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의 패키지여행과 2번의 자유여행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의 [인생수업] 중
“방학 때 두 달 동안 동남아 일주를 갈 거예요”
대학교 3학년, 편입한 첫 학기 시험이 끝난 5월, 뒤풀이에서 내가 했던 이야기다. 앞으로의 계획과 방학 때 무엇을 할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여행을 간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생각만 했을 뿐 무언가를 실행하거나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었다. 이때까지 나는 그 흔한 여행기 한 권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었고, 여행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준비해야 할 것들은 얼마나 많은 지 등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막상 저렇게 말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내심 걱정되는 마음에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 창을 띄웠다.
그리고 검색창에 ‘동남아 일주’라고 검색을 하였다.
막상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몰라서, 동남아 여행과 관련된 카페를 찾아보았다. 보통 카페 내에서의 정보는 웬만큼 다 구비되어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카페 가입만 하면 여행 준비는 마음먹기에 따라 가능하다고 믿었다.
며칠 뒤 가입이 승인되었다는 메일이 날라 왔고, ‘까먹기 전에 글 몇 개라도 읽어 보자 ’라는 생각에 게시판에 링크를 눌러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았다.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는데, 어째 스크롤을 내리면서, 내 몸이 굳어갔다.
아니 얼었다.
“사기당했어요, 도와주세요” “비자 문제 때문에, 문제가 생겼어요”
“편도만 사고 동남아 일주하려는 데 입국심사 문제 괜찮을까요?”
본문 내용은 대부분이 사기, 도난, 강도 등등 봐도 봐도 끝이 없는 문제들의 나열이었다.
낭만은 둘째 치고서 꼭 세상의 위험을 직면하러 떠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말이 아시아 일주 지 내가 카페를 통해서 느낀 세상은 정말 무서웠던 것이다.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동하고,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고, 돈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항공권은 언제 사는 것이 현명 한지 등등 이전에 해외여행을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나에게는 ‘그러한 자유여행’은 거대한 장벽의 숙제 같았다.
시작도 못하고 있었지만, 끝낼 수나 있을까? 생각하며 두려운 감정들이 점점 모이기 시작했다.
시간은 차츰 방학을 시작하는 6월로 향하고 있었고, 결국 나는 내 손에 움켜쥐고 있었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지 못하였다. ‘스스로를 지키자’는 합리화 방식으로 이끌면서, 수중에 있던 150만 원으로 비행기표를 사는 대신 라섹 수술을 하게 되었다.
‘여행이 뭐 대단한 게 있게 어?’ 나의 첫 단념과 함께 했던 외마디였다.
동시에 떠날 용기도 잃게 되었던 걸 모른 채 말이다.
여름방학 후, 2학기가 시작되었으며, 다시 학과에 집중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 마음속도 한동안은 잠잠하였다. 다시 방학이 되자, 주변 친구들의 여행 계획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방학 때는 유럽을 갈계획이다, 미국을 다녀오려고 한다’ 등등 그러한 분위기에 휩쓸려서 인지, 나도 친한 동생과 어떨 결에 3박 5일 방콕 파타야 패키지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여행경비는 50~70만 원 정도가 들었는데, 당시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저축하였던 개인 돈으로 다녀왔다.
패키지여행이다 보니, 크게 준비할 것은 없었고, 돈과 환전(개인용 돈), 그리고 수화물 (짐 싸기) 정도였다. 입금이 된 후, 안내 문자를 받았다. “00 투어사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내받으신 도착 당일 인천공항에서 뵙겠습니다”
막상, 메시지를 받고서도 떠나는구나 하는 느낌이 없었다.
패키지 특성상 여행사의 준비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이드의 인솔 하에 움직이면 되었다. 특별하게 일정을 준비하거나 많이 찾아야 할 정보도 적었다. 지도도 보지 않았고, 방콕 위치가 남부인지 중부인지, 파타야는 어느 쪽에 위치한지도 모른 채 그렇게 첫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성인이 되어서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막상 비행기에 오르고 나니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온몸이 느꼈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불빛들과 공항이 보였고, 도시의 야경이 사라질 때까지 바깥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귀에 압력이 들어오면서, 침을 삼키면 그 압력이 사라짐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걱정들도 사라졌다.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물 내려가는 소리에 놀란 것 빼고는 ‘내가 고민했던 것들이 있었나?’ 할 정도로, 편안한 상태로 비행을 마치게 되었다.
