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집주인의 뉴욕 이야기(1)
프랑스 작가 폴 오스터는 뉴욕에 살면서 <뉴욕 3부작>을 비롯해 가장 사랑스럽게 뉴욕을 묘사하는 작가다. 그의 소설 <달의 궁전> 앞부분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 나는 마르코 포그였고, 어머니는 에밀리 포그, 그리고 시카고에 있는 외삼촌은 빅터 포그였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포그였지만, 내게는 한 집안사람들의 성이 모두 같다는 게 의당 그래야 하는 일로 보였다. 나중에 나는 빅터 삼촌에게서 외할아버지의 성이 원래는 포겔만이었지만 엘리스 섬에 있던 이민국의 어떤 직원이 안개라는 뜻을 지닌 포그 Fog로 줄였고, 1907년에 'g'자가 하나 더 붙기까지 그것이 성으로 쓰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외삼촌이 내게 알려준 대로라면 포겔은 새라는 뜻이었는데, 나는 내 이름자에 새가 들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내 조상들 중에서 누군가 뛰어난 사람은 실제로 날 수 있었을 거라는 상상도 해보았다. 나는 늘 안개를 헤치고 나는 새, 미국에 이를 때까지 쉬지 않고 대양을 가로질러 나는 거대한 새를 생각하곤 했다.."
<달의 궁전> 열린 책들
우리 식으로 '멍한 혼수상태'란 뜻의 Fogg를 패밀리 네임으로 갖고 살아야 했던 어린 마르코. 삼촌이 얘기해준 이야기는 마르코가 고단한 학교 생활을 견디게 하는 힘이 돼 주었다. '나는 원래 새였어. 저 먼 유럽에서 고귀하게 날아 올라 대서양을 가로질러 날아온 거대한 한 마리 새!'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주인공 마르코의 소심한 뉴욕 생활의 시작이 된 이름의 그 사연은 반문맹이었던 어느 말단 공무원의 보잘것없는 실수 때문이었다. 이어폰 너머로 마르코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던 그때, 나는 마침 자전거를 타고 엘리스 섬(Ellis Island)을 따라 달리는 중이었다. 허드슨 강 안에 자리 잡은 저 조그만 섬은 유럽에서 넘어온 가난한 마르코의 외할아버지 같은 이들이 제일 먼저 발을 디딘 첫. 번. 째 미국이었다. 모든 재산을 털어 미국행 배에 오른 그들은 멀미와 불결함, 복잡함과 무질서를 견디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맨 처음 만난 미국인들은 몇 년 먼저 이 땅에 도착해 완장을 찬 이들었을 것이다. 새로 입항하는 이민자들의 생사 여탈권을 쥔 그들은 꽤 거들먹거렸을 것 같다.
유럽에서 출항한 배가 엘리스 섬에 도착하면 승객은 두 부류 나뉜다. 배 안에서 이민국 직원들을 만나는 1, 2등 객실의 손님, 그리고 모든 짐을 들고 하선해 가비지 룸에 맡기고는 2층으로 올라가 긴 줄에 서 입국 심사를 기다리던 3, 4등급 객실의 승객들이다. 그것은 영화 <타이타닉>에서 케이스 윈슬렛이 속한 그룹과 디카프리오가 숨어 지내던 지하 객실의 차이였다.
배에 오를 때 적어낸 선승자 리스트는 미국 입국 시 본인 확인을 위한 최초의 신분증이 되었다. 아일랜드, 러시아, 폴란드,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등 모두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문맹률과 비례하는 가난한 이들 중에는 자기 이름을 쓸 수 없는 이가 태반이었다. 간신히 적은 이름도 생전 처음 들어본 발음과 스펠링으로 말단 공무원을 곤란하게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자는 여러 번 되묻는 관리에게 그냥 미국식으로 편하게 바꿔달라 부탁하기도 했다. 현 미국인들 조상의 1/3인 1천5십만 명이 입국심사를 받았다는 엘리스 섬을 거치면서 수많은 이름들이 바뀌고 우스워지고 달라졌던 이유다. 엘리스 섬에 가 귀를 기울이면 마르코 포겔이 마르코 포그가 된 것 같은 수많은 사연들이 돌담 하나하나 계단 사이사이에서 소곤대고 있을 것 같다.
".. 이름은 놀림감으로 삼기에 가장 쉬운 것인 데다 포그라는 성은 갖가지 별명들을 제멋대로 갖다 붙이기에 적합한 것이어서 패그 fag(똘마니)니 프로그 frog(개구리)니 하는 별명 외에도 날씨와 관련된 놀리는 말이 수 없이 생겨났다.."<달의 궁전> 열린 책들
마르코의 사연을 읽다 보니 내 초등학교 베프 송지현은 어디서 뭘 하며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젠 송충이 같은 촌스런 별명으로 부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