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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24. 2023

겉은 멀쩡한데 왜

간질성 방광염의 이중성

어머니 간질성 방광염 이야기 계속 이어 가요.

지난번 글 '백만 불과 바꾼 20년'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고 읽어주세요.

https://brunch.co.kr/@htravel/31

어머니의 기록들을 정리해서 공유합니다


미국에 거주하시는 어머니는 미국에서 용하다는 한의원은 다 전화를 해보고 결국 한 군데 한의원에서 배송을 받아 약을 먹어보기로 했다.  거리가 멀어 어머니가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는 문제로 배송받기로 했다.


하지만 한약을 먹고 나서 바로 다음 날부터 어머니의 증세가 더 악화되기 시작한다.


배에 통증이 오면서 방광이 부어오른 것이다. (부어올랐다는 사실은 한방 치료 후에 한국에 나가 방광 내시경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


한의원에 전화를 해서 고통스러운 배 통증을 이야기했더니 약을 바꿔서 보내주겠다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두 번째 보내온 약은 배에 통증은 없었지만 부어오른 방광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한약은 아닌 것 같아서 하루 먹고 그만뒀다.


한방원에서는 침을 맞자고 했다. 뭐든 다 해봐야 하지 않을까? 어머니는 방광 부위에 직접 놓는 침을 한동안 맞으러 먼 거리를 다니셨다. 갈 때 올 때 10분마다 주유소에 들러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지만 낫기 위해서는 뭐든 다 해봐야 하지 않는가.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는 한방 치료 이후로  소변을 보는 게 더 고통스러워지셨다. 변기에 그냥 앉지 못하고 변기에  두 발로 올라가 쭈그리고 앉아 소변을 해결해야 하는 증세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한나야 , 너무 고통스러워..." 어머니가 나아지지 않는 건 가족에게도 큰 고통이었다.


매일매일 기도를 했지만 어머니의 고통은 되려 심해졌다.




결국 한국에 오시라고 해서 간질성 방광염 기사를 다 찾아 읽어보고 기사를 쓴 여성 비뇨 명의 중 한 분인 K대학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 어머님 병 좀 낫게 해 주세요. 좋아하시는 음식도 못 드시고 옆에서 보는 것 만도 고통스러워요"


"따님도 고통스러우신데 어머니 본인은 얼마나 고통스러우시겠어요?" 냉랭한 교수님의 답변이었다.


그리고 방광 내시경을 하고 소변 일지(화장실 간 시간 기록)를 써오라고 했다.


 며칠 후에 간질성 방광염으로 확진을 받고 도움 될 수 있다는 약을 처방해 주셨다.


내시경을 보고 방광이 여기저기 부어있다고 했고 한 번 부은 방광은 한 달 동안 처방받은 약을 다 먹어도 나아지질 않았다.




어머니의 고통을 가늠 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딸로서 옆에서 같이 겪는 고통도 컸다.


간질성 방광염은 환자마다 증세가 조금은 다를 수도 있지만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으로는 칼로 찌르는듯한 고통이 있는 병이다. 어머니는 한국에서 친척들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셨지만 어느 누구 하나 이병을 알고 있거나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요실금 같은 거 아니야? 이 병을 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한 번은 2시간 거리의 고모를 만나러 가는데 화장실을 10분마다 가야 하는 고통 속에 가다 돌아온 적이 있으셨지만 고모는 서운에 하기만 하셨다. 이유를 설명해도 화장실 자주 가야 하면 성인패드도 있지 않냐고 정도로 생각했다. 얼마나 고통스럽게  화장실을  사용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머니는 창피해서 자세한 설명도 하기 싫고 다 귀찮다고 하셨다.


고모가 나중에 집으로 찾아오셔서 만나보시고는 겉으로는 하나도 아파 보이지 않는 엄마를 만나고는(고통에 비해 겉은 너무 멀쩡하다. 앓아누워있거나 그런 병이 전혀 아니다. )

엄마 오신다고 음식도 많이 준비해 놨는데... 그때 왜 그냥 오시지 왜 그랬냐고 서운함만 이야기하신다.


음식도 다 드실 수 없고  병도 힘든데 주변 사람들조차도 피곤하고 힘들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이 병은 그 당시는 정말 생소해서 병원에 가도 어쩌다 한 명 환자를 만날 뿐이었다. 정보도 공유할 수 없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조차 없었다. 엄마 주변에는 엄마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친정아버지조차도 걱정은 하셨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속을 다 보여줘야만 알겠어?

이 당시 50대였던 어머니 식이요법과 운동


어머니는 꾸준히 양배추, 당근, 양파 등 야채 위주로 식사를 하시다가 한국에 나와 추가한 음식은 염증에 좋다는 보리밥과 율무밥을 드셨다. 브로콜리를 먹어보라는 의사의 권유에 브로콜리와 커리플라워도 드시기 시작했다.
간질성 방광염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못 드셔서 인지 위궤양 증세도 같이 동반되었던 어머니는 양배추를 매끼 챙겨 드시고 조금씩 이병에 적응해 나가셨다. 양배추를 꾸준히 드시면서 위궤양은 나았다.(위내시경으로  확인)
 그리고 매일 같이 드셨던 건 야채수프다.
일본사람이 쓴 야채수프 건강법이란 책을 구입해서 5가지 야채(무, 무청, 표고버섯, 우엉, 홍당무)를 끓여 마셨고 소변량을 늘렸다. 책에서 금속성 액세서리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해서 귀걸이 목걸이도 한동안 다 빼고 다니셨다.
그리고 주로 드셨던  음식은 양배추 홍당무, 양파, 방광에 통증을 주는 쌀밥대신 밀가루 음식인 국수였다.
 이때 챙겨 드신 건강식품은 소화효소, 유산균, MSM, 마시멜로루트, 옥수수수염차, 야채수프(식전 30분이나 식후 40분 후에 마시기)
운동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하루 2-3시간을 꾸준하게 걸었다. 통증 있다고 귀찮다고 누워만 있으면 병은 악화된다. 시카고에 계실때 영하 17도에도 나가 걸으셨다.




어머니는 이렇게 조금씩 이병에 적응해 가시면서  통증은 조금 줄었다.


K대학 병원의 양약을 드셔도 별 호전 반응이 없으셔기에  또 다른 여성비뇨 명의가 있다는 S병원으로 병원을 옮기신다.




이 글에 도움이 되셨다면 다음번에 S 병원 이야기  이어서 쓰겠습니다.

라이킷은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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