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 남미 볼리비아 여행
기나긴 페루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트레킹화도 당분간은 볼일 없고, 5천이 넘는 고산지대도 이제 당분간은 안녕이다. 정도 많이 들었고, 만났던 사람들 모두가 소중했던 페루였던 것 같다.
이제 드디어 쿠스코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버스에 오르게 되었다. 우선 볼리비아에서의 일정 은 코파카바나라는 호수에 들렀다가, 케이블카의 도시’ 라파즈’에 다녀온 후 그리고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우유니 소금사막을 가는 것이 나의 일정이었다. 사실, 내가 여행을 떠나기 두 달 전, 2018년 1월경에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에서 한국인 피살 소식이 있었다. 나는 그 소식을 뉴스로 접하게 되었는데, 마냥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세계 각국에서 들리는 뉴스소식이 이제는 절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남미 여행 시 나는 나만의 여행 수칙을 정하였다.
남미 여행 시 꼭 지키고자 다짐한 나만의 여행 수칙
1. 밤늦은 시간에 절대 돌아다니지 않을 것
2. 너무 위험해 보이는 골목이 나 인적이 드문 곳은 가지 않을 것.
3. 휴대폰 등 소지품을 잘 챙기며, 사람들을 조심할 것.
나는 볼리비아에서 내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약속했던 다짐들을 다시 되새기고 있었다.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갈 때 HOP BUS라는 것을 이용하였는데, 그 버스는 페루 쿠스코를 출발하여, 볼리비아 라파즈로 가는 버스였다. 이 버스를 선택한 것은 볼리비아 국경 내에서 위험이 많았다고 들었고, 다른 버스의 경우 동양인들을 그냥 버리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하여서, 조금 의 위험이라도 줄이고자 HOP BUS를 선택하였다. 홉 버스는 말 그대로 3~4가지 정도의 도시들을 이동하는 버스였는데, 한도시에 멈출 때마다 HOP-ON과 HOP-OFF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일정을 정하여 머물고 싶은 도시에서 1박을 할 수 있는 버스 투어였다. 그것은 나의 일정에도 굉장히 도움이 되는 버스였다. 그렇게 홉 버스 덕분인지, 코파카바나에서도 별 문제가 없었고, 별 탈 없이 라파즈로 넘어올 수 있 었다. 라파즈는 케이블카의 도시로 유명할 만큼 지대가 높은 곳에 있다. 최고 4000M가 넘는 고 도 도시인 이곳은 ‘텔레 페리코’라 불리는 케이블카가 있고, 그것은 심각한 교통난을 해소해주는 시민들의 대중교통이었다. 나 또한 라파즈에 머무는 동안 텔레 페리코를 탑승하였는데, 정말 높게 올라가면서,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데려 다 주었다. 그곳 에서의 도심 야경을 보고 있으면, 밤하늘의 별을 땅에 그려 놓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곳을 도시의 별 ‘라파즈’라고 부르고 싶었다.
라파즈에서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같이 여행 온 친언니의 캐리어를 다시 사는 것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언니는 엄마의 캐리어를 빌려서 여행을 오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때 바퀴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에콰도르에서 조금 문제가 생겨서, 캐리어를 끄는 게 어려워졌고,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라파즈에서는 들고 다니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바퀴가 마모가 된 것이다. 장기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왜 배낭을 메는지, 캐리어 바퀴 가 고장이 나면서, 그때 알게 되었다. 또한 볼리비아의 경우,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에 어려운 길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남미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배낭을 추천해 주고 싶다.