아직도 그날의 태국 공항 풍경을 잊지 못한다. 새벽에 도착한 돈므앙 국제공항의 야경 사이로 비행기 한 대가 멈췄고, 그곳에서 나는 내렸다. 나를 제외하고서 새롭게 보이는 인종들 사이로 여러 언어들이 오고 갔다.
‘저 사람은 무슨 일로 이곳에 왔을까? 저 사람은 우리와 같은 여행자인가?’라는 끝도 없는 궁금증을 품은 채 말이다. 그렇게 3박 5일 동안의 편안하지만, 무언가 구속된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패키지로 시작해서일까? 자유가 구속된 기분 이어서일까?
나의 갈망이 해결되지 않은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나는 여행을 통한 자유의 갈증이 더 심해졌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자유여행으로 떠나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하였다. 여행기간이 길지 않아도 되니, 짧게 라도 2박 3일, 3박 4일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듯이 차근차근 준비해서 떠나보자고 다짐하였다.
그리고서 차츰차츰 기간을 늘려보자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었다
[홍콩 3박 4일 자유여행] 2015년 11월
내가 자유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처음 갔던 여행지가 홍콩이었다.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짧은 비행시간과 편리한 교통, 볼거리 먹거리로 가득했을 뿐 아니라, 즐길 거리와 더불어 빅토리아 피크의 야경명소에 반한 것이다.
10월,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서 항공권은 왕복 21만 원에, 숙박은 2인 1실로 3박에 15만 원으로 결제를 끝내 버렸다.
항공권을 사버리니, 이미 결정이 끝난 것이었다. 그다음 순서는 숙박, 교통, 세부일정 순이었다. 항공권과 숙박은 내가 정하였지만, 세부일정은 언니가 총괄하였다. 이전에 해보았던 패키지여행과 다르게 이제는 가이드도 없고, 공항에서 우리를 반기는 고속버스도 없었다. ‘공항에서 숙소는 잘 찾을 수 있겠지?’ 속으로 때아닌 걱정을 하며 나의 첫 자유여행이 무사히 시작되길 바라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모습들을 실로 마주했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
홍콩 소호 거리부터 피크 트램, 심포니 오브 라이트,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 스타 페리, 몽콕 야시장까지 블로그에서만 보았던 장면들이 눈앞에 그려지고 있었다. 사진 속에 접한 느낌과는 색다르게 놀라웠고, 별 기대 없이 방문한 곳에서는 가슴 벅참을 느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반면, 열과 성을 다해 사람들이 추천한 장소에서는 생각보다 다르지 않음에 기대했던 에너지들이 풍선 바람 빠지듯 휙휙 흘러가는 기분도 들었다.
홍콩을 통해서 나는 내가 이전까지 쌓아 두었던 이미지들의 갈증이 풀리게 됨을 느끼고 있었다.
그 후에 제니 베이커리, 타이청 에그타르트, 탄탄멘 등 맛집 탐방까지 더해져 계획한 일정들을 숙제처럼 행하고 있었지만 내심 알차게 쓴 시간들에 너무나 뿌듯해했다.
패키지여행과 다르게 원하는 경로로 다닐 수 있었고, 일정 선택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며, 배가 안 고프면 식당을 건너뛰고서 디저트를 먹었으며, 볼거리가 많으면 골라서 보았고, 저녁에 야경을 안주삼아 술 한잔 먹고 싶으면 현실로 되는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여행이었다.
“웃기다. 행복하다. 이제야 자유를 찾은 것 같아”
“이게 진짜 여행이지, 안 그래?” 홍콩의 야경을 보면서, 내가 언니에게 건넨 말이었다.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받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 영화[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에서
홍콩의 야경은 나에게 그러한 순간들을 선물해 주었다.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은 곳들,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눈에 그 장면들을 담고 싶었다.
[일본 6박 7일 자유여행] 2016년 8월
3박 4일의 홍콩 자유여행은 나에게 꽤나 긍정적인 방향들을 제시해 주었다. 여행은 너무 즐거웠던 것, 다시금 떠나는 이유들을 찾아야 하는 요소들이 다분했다.
하지만 스스로의 자유여행이 허락되기 전까지 나는 대한민국 26살의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당시 여행을 간다는 것이 ‘나에게 쉼표를, 삶의 방향을 찾는다’는 거창한 의미도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돈을 벌지 않고 놀러 간다는 것에 크나큰 주저함이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이래도 되는 걸까?’ ‘하나라도 더 배우고 학원을 다닌 다 거나 자격증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주변 친구들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것과 신문기사에 나오는 취업난, 경제 불황도 현실에 대한 강박을 더해 불안을 만들어주었다.
