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길 잃은 부러진 화살.

by 호춫추

요즘 내가 자주 듣는 노래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잔잔하고 팩폭이 담긴 가사들. 오늘은 그 노래를 틀어놓고 이 글을 써본다.


나는 글쓰기를 정말 못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속이 상하고 못 견딜 때마다 이렇게 글을 쓰니 보는 사람도 우울하게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스스로가 부끄럽지만 이렇게라도 적지 않는다면, 말하지 않는다면, 가슴이 딱딱하게 결정이 되어 온몸을 아프게 할 것 같아 한두 자 써내려본다.


나는 말을 잘 못한다. 특히 나를 아프게 하는 말들을 들었을 때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만 속으로는 '너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라는 생각과 '내가 왜 이 말을 했지?'라는 자책과 부끄러움이 함께 몰려온다. 분노하며 부끄러워하는 마음.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마음에서 태풍처럼 뒤섞여 안을 뜨겁게 만든다.


어릴 땐 이런 말들에 눈물을 흘리며 스트레스를 흘려보냈지만 서른이 넘은 어른이 된 지금은 그저 지쳐서 숨만 조금 격해진다. 천장의 무늬, 생김새 같은 것을 바라보며 거칠어지는 숨을 누르려고 애쓰면서 일단 그 자리를 피해본다. 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도망치거나 연락도 잠시 끊어본다.


나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왜 그랬는지 다시 묻겠지만 대부분 이런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나를 제대로 알 지 못하거나 지인일 뿐이다. (아니,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었던가.) 그래서 속으로 생각을 해본다. '나를 잘 몰라서 그러는 거겠지. 나도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던 거잖아. 누구나 너를 이해해 줄 필요는 없는 거잖아.'


하지만 더 큰 고민과 문제는.. 이 아픔, 그러니까 상처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분노와 속상함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었을 때 그들이 같이 느껴할 분노가 불편하고 싫다. 내 편을 들거나 분노, 저주와 비슷한 말을 들었을 땐 통쾌함보다 찝찝함과 불편함, 그리고 내가 혐오하는 사람들이 된 내 모습만 남기에 나는 말을 하지 않고 이렇게 적는 것으로 남긴다.


속상함이 극대화가 되면 종이에 펜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욕도 적어보지만 그런 것들은 결국 불을 붙여 태워버리거나 찢어서 버린다. 하지만 몰려오는 것은 허탈함이다. 결국 이 마음을 달래려고 산책을 하거나 음악 같은 것을 틀어놓고 <마더>에 나오는 김혜자 선생님처럼 음악에 몸을 맡긴 채 흔들흔들 거려 보기도 한다. 그러면 가끔씩은 감정이 가라앉거나 다른 모양새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날들이 많다는 게 문제다.


익명의 바다에서 누군가와 대화하다 보면 그런 격한 감정은 숨기고 포기한 채로 내려놓는 게 맞다고, 인생은 혼자니 스스로 다 해결해야 한다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사람은 기대야 한다. 다만... 그럴만한 지혜로운 사람을 못 찾아서 그러는 것이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라면, 오늘은 적이었지만 내일은 친구가 된 그 사람에게 인정을 바랄 수도 있지 않은가.


다만 인간의 불완전함과 이중성에 지쳐버린 나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지 않고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슬픔을 참고 또 참는 것이다. 혼자서도 견고할 수 있다며 완벽해지려는 그들처럼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오늘 밤은 너무 길고 아픈 밤이다. 이용당하고 버려졌던 아픈 기억 때문에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말에 발이 걸려버리는 상황이 속상할 뿐이다. 어디로도 던지지 못하는 날카로운 화살은 결국 내 손으로 직접 분질러 품에 안는다. 이 상처는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나의 것이다.


아아. 울고 싶은 밤이다.

눈물이라도 나오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