이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소윤이 정권을 잡았다. 소윤은 의도적으로 대윤을 제거하기 위해 을사사화를 일으켰으며, 다시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대윤 및 사림을 완전히 제거시켰다. 수렴청정 기간 동안에 정국은 불안정하여 매관매직이 빈번하였고, 임꺽정의 난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또한 문정왕후는 불교에 관심을 두어 불교 부흥에 앞장서 선교양종 및 승과 제도를 부활시켰고, 보우를 가까이하여 봉은사의 주지로 임명하였다. 8여 년의 수렴청정을 끝내고 명종이 친정하였으나, 실질적인 권세는 문정왕후에게 있었다. 그 후 1565년(명종 20)에 창덕궁 소덕당에서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1547년(명종 2) 경기 광주 양재역에 “여왕이 집정하고 간신이 권세를 휘둘러 나라가 망하려 하는데 보고만 있을 것인가?”라는 벽보가 붙게 되었다. 여기서 여왕은 명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게 된 문정왕후를 일컬은 것이다. 이 벽보를 계기로 당시 학계와 정계에는 을사사화에 이은 큰 피바람이 몰아닥쳤다. 이와 같이 문정왕후와 문정왕후의 형제들인 윤원형, 윤원로는 집권 초기 자신의 반대파를 유배 보내거나 죽이는 등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였다. 문정왕후 집권 시의 정치가 선비들에게 어떻게 비쳤는지는 당시의 대 유학자 조식이 그에게 내려진 벼슬을 사양하면서 올린 상소에 잘 드러나 있다. "자전(慈殿·문정왕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寡婦)에 지나지 않으시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단지 선왕의 한낱 외로운 후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백 가지의 재앙과 억만 갈래의 인심을 무엇으로 감당해내며 무엇으로 수습하겠습니까?" 이러한 직설적인 상소에도 조식은 무사하였다. 그러나 당대 문정왕후에 대한 위험한 언급이 금기가 될 정도로 커다란 권력을 거머쥐고 있었다.






태릉역에 도착하여서 문정왕후 능에 도착하였습니다.





왕릉의 분포도는 경복궁인 법궁을 중심으로 그 근방으로 분포가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조선시대가 유교사상이었고, 유교 학문에서는 효를 중시하였기 때문에, 선왕과 왕비가 죽은 후에도 참배를 하러 가고자 하는 효심에서 왕릉 위치의 분포를 이렇게 하였다고 하네요. 또한 2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남한에 있다고 합니다.



정조대왕 애책문에 해당하는 글귀입니다.

사실, 왕이 죽고 난 다음에 장례를 치르는 기간 동안 다음 왕의 즉위식이 열렸기 때문에, 보통 조선시대의 왕들의 즉위식은 화려하지 않고, 슬픔 속에서 진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태종의 아들인 세종대왕의 경우, 태종이 살아있을 동안 즉위식을 하였기 때문에 세종은 성대하게 진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떠한 순서에 의하여서 진행을 합니다. 가령 종묘에서도 제사를 지낼 때, 순서를 4가지에 걸쳐서 진행을 합니다. 그만큼 어떠한 법도나 절차를 중요시 여겼던 것 같습니다.



명당을 선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후왕이 선왕의 능에 참배를 자주 가기 위함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행렬 진행은 왼쪽의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왕이 죽고 난 후 3년상을 치른 다음, 신주를 종묘에 안착시키게 됩니다. 종묘에는 정전과 영녕전에 해당하는 건물이 있으며, 단일 목조건축물 중에서는 가장 긴 형태로 101m에 이른다고 합니다.
매년 5월에 종묘제례악을 진행합니다.





조선왕릉은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중국, 일본, 베트남 왕릉과도 다른 독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부 전시실을 다 구경하고서, 밖으로 나와서 왕릉의 모습을 보러 가기 전입니다.






위의 제향 일정에 관한 것은 문정왕후 태릉 앞에 제사상에 대한 설명이 있는 푯말입니다. 옛날의 제사상 위치 들어가는 음식들이 자세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문정왕후 태릉


이곳은 문정왕후 태릉에 해당하는 공간입니다. 굉장히 조성을 잘해놓았으며, 실제로 전시관 내부에서는 왕릉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굉장히 단단하게 쌓아 올렸고, 신기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잘 보존이 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왕릉을 개인적으로 구경하다가 지나가시던 할아버님 두 분께서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여러 가지 설명들!!







마지막으로 나오기 전 찍은 사진!  강릉은 태릉과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기에, 시간이 되시면 같이 방문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조선왕릉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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