볼리비아에서 물건을 살 때는 ‘흥정’이 기본 원칙이다. 우선 상점에 붙어있는 가격표들은 임시로 붙여 놓은 것이고, 보통 할인을 해 달라고 말하면 주머니에서 몰래 계산기를 꺼내서, 더 낮은 가격을 말해준다. 캐리어를 사려고 이곳저곳을 알아보았는데 도통 600 볼 (9만 원)에서 가격이 내려가질 않았다. 우선 그나마 괜찮았던 상점 1~2 데를 KEEP 해두고서, 브랜드 가게가 아닌, 동대 문과 같은 시장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캐리어를 스페인어로 ’ 말 레타’라 고 하는데 말 레타만 파는 곳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길거리에 있는 상인마다, 마다 물어서 길을 다녔다. 1시 간정도 돌아보니, 사람들의 대답은 전부 모른다였는데, 방향을 바꿔서 1시간 정도를 걸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니, 그곳에 동대문과 같은 장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왠지 이곳에 캐리어 하나쯤 있을 것 같은데?’
뭔가 느낌이 올 것 같았다. 나는 음식을 팔고 계시는 주변 상인분들에게 다시 ‘말 레타’라고 외쳐 으며, 그들은 이번에 ‘아주 잘 찾아왔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알려주셨다. 쭉 걸어서 들어가 보니, 드디어 캐리어만 파는 시장이 나왔다. “올레” 정말 감격스러웠던 순간이었다. 가게 주인 할아버지를 보고서, 가격이 얼마인지 물었고. 할아버지는 나에게 300 볼이라는 가격을 알 려주었다. 300 볼이면 4~5만 원대로 아래쪽 가게에서 접한 가격의 반값이었다. 포기하지 않고서 끝내 찾아서 다행이었던 것이다. 여행지에서는 이처럼 예상되지 않는 지출금액들이 나간다. 그 렇기 때문에 잡비라는 항목을 따로 설정해 두어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를 해 두는 것이 좋다. 나도 잡비를 50만 원 정도 잡아 두었지만, 잡비 항목 예산을 크게 잡지 않았기에 기존의 돈을 함 부로 쓸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니와 나에게 좀 더 합리적인 가방 가격을 찾아다녔는지 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내가 대담하고 용감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멋진 모습’이 숨겨져 있지 않은가 싶다.
우유니 소금사막
모든 여행지에서 배운 것은 각각의 장소들은 그곳의 고유한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 에 여행을 하면서 이전 여행지와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여행을 통하여 배 우게 되었다. 볼리비아 라파즈의 일정을 마치고서 드디어 우유니에 도착한 날 나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우유니에 대한 환상을 떠올렸다. 내가 처음 마주한 우유니의 모습은 모래바람만 날리는 공기 안 좋은 시골이었다. 아침과 저녁에는 너무 추워서 패딩이 필수였고, 대낮에는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모자 없이는 다닐 수도 없는 사막의 날씨였다. 나는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굉장히 아팠 었는데, 하루 사이로 바뀌는 날씨 때문에 몸이 적응하는데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첫날 투어 도 하지 못한 채, 숙소에서 누워, 소화제, 해열제, 지사제를 복용하면서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둘 째날부터 스타라이트와 선라이즈 투어, (새벽 3시 30분부터 해가 뜨는 7시까지의 투어시간을 말한 다.)를 하게 되었는데, 우유니 소금사막에 내가 방문했을 당시 날짜가 4월 28일에서 ~5월 2일 사이다 보니, FULL MOON기간이어서 달의 빛 때문에 별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은 별 때문에 오 게 된 곳이었는데, 날짜를 잘못 맞추어서 온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여행지에서 정말 아쉬운 감 정이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한 아쉬움을 간직한 채로, 3일째 되는 날에는 우유니 소금사막의 데이 투어와, 선셋 투어를 하 게 되었다. 막상 데이 투어와 선 셋 투어를 진행하다 보니, 전날 새벽에 어둠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던, 소금사막의 크기들을 실제로 마주할 수 있었고, 칠레와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길들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전날 새벽에 다녀왔던 물이 차 있는 우유니 소금사막에 다시 가게 되면서 이곳이 왜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는지 알 게 된 것이다. 별을 볼 수 있는 스타라이트 투어는 나에게 아쉬움을 주었고, 우유니 소금사막의 거대함을 보여 줄 수 있는 데이 투어는 나에게 경이로움을 안겨주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여행을 하면서, 왜 이렇게 다른 감정들이 들었을까? 나는 잠시 생각이 필요했다.
