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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Feb 10. 2019

미쓰 백과 콩쥐팥쥐

민박집주인의 뉴욕 이야기(4) 

"영화 속 아역배우의 정신 건강을 위해 어떤 조치를 했습니까?"


영화 <미쓰 백>이 끝나고 펼쳐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비니를 눌러쓴 한 남자가 무대 앞에 앉아 있는 한지민에게 질문했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난 급 반성을 했다. '아, 참.. 그렇지 아이의 트라우마.. 폭행당한 어린아이를 연기한 아이...'


아역배우의 심리를 걱정한 관객


한지민을 처음 본 건 오래전 여의도 어느 카페에서였다. 작품 관계자와 미팅하는 자리 같았는데 멀리서 본 그녀는 너무나 평범해서 좀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배우의 아우라보다는 그냥 미인이었다. 이미지처럼 데뷔 이후 그녀는 매번 착하고 청순하고 예쁜 역할만을 맡아왔다.



2019 뉴욕 아시아 필름 페스티벌(NYAFF) 개막작 오프닝 행사 (Photography by Brent N. Clarke)


오늘은 달랐다. 뉴욕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NYAFF, 2/1/2019 - 2/10/2019)의 오프닝작 주인공으로, 이 영화제 첫 번째 홍보대사로 스포트라이트 속에 등장한 그녀는 그때보다 훨씬 커 보였고 당당해 보였다. 그녀를 그렇게 보이게 한 건, 오늘의 영화 <미쓰 백>의 백상아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미쓰 백'이지만 중심 줄거리는 아홉 살 지은이 얘기다. 부모에게 학대받아 온 몸에 멍과 상처 투성이인 아이는 항상 춥고 배가 고프다. 게임 중독자 친아빠에겐 애물단지고 집안의 가장인 계모에겐 눈의 가시 같은 존재로 자라고 있다. 부모의 폭력과 주변의 무관심 속에 힘겨운 아홉 살 목숨을 이어오던 지은에게 미쓰 백이 나타난다. 아니 '미쓰 백'의 눈에 지은이가 밟혔다. 아빠에게 버림받은 엄마가 어린 자신에게 저지른 학대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녀는 그 엄마에게조차 버림받은 기억을 갖고 악착같이 살아 내고 있는 여자다. 그런 그녀에게 지은은 어린 백상아다. 그래서 둘은 외면해도 보이고 떨쳐 버려도 따라붙은 운명 같은 만남이 됐다. 보호받지 못한 10대 시절, 그로 인해 전과자가 된 자신과 엄마에 대한 원망이 지은에게 강하게 투영된 것이다.


지은 계모 vs. 상아 친모


결론은.. 모두가 기대하듯 그녀는 지은을 구출한다. 잔인하고 이중적이고 영악하기 까기 한 계모와의 개싸움을 이겨낸 결과다. 아이의 간절한 손가락 감촉을 잊지 않고 상아는 지은에게 평안한 아침과 또래의 즐거움을 선물한다. 영화는 해피엔딩,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원형이와 준희 사건과는 정 반대다. 


이 영화의 성공에 가장 큰 요인은 몸 사리지 않은 한지민의 연기였을 테지만 난 지은 부모의 그 "주먹을 부르는 악역"이 영화의 의도와 가장 부합되지 않았나 싶다. 역시 아동 폭력의 희생자로 자라 스무 살의 싱글대디가 되고 게임 외엔 아무런 삶의 의욕이 없는 친아빠 일곤, 이중인격을 연기하지만 간이며 쓸개를 빼놓고 돈을 벌어 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계모 미경. 이들의 역할은 왜 아동폭력을 가정에 맡기면 안 되는지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이 영화의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동 학대'의 실체를 생생히 보여주며 영화를 힘 있게 끌고 간다.



'주먹을 부르는 캐릭터' '분노 유발자'.. 지은의 계모와 친부의 연기가 영화를 돋보이게 했다 (영화사 제공)



그에 반해, 미쓰 백과 그 엄마와의 관계 설정은 매우 진부하고 위험하다. 알코올 중독자 엄마에게 맞아 어린 상아는 화상을 입고 기절도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고 한다). 딸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녀를 더 다치게 할까 봐, 딸을 버리고 경찰에게 자신을 잡아가라 애원한(거라고 한)다. 또 다른 비현실적 캐릭터 강력계 형사 정섭은 끈질긴 추적 끝에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범죄자로 만든 이에게 복수하려다 감옥에 간 것임을 알려준다. 그녀의 인생을 망가뜨린 엄마가 실은 그녀를 너무도 아끼고 사랑했었다는 숨겨진 사연에 난 이 영화의 주제가 매우 헷갈렸다. 설마 계모는 악마지만 친모의 학대는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다면 말이다. 콩쥐를 괴롭힌 팥쥐 엄마나 심청이를 내다 팔도록 꼬드긴 뺑덕어멈이나 신데렐라,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계모'에 대한 진부한 선입견에서 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고 말았다. 


우리 옆의 아홉살 지은이


극장에 오기 전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팟캐스트를 들었다.  <씨네타운 나인틴>의 이재익 PD는 아역배우 김시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촬영 중 식사를 하자고 하니까 시아양이 그랬대요. 지은이는 배고픈 아이잖아요. 저도 안 먹을래요." 부모에게 학대받는 지은이 역을 소화하기 위한 11살 어린 소녀의 이런 노력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칭찬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괜히 600:1의 경쟁이 아니구나. 야 어린 꼬마가 대단하네.'  영화 내내 현실의 시아 양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소녀의 트라우마 대책을 묻는 뉴욕 극장의 관객의 질문에 문득 깨달았다. 아직 우리 옆엔 9살 지은이들을 말이다.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재단되고 길러지는 이 땅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있을 것 같다. 지은네 빌라 앞 집의 무심한 아줌마로 가게 앞 청소에만 몰두하는 아저씨로 조그만 지은을 보지 못하는 우리 어른들의 눈높이가 말이다. 


서바이버를 위하여 


어린 시절 친 아버지의 무관심과 계모의 학대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던 또 다른 지은을 알고 있다. 끔찍한 폭행과 굶주림과 정신적 학대를 받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그녀는 자신을 학대한 부모들을 불쌍하다 생각한단다. 그녀의 어두웠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으며 나는 그녀가 한지민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죽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왔다는 사실에 내가 아는 가장 용감한 "서바이버"란 생각에 존경하고 싶어 졌다. 하지만 그녀의 용서 유무를 떠나 그녀의 부모는 죗값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마음의 지옥이건 현실의 곤궁함이건. 아니 이런 영화를 보면서 그 얼굴이 뜨끔하기만 해도 좋겠다. 원영이, 준희... 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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