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려서 좋겠다.

어른들이 부러워하는 젊음을, 나는 팔고 싶었다.

by 호춫추


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기 싫어하던 어린애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른이 되면 책임감을 가져야 하니까. 지금도 해야 할 것들, 지켜야 할 것들, 가져야 할 것들도 너무 많고 벅찬데 어른이면 이제 그것들을 지키지 못했을 때 더 많은 손가락질을 받을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애처럼 눈치 없이 해맑았던 때도 없다. 자라온 환경이나 따돌림 때문에 외로움과 눈치가 친구처럼 붙어 다녔으니까.


그런 내가 소극적 인간인 채로 어른이 되어서 회사 사이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보니, 스무 초반의 막내가 되어 나이 차이가 나는 삼촌, 고모뻘 회사 사람들에게 질리도록 들은 얘기가 하나 있었다. '젊어서 부럽다.' '어리니까 하고 싶은 거 마음껏 도전해 보라.'라는 얘기였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뜩이나 일상 속 쌓이는 일 처리에 내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만큼 속은 불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이딴 잔소리까지 들어야 한다니.


나도 안다. 그것이 잔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런 말들은 대부분 부러움을 빙자한 자신의 화려한 지난날의 이야기들의 물꼬일 뿐이었다. '젊었을 적에 나는 이런 것들을 했었지-' 하며. 나는 일상이 벅차고 사는 게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 얘기들을 하며 하하 호호 웃는 모습들에 속이 상해 서러움이 분노로밖에 남지 않았었다.


내 삶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듣고 싶지 않은 그들의 화려한 과거, 자신들이 가보지 않은 것을 내게 강요하는 것,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해보라 하는 긍정적인 말들이 내겐 '젊음' 하나 껴안고 돈도 미래도 없이 벼랑 끝에 내몰려 뒷걸음질만 치게 만들었으니까. 그렇다고 듣기 힘들어 괴로움에 한마디 하면 분위기는 굳어질 테고, 나는 그럼 또 모난 돌 같은 모습으로 딱딱한 일 처리 사무원이 될 것이 뻔해, 어색하게 웃으며 모니터만 바라보는 날들을 보냈다.





주말농장 흙 위에 앉아 볕 아래에서 다정히 맞잡은 쭈글하고 갈라진 엄마의 손등을 꾹꾹 눌러 펴보며 내 젊음을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내게 부럽다 말하는 사람들을 밧줄로 빙빙 묶어놓고 '내 젊음 팔 테니 억 소리 나는 돈을 달라!' 외치고 싶었다. 쓰고 바로 죽어도 괜찮다 생각 들었으니까. 인생은 너무 재미없고, 젊은데도 몸도 아프고, 빨리 늙어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그냥 모든 게 밉고 싫었다.


서른을 넘기고 일을 그만둔 채 길을 걸으며 생각하는 요즘, 지나간 어른들이 부러워했던 '젊음'은, 잡을 수 없는 것이에 값지다는 것과 한편으로는 그 말 한 당사자들도 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봤자 뛰어도 무릎 안 아픈 어린이 같겠냐마는,어도 아흔 아니 백 살 먹은 노인 앞에서 우리는 어린아이고 젊은이 그 자체니 말이다.


없기에 갖고 싶고, 못해봐서 하고 싶은 어른들의 마음은 그저 '젊음'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했음을 이제는 이해한다. 이제는 그 말들을 되돌려주고 싶다. 나도 당신이 참 부러워요. 시간이 지나야 가질 수 있는 그 인내와 지혜가 말이죠. 그리고 하나 더. 하고 싶은 것엔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