나는 아마도 우유니에서 내가 ‘본 것’보다 ‘못 본 것’에 집중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집착했던 것 같다.
‘세상에서 별이 가장 많이 보이는 우유니 소금사막에 왔는데, 영월에 있는 별보다 적은 별들을 보 앗다. 그 사실이 아쉬웠다’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나에게 ‘그래도 우유니 소금사막에 왔잖아’ 라며 ‘만족하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할 수 있는 4가지의 투어를 다 해보았다. 새벽부터 아침 7시까지 진행하는 선라이즈 투어 때문에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FULL MOON기간에 우유니 소금사막을 방문하게 되어서 완벽한 보름달을 눈앞에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아름다움 들을 나는 경험하고 있었는데도,
단지 원하고 있던 이미지만 을 챙기느라,
정작 자연이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들은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볼리비아에서의 마지막 일정, 단 하루의 시간 동안 나는 그간 볼리비아에서 보낸 시간들을 떠올려 다. 돌이켜보니 볼리비아 이곳은 정말 위험한 나라였다. 길가에서 테러가 일어나기도 하고, 대낮에 여행객들을 기절시켜서, 돈을 훔쳐 가기도 했었다. 라파즈에 도착한 첫날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시위를 하였고, 그 모습이 마치 영화 속에서 보았던 대한민국의 70~80년대 모습 같았다. 볼리비아는 먼지도 많고 공기도 너무 안 좋았다. 특히 비자발급도 아주 까다로운 곳이어서 규정상 황열병 주사를 맞지 않으면, 발급도 안되었다. 음식 이야기를 해보자면, 우유니 마을 음식은 정말 별로였다. 우선 밥의 찰기가 없어서 밥을 입으로 후하고 불면 쌀들이 다 날아가 버렸다. 한국의 밥은 임금님 밥이었다. 참 이렇게 별로인데도 왜 이렇게 많은 여행자들이 올까? 막상 여행 중에도 궁금했다. 우유니 소금사막을 갔던 첫날, 소금사막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서, 모든 궁금증이 해소가 되었 다. 그냥 이 소금사막 한 곳만으로도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 올 정도로 충분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볼리비아는 우유니 사막 말고도 아름다운 추억들이 많았었다. 티티카카 호수 도 그렇고, 라파즈의 케이블카 야경까지 우유니 말고도 소중한 장소였던 것이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들의 정부터, 무언가를 내가 찾거나 물어볼 때, 자신의 일처럼 정보도 주고 도움도 주는 이곳 사람들을 보고서 참으로 감동받았었다. 볼리비아에 세탁을 맡긴 날, 45 볼을 세 탁소할아버지에게 건네 드렸는데, 알고 보니 내 돈 20 볼 지폐 모서리가 조금 찢어져 있었다. 정말 조금 찢어져 있었는데도, 돈이 찢어져 있으면 못쓴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20 볼을 못쓰게 되었을 때 세탁소 할아버지는 나를 위해서 가게 문을 닫고서 은행까지 같이 가 주셔서 신권으로 돈을 교환해 주셨다.
첫 문장에 적었던 것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모든 여행지는 각자가 가진 매력이 있고, 그것은 다른 여행지들과 비교될 수 없는 고유의 문화이자, 공간이다. 그렇기에 비교를 하지 않는 것, 이 중요한 사실을 배운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의 남은 여행지에서도 이 깨달음을 잘 적용할 생 각이다. 이제 이곳을 떠나 칠레 아타카마를 향해간다. 그곳에서 삶의 소중한 한 페이지 경험을 새 기고, 아타카마의 장소를 다른 어떤 도시 와도 비교하지 않는 가치 있는 시간들로 채워야겠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