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들라로슈작품 제인그레이의 처형
1553년 런던탑의 어두운 감옥에 기품 있는 한 소녀가 끌려들어 왔다.
내 이름은 제인 그레이, 얼마 전까지 난 영국 여왕이었는데 어쩌다 내 운명이 이렇게 된 걸까?
"여기가 어딘가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물었다.
1537년 10월 런던 근교의 한 저택에서 왕가 귀족의 딸로 태어난 제인. 어머니는 헨리 8세의 여동생이었다. 외할머니는 프랑스의 왕비였던 메리튜터다. 왕가에서 자란 그녀의 어머니는 왕위 서열 3위로 왕권에 대한 야심이 대단했다. 제인이 태어났을 당시에 아들이 아닌 딸이어서 실망하였지만, 며칠 후 헨리 8세가 (에드워드 6세) 아들을 낳자 생각이 바뀐다. 제인을 왕자와 결혼시켜 왕비로 만들자!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재산을 탕진한 제인 부모에게 제인은 그들의 부와 권력을 얻는 도구 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제인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은 받지 못한 채 오로지 왕비가 되기 위해 엄격한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1552년 그렇게 노리던 기회가 찾아왔다. 에드워드 6세가 폐렴으로 쓰러진 뒤 지병 증세가 심해지자 그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귀족과 신교도 귀족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에드워드 6세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을 경우 그다음 왕 위 서열 1위 구교도인(로마 가톨릭) 메리가 왕비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신교도 귀족들의 자리가 위험하게 된다. 귀족들은 자신들을 위해 독실한 신교도인 제인을 희생양으로 삼기로 한다. 그 당시 권력의 중심이었던 더들리 백작은 자신의 아들과 제인을 결혼시키고, 죽어가는 에드워드 6세를 설득하여 서열 1위 메리가 아닌 제인을 후계자로 지목하는 유서를 쓰게 한다.
제인을 결국 그들의 꼭두각시 왕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에드워드 6세 서거 이후, 여왕이 된 제인은 메리가 왕이 되어야 한다며 자신은 왕위를 원하지 않는다고 호소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민심도 메리에게 기울어지자 더블리 백작은 메리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제인이 즉위한 지 9일이 되던 7월 19일, 메리는 민중의 환호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런던에 입성하고 만다. 제인의 부모와 귀족들은 제인을 남겨둔 채 도망을 친다. 그리고 남겨진 제인과 남편은 런던탑에 갇히게 된다.
8월 21일 반란의 중심이었던 더블리 백작은 처형을 당하고, 제인은 사형선고를 받지만 제인을 잘 아는 메리는 제인만은 사면해 준다. 하지만 이후 일어난 신교도 반란에 제인의 아버지가 가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제인이 살아 있는 한 반란은 계속될 수 있다는 신하들의 주장에 따라 제인은 또다시 사형에 처할 운명에 놓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연민을 느낀 메리는 제인에게 제안을 한다.
"신교에서 구교로 개종을 해라.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목숨을 위해 신념을 저버리는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결국 제인은 1554년 2월 12일 16세의 나이로 런던탑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가신다면 중앙문으로 들어서면 우측에 있는 R45, 45번 방의 제인 그레이의 처형을 놓치지 마세요. 역사적인 장면을 놓치지 않고 드라마틱하게 잘 묘사한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의 뛰어난 작품 중 하나입니다.
폴 들라로슈가 이 명장면을 놓쳤을 리 없었겠죠.
작품 속 하얀 드레스 속의 제인은 흰색으로 순결과 고귀함을 나타내고 있다. 저 하얀 드레스는 곧 붉은빛으로 물들 테지만! 제인이 자신의 비극의 그림자를 예고하고 있었듯, 그림 속의 제인의 모습 또한 곧 다가올 그녀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 제인의 곁에서 부축하는 신부는 메리가 애정하던 조카 제인을 끝까지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하기 위해 붙여두었던 신부다. 그러나 제인은 끝까지 신념을 지키고 죽음을 택하고 말죠.
좌 측에는 제인의 수발을 들던 시녀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아있고, 한 여인의 무릎 위에는 제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걸이 등 보석이 보인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묘사가 섬세하다.
성직자라는 신부는 제인이 단두대에 목을 얹게 도와주고나 있고, 우측의 사형집행인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보인다. 제인은 목을 얹고 마지막까지도 차분하게 운명을 기다리는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이 그림을 일부는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표현했다는 평도 있지만, 이 거대한 작품 앞에서 발길을 멈추게 하는 힘, 연민을 느끼게 만들 수 있게 해 주는 게 미술이고, 폴들라로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