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에 대하여
자립준비청년은 보호종료아동이라는 호칭 대신 만든 말이다. 대상을 보다 능동적으로 바라보는 호칭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말의 뜻을 풀어보면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이라는 의미인데, 이 세상에 자립을 준비하지 않는 청년도 있던가? ‘자립’과 ‘준비’라는 단어가 ‘청년’ 앞에 붙은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당사자를 지칭할 표현이 필요하기에 그냥 청년이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는 없다. 내 말의 요지는 누구든 때가 되면, 자립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자립준비란 뭘까?
바다거북은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독립적으로 살아간다. 새끼 바다거북은 스스로 구덩이를 기어올라 무작정 바다로 향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이 낯선 장면이지만,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바다까지 향하는 길에서 도마뱀, 게, 독수리가 새끼 바다거북을 노린다. 그럼에도 바다거북은 어떻게든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바다에서 태어나는 바다거북은 없다. 만약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게 자립이라면, 바다로 나가 헤엄칠 근육을 기르는 게 준비라면, 바다로 가겠다 결정하는 게 자립이라면, 자립을 위한 준비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인간은 바다거북과 달리 타인의 돌봄과 보호가 꼭 필요하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어른이 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바다거북처럼 혼자 바다로 나아갈 수 없기에 높은 언덕을 오를 수 있게, 바닷길을 찾을 수 있게, 천적에게서 안전하게 가르치고 돕고 지켜야 한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돌봄과 도움을 주는 이는 대개 부모다. 애석하게도 모두가 부모의 보호를 받아 바다에 나가진 않는다. 마치 바다거북처럼 처음부터 혼자 바다를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지도, 도마뱀을 내쫓아주지도, 바다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들은 생존의 위협을 겪으며 가본 적 없는 길을 걸어 바다로 나아간다.
요보호아동은 보호자에게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해 사회적인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다. 그들은 사회에게 가장 시급한 보호를 제공받는다. 그 보호는 부모의 보호와 관심에 비하면 충분할 리 없다. 부족한 부분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다. 무겁게 주어지는 책임은 고통과 함께 자립심을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홀로 선 사람의 홀로서기가 함께 던 사람의 홀로서기보다 어렵다. 자립을 위한 준비는 돈이나 문화혜택이 충분할 때 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다가 만나는 단 한 사람, 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을 때 자립이 시작된다. 자기를 인정 수용 사랑할 때 자립이 시작된다.
자립은 스스로 삶의 주인공이 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인생이란 이야기는 주인공이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 줄거리다. 스스로 삶의 주인공이 되면, 수많은 선택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생기고 잘못된 선택에도 후회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모든 선택은 이야기의 결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