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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즈 Oct 18. 2020

에볼라 구호대 파견(1)

2014년 10월 16일 집에 앉아서 아내와 함께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티브이에서는 당시 대통령께서 에볼라 구호대 파견을 발표했다고 나오고 있었다.

“여보, 나 저기 가도 될까?”

“어디?”

“에볼라 구호대”

“헛소리 하지마”

대통령께서 발표한 이상 어떻게든 구호대가 파견되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나는 회사 생활을 통해서 우리 회사에서도 구호대를 파견하리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 회사가 해외긴급구호 예산을 관리하고 있고, 구호대 파견 시 실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니까.

그 후 범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구호대 파견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두 달에 걸쳐서 계속 아내를 설득했다. ‘선발대가 다녀왔다는데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의료진이 아니라서 환자들을 직접 대면할 일이 없다.’ ‘아이티 지진 구호대 파견 다녀온 이후에 재난과 구호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회사에서 교육도 많이 받았는데 안 갈 수 없다.’ 등의 이유와 함께 매일 설득했다. 결국 지친 아내는 어느 날부터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 아닌 허락을 내어주었다.

갓 돌 지난 첫아이와 아내를 두고 무서운 바이러스가 퍼진 곳에 가겠다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나 잘못되지 않을까 무서웠을 것이다.

연말에 회사에서 에볼라 구호대 파견 지원자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어떻게 뽑을까 궁금했는데 역시나 지원을 받았다. 누가 지원할까 싶기도 하다가도 우리 회사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지원자가 많을 것 같기도 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17명인가가 지원했다고 한다. 인도지원실 근무 경험, 아이티 지진 현장 파견 경험, 각종 관련 교육 이수 등으로 내가 당연히 선발될 거라고 예상했다. 당시에는 한편으로 구호 업무 관련 나보다 회사에서 많이 공부한 사람은 없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있기도 했다.

결국 나는 3진(?)으로 파견되기로 결정되었다. 당초 회사에서는 가장 먼저 보내기를 희망하였는데, 부서에서 놔주지를 않았다. 일단 급한 업무들 먼저 처리하고 나중에 가라는 말에 어쩔 수 없었다. 가장 먼저 가고 싶었는데.

출발하기 전날 아이가 무척 아팠다. 한밤중에 아이를 업고 소아응급실에서 새벽 2시까지 있었다. 아픈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2015년 2월 11일 비몽사몽간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가는데, 안개가 심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날 심한 안개로 인해 영종대교에서 100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공항에 도착했는데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당초 탑승키로 한 에어프랑스 비행기가 연착된다는 공지를 했고, 두 번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우리는 비행기를 놓칠 위험이 있었다. 모로코에서 시에라리온 프리타운행 비행기는 일주일에 두 번 밖에 없어서 한 번 놓치면 3일을 기다려야 한다.

에어프랑스 편을 취소하고 가능한 비행 편을 수소문해서 결국 브리티시에어 비행기로 표를 변경했다. 간신히 탑승을 했는데, 비행기가 출발을 안 한다. 안개 때문에 출발을 못하다가 4시간쯤 후에 출발을 했다.

결국 비행기는 예상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간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했고 우리 구호대 지원팀 3진은 연결 비행 편을 놓쳤다.

어디 하소연도 할 수 없게 아예 닫아버리고 아무도 없는 빈 공항 카운터를 바라보면서, 마치 패잔병처럼 깊은 좌절감에 빠져버렸다. 아 이럴 수도 있구나. 회사 다니면서 비행기를 수도 없이 탔는데, 비행기를 못 탄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렇게 중요한 비행기를 놓치다니. 도대체 오늘은 나에게 무슨 날인 거니. 하루가 참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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