떠나고 싶지만 명분을 찾지 못했다. 인생을 즐기고 싶은데, 여행이란 우선순위는 사치인 것 같았다. 그렇게 머뭇거리던 찰나에 친구에게서 받은 책 한 권으로 그날 저녁 오사카행 비행기 티켓을 사게 되었다.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라는 심리상담 관련 책이었다.
제목을 보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에는 익숙하지만, 작지만 따스하게 감싸는 나에 대한 응원에는 낯간지러워한다. 아마도 ‘나를 위로해 주는 이야기가 필요했다’라는 것을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힘들어도 버텨야 하는 줄 알았던 지친 내 영혼을 돌아본 적이 있는가?
내 마음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 안에서 힘겨워했던 지난 시간을 잠시 점검해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점검 시간을 일본 여행으로 채워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본 여행이 결정된 후 계획부터, 자금 모으기, 일정 세우기까지 내 손 하나하나를 거쳐서 6박 7일 동안의 오사카 교토 자유여행 계획표를 만들게 되었다.
여행에 필요한 여권부터 항공권과 호텔 바우처, 일정표, 교통, 패스권, 유심칩과 환전 그리고 해외 비자카드 멀티 어댑터, 동전지갑 그밖에 비상약과 필기구, 보조배터리, 충전기, 이어폰 등 캐리어 안에 가져갈 나의 짐들을 나열하였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첫날, 간사이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 써보는 유심칩이 작동이 안 되자, 울상 직전의 얼굴로 공항에서 30분간 전전긍긍했던 그 당시의 7월이 떠오른다. 공항에서 이코카 하루카 패스(간사이 지방 등의 jr, 지하철, 사철, 버스 쇼핑 등에 사용할 수 있는 ic카드와 간사이 공항에서 덴노지, 신오사카, 교토를 직결하는 간사이공항 특급)를 타고서 지하철을 통해 숙소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받은 유카타 옷과 나막신을 받고 나니 이곳이 ‘정말 일본이구나’를 실감했던 것이었다,
교토에서의 1일 차, 숙소 앞에 있던 아사카 진자를 다녀왔다. 신사 안쪽으로 들어가 주위를 돌아보니 금방 찾을 수 있는 약수 물 터가 있었다. 그곳을 향해서 손을 씻고, 물을 마시게 되니, 물이 몸 안에서 흐름과 동시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첫발을 내딛는 느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교토의 여행은 대한민국의 ‘경주’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개인적으로 많이 받았다.
세계문화유산부터 문화유적지들이 즐비하였고, 내 일정도 거의 그런 장소들을 탐방하러 가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계획을 세웠을 때는 아침 9시부터 시작이었지만, 막상 일어나고 준비를 끝낸 다음 시계를 보니 아침 7시도 채 안되었다.
숙소에 나와서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 보니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 사이로 웬 챙모자를 쓴 관광객 한 명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킨카쿠지부터 닌나지, 묘신지, 료안지, 노노미야 진자, 치쿠린 등 교토가 선사하는 아름다운 공간들로 내 장소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자 혼자서 여행을 다니다 보니, 사진을 찍을 때면 번번이 셀카였는데 그때마다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인연들이 있었다. 혼자서 다니는 여행의 외로움을 보듬어 주기라도 하듯이 그들은 선뜻 먼저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고마운 제안을 내게 건네곤 하였다.
가끔은 계획적으로, 다시금 무계획적으로 걸음을 거닐면서, 원래의 일정과는 다르게 도착한 시모가모 진자에서 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보았던 적이 있었다.
책에서는 보통 내부만 구경하는 식으로 신사를 언급하였다. 실제로 당일 아침 내부 구경 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서 오른쪽 길로 꺾어 들어가니, 현지인들도 몇몇 없는 ‘의식을 지내는 공간’ 이 나왔다.
그곳에서는 300엔을 내면 하얀 봉투와 촛불을 주는데, 하얀 봉투는 신고 있던 신발을 담는 곳이고 촛불은 소원을 빌고서 끄는 도구로서 주는 것이다. 냇가를 지나서 불을 켜는 곳에 도착하면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장소에 이르게 해 준다.
그곳에서 나는 소원을 이렇게 빌었던 것이 생각이 난다.
‘내가 멈춰서 내 인생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해 달라고, 그런 용기를 지닐 수 있는 무책임 하지만 좀 더 낭만적이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2017년 4월, 대략 250일 정도가 지난 뒤에서 비로소 그때 기도했던 신사에서의 소원이 곧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