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살랑, 연아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평소라면 연아에겐 이 작은 손길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곤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연아는 잠시 후 이 다리 아래로 뛰어내릴 것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떨어지는 순간 내 어깨에 날개가 돋아 날아갈 거야.'
연아는 매우 논리 정연하게 말하는 아이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린 시절 꿈꿨던 날개를 떠올렸다.
"나는 날고 싶었어."
연아는 다리 난간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밤이라 아래가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땐 높이를 알 수 없는 게 다행이다. 연아는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다. 다리 아래, 동그랗게 살찐 달이 물속에 비췄다. 그로 인해 물속은 마치 하늘 같다.
'그래, 위가 아닌 아래로 날아보는 거야. 그래도 나는 건 나는 거잖아.'
연아가 조심스레 난간을 잡고 다리를 살짝 올려본다.
"저기요."
그때, 누군가 연아를 불러 세웠다. 19살인 연아보다 더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다.
"저요?"
"네. 혹시, 지하철 타는 곳 어딘지 아세요?"
"네?"
"길을 잃었거든요. 밤은 늦었고 얼른 집에 가야 하는데, 길을 모르겠어요. 사람들도 없고..."
열셋? 열넷? 아무리 자살을 앞두고 있어도 길 잃은 어린 남자아이를 그냥 두기엔 마음에 걸린다.
"여긴, 학생들이 다닐만한 길이 아닌데,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있어요? 이 길은 차들만 다녀서 위험해요."
한소리 야무지게 해주고 나서 연아는 지하철 역을 향해 앞장섰다. 아이는 착실히 연아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누나는 왜 거기 있었어요?"
아이의 질문에 연아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누나는 새도 아닌데, 왜 날려고 해요?"
날고 싶다는 혼잣말을 이 아이가 들었나 보다. 연아는 자신이 왜 날고 싶었는지 떠올려봤다. 그러자 꽤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너, <미운 아기 오리>라는 동화를 아니?
나는 그 이야기 참 싫어했거든. 아주 어릴 때부터...
일단 헛된 희망이 싫었어. 겨우 10살이었는데,
나는 내가 백조일 거라는, 희망을 품는 게 싫었어.
그 희망이 좌절되면, 그다음은 너무 무섭잖아."
"더 나빠질 게 없다면, 희망이라도 있는 게 낫지 않아요?"
"... 마음까지 너덜너덜해지잖아. 그것까진 안 다쳐도 되는데 말이야."
"뭐가 그렇게 다쳤어요?"
"전부 다, 모두.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래도 죽지 마요. 저처럼 길 잃은 아이를 도와줄 수도 있잖아요?"
"뭐...?"
내가 죽으려는 걸 알았나, 연아가 놀라서 뒤돌아보니, 아이가 없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벌써 지하철역 앞이다.
"학생, 지하철 끊길 시간이야. 얼른 내려가요."
지나가던 사람의 말에 떠밀려 연아는 집으로 가는 막차에 올라탔다. 별수 없이 집으로 가는 길, 연아는 다시 <미운 아기 오리>라는 동화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난 9살 때까지 이 이야기 정말 좋아했었어.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운 오리가 아니었어,
처음부터 내내 백조였던 걸.
그저, 미운 아기 오리 시절만 있었을 뿐이야.
나는 지금 미운 아기 오리 시절인가?
그렇다면, 이제 백조가 되는 일만 남았나?'
연아는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했다. 동료 백조들을 만나 제 정체를 깨닫기도 전에, 미운 아기 오리가 죽어버린다면, 그것만큼 황당한 동화는 없으니까.
* 10대 사망원인 1위 자살 (통계청, 2020년 10월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