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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Feb 21. 2019

신디야 미안해.

민박집 주인의 뉴욕 이야기(5) 



신디는 우리 동네 코인 런더리 직원이다. 정식 직원이라기보다는 매니저인 스티브의 Off Duty(비번) 날에 '땜빵'을 하는 임시 직원이다. 50대 후반 정도 되는 아줌마로 말을 못 하는 장애인이다. 신디가 세탁소에 있는 날이면 고민이 된다. 내일 맡길까, 다른 세탁소로 가? 그녀의 세탁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아서다. 


단골손님의 고민


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이 세탁소를 이용하는 나름 단골이다. 이 곳을 알게 된 건 1년 정도. 이불부터 시트, 배갯잇, 대형 타월 등 등 매번 큰 빨래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힘 좋고 용량 큰 세탁기가 아쉬웠다. 그러다 발견한 Friendly Laundaromat. 처음 이 곳을 이용하기 시작했을 땐 모든 게 어리바리했다. 동전은 몇 개를 넣어야 하는지, 세제 넣는 구멍은 왜 이렇게 많은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등등. 누가 봐도 초짜 같은 모양새로 끙끙대고 있으니 갓난아이를 업은 히스패닉 아줌마가 '아끼 아끼(여기 여기)'하며 파란색 구멍을 알려줬다. 하염없이 돌아가는 기계 앞에 서 있는 내가 한심해 보였던지 구석 벤치를 알려준 건 팔뚝 문신이 요란한 청년, 머리가 하얀 할머니는 드라이 머신 안에 있는 내 빨래 양을 눈대중해보더니 '뜨레스'라고 손가락 세 개를 펴보여주며 쿼러 갯수를 조언해줬다. 세탁과 건조, 개킴까지 세탁소는 내 두 시간 정도는 쉽게 잡아먹었다. 그러다 Drop-Off 서비스를 알게 됐다. 빨래를 통채로 건네 주면 세탁을 한 후 드라이를 거쳐 빨래 바구니에 고이 개어 보관까지 해 주는 서비스다. 난 갖다 주고 다시 들고만 오면 된다. 이런 신세계가~ 하며 난 이 서비스를 애용했고 덕분에 훨씬 여유 있는 시간 활용이 가능해졌다.   

세탁한 빨래를 꺼내 드라이에 넣고는 다시 3-40분을 건조해야 한다. 



드롭 오프 한 빨래는 이상하게 내가 한 것보다 더 하얗고 더 짱짱했다. 다른 동네는 직접 픽업에 배달까지 해주기도 한다지만 난 이 정도도 감지덕지다. 그런데, 세탁소에 신디가 있는 날이면 좀 난감해진다. 


"앗, 오늘 스티브는 없나 보네...?"

빨래를 든 내가 두리번거리면 그녀는 어어어... 하며 자기에게 주면 된다고 과장된 몸짓으로 말한다. 

"아.. 어떡하지... 스티브한테 할 얘기도 있고... 그냥 내일 올게. 안녕"

이렇게 휙 나오면 어어어... 하는 그녀의 실망한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린다. 하지만 매번 빨래를 두 번씩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서로 실망하지 않기 위해선 가게 밖에서 매번 카운터 쪽을 확인하고 들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신디의 부재, 그녀는 잘렸을까? 


스티브의 쉬는 날이 매주 목요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 날만 안 가면 신디와의 불편한 조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다 지난 목요일 딱 걸려 버렸다. 갑작스레 급한 빨래가 생긴 거다. 아예 처음부터 세 블록을 더 올라가야 하는 Clean Laundromat에 가보았다. 벽에 붙어있는 가격표보다 두 배 비싼 값을 부른다. 


"아무리 그래도.. 바가지를 씌우면 안 되지..."


어차피 1시간 거리의 한인마트로 장을 보러 가는 길이었기에 빨래 바구니를 다시 차에 실었다. 아침에 맡기고  오후에 들고 오리라 여유 있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마트 가는 큰 길가에 있는 초대형 빨래방에 들어가 보았다. 주차장 입구에 <매주 수요일 군인 무료>라고 써 붙여 놓은 곳이다. 가게 안에 들어가니 <군인은 소형 머신만, 딱 한 번만> 안내문이 보인다. 여기는 앞 가게보다 훨씬 비싸면서 내일 아침에나 빨래를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이 곳도 아닌 듯. 

 

빨래방 찾다 아침 시간을 훌쩍 보낼 참이다. 주차장에 서서 구글 지도에 Laundry를 찍고 검색을 해봤지만 한참 떨어진 쇼핑가 쪽에 몇 군데가 보일 뿐이다. 

엄마를 대신해 익숙하게 드라이에 빨래를 넣은 꼬마, 건조기가 돌아가는 사이 벤치에 책을 펴 숙제를 하고 있다. 


1시간 남짓 빨래를 싣고 동네를 돌고 있는 내가 매우 한심해 보였다. 그래서 그냥 오늘만 신디네 가게를 가기로 했다. 대신 깨끗이 해달라고 당부를 할 참이었다. 띠리링... 입구에 매단 요란한 벨소리와 함께 가게에 들어서는데 신디도 스티브도 안 보인다. 잠시 기다리니 구석에서 빨래를 꺼내던 청년이 뭔 일이냐고 물어본다. 


"어? 아.. 빨래 맡기려고."

"응.. 그거 내 일이야. 저기 저울에 올려놔 봐."

무게를 확인한 후 날렵하게 영수증을 끊어주는 청년에게 난 조심스레 신디의 안부를 물었다. 

"글쎄...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무심한 청년의 말에 마음속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왔다. 신디는 잘렸을까? 아니면 다른 데? 생각해보니 난 그녀와 제대로 의사소통을 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안 건 빨래를 하던 다른 손님들이 대신 말해준 거였다. 그들은 세탁소에 익숙지 않아 어리바리한 나에게 이것저것을 알려주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말 못 하는 신디를 대신해 내게 통역을 해주었다. 가격이 얼마고 빨래는 몇 시까지 찾으러 오라는 얘기도 신디 옆에 서 있던 아무 손님 중 하나가 해준 얘기였다. 생각해 보니 돌아서 나가는 나에게 신디보다 더 큰 목소리로 가지 말라고 소리친 이들도 그 이웃들이었다. 

"가지 마, 신디가 그 빨래를 할 수 있대!!"


말끔히 개켜진 빨래를 서랍에 넣어두며 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신디야 미안해. 어디서건 좋은 사람들과 잘 있길.." 


동네에서 가장 큰 Sudgy Laundromat. 매주 수요일 군인 무료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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