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소영 Dec 20. 2020

오래 보아야 한다

20.12.20

화정천에서 본 오리 두마리


다음주 화요일 도로주행 시험을 앞두고 있는 후배에게 일요일에 연수를 해주겠노라고 말했다. 늘 질러놓고 나중에 왜 그랬지 후회한다. 오늘도 느지막히 일어나서는 '아... 내가 왜 또 괜한 말을 했을까, 나가기 귀찮다' 등등 후회막심의 말들을 늘어놨다. 어쩌겠나 나가야지... 밖에서 나는 살뜰하게 후배를 챙기는 선배인 것을.


후배와는 4시쯤 만나기로 했다. 잠깐이라도 찬 공기에 산책을 할까싶어 10분 전에 나섰다. 집 앞에 화정천과 화랑유원지가 있는건 기쁨이지만 화정천을 건너 화랑유원지로 가는건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10분 밖에 없다는 이유로 건너가지는 않고 화정천변을 걸었다. 오리 두마리가 유유자적 하천을 거닌다.


오지 않는 후배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오리를 바라봤다. 부지런히 물갈퀴질을 하며 헤엄을 치다 점프해서 천변의 나뭇잎을 뜯어먹는다. 잠깐 날개짓도 한다. 늦은 후배 덕분에 40분 동안 오리를 감상했다. 물 위에 떠 있는 것만 스치듯 보아왔던 오리의 다른 모습들이 신기했고, 귀여웠다.


몰락한 스님 혜민의 말처럼 멈추니 비로소 보였다. 책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지만 제목만큼은 인상에 남았었다. 언젠가부터 찰나의 첫인상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사람을 보는 감이 좋은편이라 믿었었는데 그 감은 종종 나를 배신했다. 연약해보였던 A는 시간이 흐른뒤 보니 누구보다 단단한 사람이 되었고, 강해보였던 B는 생각보다 소심했다.


고정불변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주고 받는 에너지를 통해 관계는 더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변한다. 나의 애정과 책임만큼, 딱 그만큼 변한다. 나의 노력 없이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인 기대는 위험하다. 주변의 애정 덕분에 우유분단했던 나 역시 조금 더 단호해졌고, 분명해졌다.


귀여운 오리를 보다가 왜 내 생각은 여기까지 흐르고 만걸까? 싶은 와중에 후배가 왔다. 오래 기다렸다느니 온갖 구박을 했지만 연수는 잘 마쳤고, 귀찮음은 기특함으로 바뀌었다. 모든 것이 빠른 시대다. 판단도 빨라야 한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는 그간에 쌓아둔 가치와 신념으로 빠르게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애정을 담아 오래 보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 요가를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