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소영 Dec 04. 2020

마지막 요가를 했다

2020.12.04 속초 26일차

속초에서의 마지막 요가를 하고 왔다.


어제 아침 요가를 끝내고 양양공항으로 엄마를 마중갔다. 속초에서의 마지막 며칠을 엄마와 함께 보내기로 했다. 김포공항으로 와서 속초로 오는 코스였다면 코로나 때문에 취소했을텐데 다행히 제주-양양 비행기가 있었다. 어젯밤 잠들면서 '내일이 마지막 요가인데 갈까 말까' 고민했다. 괜히 엄마가 왔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주면서... 엄마가 아침 요가 몇시냐고 묻더니만 어짜피 본인은 자고 있을거니까 갔다오라고 했다. 핑계는 보기좋게 날아갔다.


아침 알람에 겨우 일어나 머리를 감고 채 말리지 못한채 집을 나섰다. 어제 엄마가 올라오면서 챙겨온 귤도 한봉지 챙겨서 갔다. 모두들 미리 와서 앉아 있는데 마지막날까지 나이스하게 정각에 도착했다. 나란 인간 정말... 요가쌤에게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며 그동안 감사했다 말하고 챙겨온 귤도 드렸다. 엄마가 가져오고 생색은 내가 냈다. 곧 일어나서 귤이 다 어디갔냐고 할지도... 요가쌤은 벌써 한달이 지났냐면서 담에 또 속초 놀러오면 꼭 들리라고 했다.


오늘 요가수업은 '빈야사1'이다. 뒤에 1이 붙은 날은 좀 빡센 날이다. 이번주는 시간표를 앞뒤로 바꾸면서 주로 힐링수업을 들었는데 오늘은 빼박이다. 사실 마지막 날이라고, 엄마가 왔다고 고민한건 핑계였고 진짜 이유는 '빈야사1' 때문이었다. 나는 요가원을 몇개월 다녔지만 자주 빠졌기 때문에 매일이 비기너였다. 마치 수학의 정석 1장 집합만 새까만것과 비슷하다. (언제적 수학의 정석이란 말인가 ㅎㅎ)


(내가 해야하는 동작, 출처 pixabay)

역시나 요가쌤, 시작에 앞서 오늘은 핸드스탠드를 할거라고 미리 예고했다. 안산에서도 늘 그 수업을 할 때는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했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고, 오늘도 그러겠구나 했다. 초반에는 명상과 빈야사 동작들을 했고 드디어 때가 왔다. 요가쌤이 매트를 벽으로 붙이라고 했다. 시범을 보여주고 한명한명 봐준다.


엎드린 상태에서 손과 팔꿈치를 삼각형을 만들어서 머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들고 한발한발 머리를 향해 걸어간 뒤 다리 하나를 들어올려 허벅지에 붙이고 복근과 버티는 힘으로 나머지 발을 떼는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하라고 했다. 어느 정도 한 뒤에 잡아줄테니 다리를 위로 들어올리라고. 들어올리면 허벅지와 엄지발가락, 팔 등에의 힘으로 버티라고 했다. 나도 요가쌤이 잡아준 덕분에 다리를 들어올리는데 성공했다. 당연히 쌤이 손을 놓으면 나는 무너지는거다. 느낌만 생각하라고 말씀하시고 연습해보라고 했다. 혼자 연습을 하는데 어렸을 적 워낙 물구나무 서기를 자주 했고, 뒤에 벽도 있겠다 생각보다 들어올리는게 무섭지는 않았고 1-2초 정도 떠있다 벽에 붙였다를 반복했다.


요가를 다 끝낸 후에 요가쌤이 계속 연습하면 한 달 뒤엔 스스로 할 수 있을거라며 이런 얘기를 해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들어올리는 것만 연습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다리 하나를 허벅지에 붙이고 복근의 힘으로 나머지 다리를 들어올리는 연습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힘으로 버텨야 한다고. 나는 완전 뜨끔했다. 그 과정을 다 생략하고 번쩍 들어올려 벽에 기댄 후 뗐다 붙였다 연습만 했다. 또 하나 더 얘기하신게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벽 말고 바닥 중간에서 해라. 하다가 넘어지고, 구르고 그러면서도 또 시도하는게 중요하다"라는 거였다.


과정을 생략하지 말 것,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벽 없는 곳에서 연습 할 것


이 두 가지는 말은 요가 뿐 아니라 나의 삶에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늘 후배들에게 '결과에 연연하지말고 우선 해라. 하는 과정이 결국은 결과를 만들어줄 거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정말 그러한가. '하다보면 실패하기도 하는거지 쫄지 말고 그냥 해'라고 말하면서 나는 두려움에 의연한가.


속초한달살기를 결정하고 젤 먼저 찾아본 요가원, 영랑호를 바라보며 요가를 하는 곳. 이 요가원에서의 첫 수업이 생각난다. "요가는 수련이에요. 어렵지 않으면 요가가 아니에요"라는 요가쌤의 말. 그야말로 수미상관이 아닐수 없다.


영랑호를 바라보는 요가원, 산요가 @san.yoga_sokcho

오늘, 내일이 지나면 일요일 오전 숙소 체크아웃을 한다. 오후에 엄마를 양양공항에 배웅하고, 다시 안산으로 간다. 쉬는 것만으로도 꽉 찼던 한달이 이렇게 끝나간다. 돌아가서도 요가는 절대 빠지지 말아야지. 시작하길 잘했다.

작가의 이전글 두번째 강릉, 8년 만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