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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Feb 18. 2022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가 가족이야

영화 <당신의 부탁>

조금 다른 미래를 꿈꾸게 하는 영화를 만났다.

브런치 이웃 작가님의 리뷰를 읽고 보게 된 영화 <당신의 부탁>이다. 이 영화는 개인이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어떻게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남편이 떠나고 아들이 생겼다'는 영화 포스터 속 문구처럼 어쩌다 엄마가 된 효진과 아직 미성년이라 원치 않는 아들이 되어야 하는 종욱의 이야기이며 다양한 입장의 엄마들이 등장하는 영화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도록 <당신의 부탁>이 뭔지 나오질 않는다. 열린 제목, 은유적인 제목 앞에 영화를 되짚어 보게 하는 매력을 지닌 작품이었다.


주인공 효진은 남편의 세 번째 아내다. 사회적 시선을 고려한다면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런데 잘 살아보지도 못하고 결혼 3년 차에 사고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다. 효진의 친정 엄마는 그런 딸이 걱정스러워 참견과 잔소리를 달고 산다. 효진은 수익이 좋지 않은 공부방과 엄마의 잔소리,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가 우울하다. 그런 그녀 앞에 부담스러운 짐이 하나 더 얹어지는데, 죽은 남편의 열여섯 살 아들을 키우라는 것이다. 그녀는 고민에 빠지지만 이리저리 내쳐지는 아이가 안쓰럽고 남편에 대한 죄책감, 서류상 엄마라는 도리 등 여러 가지 정서적 압박에 의해 아들 종욱을 받아들인다.


효진과 종욱은 그렇게 사회적 관습이 만든 가족이란 프레임 속에서 낯선 동거를 시작한다. 내가 우리가 되기 위해선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의 터널을 지나와야 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좁은 시야로 서로를 판단해 섭섭하고 두려운 감정을 쌓기도 한다. 엄마들을 제일 화나게 만드는 것은 자식과 연락이 되지 않는 불안한 순간일 것이다.  정체성 찾기가 중요한 청소년기인 종욱에겐 사정이 어려워지면 버려지는 일순위 물건처럼 취급되는 자신이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이겠지. 이러한 서로의 입장이 잔소리를 하게 되고 가출의 모양새를 한 반항이 되기도 하는 상황들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며 영화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존재는 '엄마들'이 아닐까. (영어로 'mothers'라는 부제가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효진이 종욱을 받아들이는 심리에 꼭 기존 모성신화나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작동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아직 남편을 잃은 외로운 여인으로서 애도의 기간을 지나고 있는 그녀에게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지닌 종욱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못다 한 사랑이 피워낸 선택이 종욱이었고 그렇기에 그녀의 선택엔 의지가 있고 지켜낼 힘이 있지 않았을까.


이 영화엔 인상적인 장면이 몇 개 있다. 그중 효진이 미혼인 줄 알고 혼자 썸 타다가 그녀의 당찬 커밍아웃에 떨어져 나간 카페 청년이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효진에게 이제 자신은 여행을 떠나니 불편해하지 말고 커피 마시러 오라는 씬에 이어지는 효진의 대사다.

 "아뇨. 돈이 없어서요."

관계가 불편해진 그 때문이 아니라 아들을 키우게 되며 생활비가 아까워 커피를 먹지 않는 선택을 했다는 당당한 효진의 대사에 어이없어하는 카페 청년과 달리 나는 환호를 질렀다. 오롯이 자신의 삶으로 들어간 멋진 효진 때문에 마구 설레었다.


다음 엄마는 어린 시절 종욱을 키우다 신병이 나서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연화다.

 "살고 싶더라. 죽고 싶다보다 더 절망적인 말이 살고 싶다. 너무 살고 싶더라 그때는"

읊조리듯 말하는 연화의 이 대사도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자아내는 멋진 대사였다. 살고 싶다는데 인간으로서 그보다 더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까. 자신을 버렸다고 원망하던 종욱도 엄마라는 이름 떼고 한 인간으로서 겪었을 아픔 앞에서 한 선택을 조금 더 자라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연화는 엄마 이전에 한 사람이었다.


효진의 친구 미란은 현재 가장 보편적인 가정의 엄마 모델이다. 만삭의 그녀는 남편 얼굴 보기가 힘들다며 지쳐 보이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아기를 낳고 나면 독박 육아에 힘들어할 그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사와 육아의 고된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그저 아내고 엄마니 감당해야 하는 의무 취급을 받으며 외로움에 지쳐 갈 그녀가 예상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까지 여전한 가부장적 사회가 심어놓은 여성의 모범답안이 꼭 행복의 보장이 아님을 은유하는 듯한 미란이었다.


보는 내내 안타까웠던 종욱의 친구 미혼모 주미. 나름 피임을 했음에도 미숙할 수밖에 없는 어린 소녀는 그렇게 엄마가 된다. 그러나 신파적인 우울은 없다. 자기 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아기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에 대해 고민한다. 종욱도 주미의 외로움과 사정을 이해하는지 섣부른 참견이나 잔소리 없이 친구의 감정에 공감해준다. 이런 걸 보면 모든 것을 통제하고 합리적 해결에 집중하는 어른이 놓치는 관계의 핵심을 아이들이 보여주는 듯하여 얼굴을 붉혔다. 현실 엄마로서 주미와 같은 상황에 놓이는 것을 원하진 않지만 주미와 같은 오늘을 사는 아이들도 있기에 그들을 향한 시선은 따뜻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주미의 아기를 입양하는 엄마 서영이다. 아기를 낳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아기를 키우고 싶은 엄마다. 주미는 그녀를 보며 자신의 아기를 맡길만한 좋은 엄마라고 믿는다. 그리고 주미의 아기는 서영을 친엄마로 알고 살아갈 것이다.


이 영화는 다양한 엄마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가족을 이루는 핵심은  혈연으로만 묶인 것이 아니라 선택에 의해 유지되고 확장될 수 있음도 시사한다. 또한 원부모에서 낳고 키워지지 않은 아이들도 상처받지 않고 자랄 수 있는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진 세상을 꿈꾸게 한다.


어깨에 가방을 메고 한 손엔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오르막을 걸어가는 효진의 뒷모습을 보고 달려가 그녀의 짐을 받아 들며 종욱은 효진과 나란히 걷는다. 한마디 언급이 없던 당신의 부탁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인생의 오르막을 함께 천천히 올라가는 그들. 한 사람의 어깨에 진 짐을 나누어 가지며 가만히 불러 줄 이름. 서로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인생의 동반자들이 만들어가는 작은 공동체. 서로에게 고마운 그들이 함께 사는 곳이 가정이고 그들이 가족임을 인정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 <당신의 부탁>이 마음에 쿵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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