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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Jan 23. 2019

오래된 것을 채우는 젊은 에너지 Dia:Beacon

민박집주인의 뉴욕 이야기(3) 

1년에 한 번 있는 필드 트립을 다녀왔다. 아침 8시에 모인 아트 전공 학생들이 학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나름 큰 이벤트. 세라믹 아트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처음 참여한 행사라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트립 장소는 Dia: Beacon, 처음 교수에게 목적지를 들었을 땐 낯선 이름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뭐? Dia 다음에 콜론이 있다는 거지?)

 

Michael Heizen <North, East, South, West> 1967, 2002 거대한 네 개의 구멍으로 구성된 작품. 매우 깊어 가까이 접근할 수 없게 해 놓음.


MOMA나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근처에 두고 굳이 왜 이 먼 곳을.. 싶었다. 두 시간 가까이 달린 버스는 한적한 시골 마을 한가운데 학생들을 내려 준다. 우릴 맞은 건 숲 속에 위치한 거대하고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 1929년이니 지은 지 꼭 90년 된 나비스코 과자의 포장지 공장이란다. 오레오나 리츠크래커의 껍데기가 여기서 만들어졌던 거다. 매각자를 찾고 있을 때 뉴욕 첼시에 미술관을 갖고 있던 이가 구입해 수리 후 새로 개관했다고. 낡은 공장 건물을 그대로 두고 문이며 화장실 등만 요즘식으로 고친 독특한 미술관이었다. 공장 기계가 놓였던 실내엔 거대하고 실험적인, 기괴하고 낯선 설치 미술품들이 가득했다. 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 채광과 공장 특유의 막힘없는 넓은 공간이 제일 먼저 들어온다. 그 안에 마음껏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하고 다양한 작품들은 빌딩 숲서 살던 이의 눈을 시원하게 한다. 


John Chamberlain <Luftschloss> 1979 폐차장에서 봄직한 구겨진 자동차


 


Louise Bourgeois <Crouching Spider, 웅크린 거미> 2003. 낡은 붉은 벽돌과 잘 어울리는 메탈 재료의 거미.
미니멀리즘 대표 조각가 Richard Serra <Installation View>  Dia: Beacon의 대표작가다.


쓰레기인 줄 알고 청소부가 버리기도 했다는 찌그러진 자동차(John Chamberlain <LuftsChloss>), 벤치로 착각할 한 나무 상자들(Donald Judd <Untiled>), 행여 다칠까 조심히 보던 깨진 유리들(Robert Smithson <Map of Broken Glass (Atlantis)>)... 안내문이 없으면 그냥 지나쳤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이런 모던한 작품들의 작가들을 선발해 꾸준히 전시하고 있는 곳이었다. 왜 이 곳이 개관 10년 만에 미국 현대 미술의 메카가 되었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공간적. 시간적인 제약 없이 마음껏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할 수 있게 하는 예술가들의 힘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Dia: Beacon, Riggio Gallerieres. Dia는 이 미술관 소유한 보드 그룹의 이름, Beacon은 미술관이 있는 업스테이트 뉴욕의 이 곳 동네 이름, 그리고 Riggio는 이 곳을 개관할 때 소요된 5000만 불 중 3500만 불을 기부한 이의 이름이다. 서점 그룹 반즈 앤 노블 회장으로 이 미술관의 대표 작가 중 하나인 Richard Serra의 작품을 구입할 때 200만 불을 기부하기도 한 인물이다. 이런 부자들의 투자와 선견지명이 공장 마을 Beacon을 뉴욕 여행의 핫플레이스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나중에 따로 한번 꼭 오고 싶다 하니 미술관 열차를 알려 준다. 맨해튼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허드슨 라인을 타서 이 곳 Beacon 역에 내리는 노선인데 약 80분이 걸린다. 이 기차를 타면 1800년 초에 지어진 보스코 벨 하우스나, 린 허스트 맨션도 모두 볼 수 있게 노선을 운행 중이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사람들을 모으고 그 사람들이 지역에 활기를 주는, 순기능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좋은 실례이다. 


Dan Flavin <Untitled, 무제> 1973. 창문이 없어 어두운 공장 지하실에 설치된 작품. 자연 채광을 하는 위층 전시공간과는 매우 다른 효과를 연출할 수 있다.


 

몇 달 전 안방과 거실을 연결하는 2층 미닫이 문이 말썽을 부려 대청소를 해야했다. 오래된 나무 문 사이의 먼지를 털어내고 기름을 칠하다 문틈 청소를 위해 손을 집어 넣어 끼어있던 종이 하나를 찾아냈다. 87년도 소인이 찍힌 편지, 아마도 우리 집의 전 전 전.. 세입자 것이었던 듯. 87년 도면 고딩 1학년 때, 올림픽 매스게임 연습한다고 매일 수업 땡땡이치던 무더웠던 그때. 근데 여기 지구 반대편 뉴욕 한 구석에선 선 손으로 꾹꾹 눌러쓴 이런 편지를 보내고 읽고 있었구나 싶어 느낌이 새로웠다. 이 나무 문이 30년 이상은 됐다는 생각에 대견하기도 하고 100년은 됐음 직인 이 집에 살던 이들의 사연들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 오래된 집에 이사 와서 나는 집수리 전문가가 됐다. 백화점보다 로우스나 홈디포같은 공구상을 둘러보며 어딘가 때우고 메꾸고 덧대는 물건을 사 오는데 반 장인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 손길이 닿은 집구석 구석에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다. 여기 미국에선 뭔가를 허물고 다시 짓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시청에서 퍼밋을 받는 것도 힘들고 세금도 엄청난 까닿게 다들 헌 집을 수리해가며 그렇게 산다. 30년만 넘어도 재개발을 고대하던 나라에서 온 사람에겐 처음엔 그런 분위기가 무척 고역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려러니 한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촌스럽고 버려야 할 것이 아님을 삶으로 느끼고 살게 된 것이다. Dia: Beacon 미술관의 에너지가 최신의 건물이 아니라 그 안을 채우는 젊고 자유로움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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