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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Nov 09. 2019

목수는 개뿔

민박집 주인의 뉴욕이야기 (7) 

"야, 그거 손으로 불가능해. 전기톱을 사던지 있는 사람한테 부탁해."


가로 세로 2m/1m가 넘는 널빤지를 땀 뻘뻘 흘리며 톱질하고 있는 나를 보던 히스패닉 아저씨가 걱정스레 얘기하며 지나간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여러 남자들은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은 내 작업을 잠시 지켜보다 작업대 끝에 놓인 여분의 톱 하나를 뽑아 들고는 저쪽 구석에서 뚝딱 끝내고 유유히 사라지길 몇 번이다. 하긴 나도 이게 이리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그 사이 물건을 사 갔다 추가로 사러 온 이도 있었고 자주 마주쳐 낯이 익어버린 직원도 생겼다. 자르기 좋게 판자를 넓적한 카드로 옮기려다 무게에 휘청이며 깩깩거리자 직원 하나가 뛰어와 꺼내 주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난 비스듬한 판자 양쪽을 절단내고야 말았다. 세. 시. 간의 톱질의 결과다.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뿌듯한 마음에 계산대에 있는 직원 제임스에게 말했다. "내가 손으로 잘랐어. 네가 불가능하다고 했잖아." 퇴근을 서두르던 제임스는 나와 널빤지를 번갈아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무식하면 용감, 용감하면 무식.


꿈은 원대했다. 우연히 들여다본 페북에서 제주 어느 찻집의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푸른색 움푹 들어간 벽을 긴 벤치로 만들어 긴 방석으로 마무리를 했다. 간단하고 편안해 보였다. 우리 집 거실 창문이 자연스레 오버랩됐다. 페북과 거실 창 턱을 번갈아 쳐다보며 '흐음... 한번 해봐...?' 생각했다. 그 자리엔 지금 두 사람 앉는 러브 체어가 있는데 이게 혼자 앉기엔 너무 크고 눕기엔 짤뚱해 불만이 있던 터였다. TV에서 소파 광고가 나오거나 가구점에 가면 눈에 힘을 주고 찾아봤지만 크기며 가격에서 '적당한' 놈을 찾지 못한 터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만. 들. 어. 보. 리. 라.


1) 사이즈 재기


먼저 정확한 사이즈는 기본 중의 기본. 줄자를 놓고 나름 여러 번 정확히 쟀다고 생각했는데 홈디포에서 톱질을 하려고 하니 폭을 재 놓은 수치가 없었다. 다 넓러 놓은 채 집으로 와 필요한 수치를 재서 홈디포로 갔다. 다행히 내 판넬들을 아무도 건들지 않았다. 수치에 맞춰 가로 세로를 연필로 체크해 톱질할 자리를 체크해 놨다. 직선 부분은 직원이 기계로 잘라주기 때문이다. 오차가 날 것에 대비해 약간 넉넉히 체크를 해 놓고 부탁을 했다. 


2) 자르기


직원 제임스의 도움으로 기본 골격은 만들었다. 하지만 베이 윈도는 대각선 사선 모양의 절단의 필요하다. 이 부분은 위험하니 직원이 안 해준다. 나무 코너에 놓여있는 톱으로 내가 직접 자르면 되겠냐고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런 애는 본 적이 없단다. 전기톱을 사서 자르는 게 어떻겠냔다. 한번 해보겠다며 호기롭게 톱질을 시작한 나는 15분 정도 지난 후 다시 그 직원을 찾았다. "전기톱은 어디 있어?" 것 보라는 얼굴로 전기톱들이 놓여있는 섹터에 데려간다. 가장 싼 게 100불 정도. 하나 사놓으면 계속 사용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또 자주 안 쓰면 녹슬어 그냥 버릴 것 같아서 렌트를 물어봤다. 안타깝게도 전기톱은 빌려주지 않는단다. 그래서 그냥 자르기 시작했다. 쓱싹쓱싹쓱싹~ 지나가던 경험 많아 보이던 카펜터들이 직원 제임스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 톱질 주변을 지나갔다. 한 친구는 잠깐 톱을 줘보라며 몇 번 애를 써 주었다. 난 쥐 난 손을 주무르며 무차스 그라시아스~를 했다. 나무 코너 작업엔 다양한 종류의 톱들이 놓여있었고 난 그 톱들을 골고루 쓰며 양쪽 대각선 사선 모양을 절단했다. 정확히 2시간 52분이 걸렸다. 톱질을 하는데 자꾸 이런 말이 머릿속에 웅웅거렸다. 무식하면 용감한지 용감하면 무식한 건지....


"세뇰, 뽀르빠보르~~"


3) 옮기기


톱질을 끊낸 판자를 카드에 옮겨 2층 주차장으로 가져갔다. 눈짐작으론 내 승합차 뒷 좌석을 젖히면 트렁크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는 들 수 없는 무게라 저쪽 주차장 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직원에게 트렁크에 넣는 것을 부탁했다. 


"나 지금 브레이크 시간이야. 10분 후에 도와줄게." 


그 친구는 담배 하나를 맛있게 피고 친구와 통화까지 마치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더니 다른 직원 하나를 데려왔다. 두 남자 둘이 내 판넬을 번쩍 들어서 내가 3시간 톱질한 판넬을 트렁크에 영차~넣는데... 이게 안 들어간다. 10cm 정도의 공간이 부족하다. 지치고 난감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시애틀로 출장 간 신랑 생각이 나 급 부글부글해진다. 이 어려운 순간에 옆에 없단 말이지!! 그래서 직원에게 물었다. "너네 트럭 렌트해 주지? 어떻게 해야 해?"


컨슈머센터에서 시간당 $20불에 빌리면 된단다. 내려가서 프로세스를 물어보니 보험 증도 가져와야 한단다. 다시 2층에 올라가 보험증을 꺼내렸는데 한 번도 안 몰아본 트럭 운전이 좀 겁이 난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여기서 겨우 10분 거리야. 저 판자 하나 옮겨주면 내가 $20불 줄게."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트럭마다 붙잡고 상황을 설명하니,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오후 3시 반에 퇴근하는 트럭 만나기가 쉬운 일은 아닌 듯 보였다. 그렇게 30여분 트럭 구걸을 하고 있는데 작고 낡고 착해 보이는 트럭 하나가 시동을 걸고 있다. 공사판에서 바쁜 하루를 보냈음직한 네 명의 히스패닉 일꾼들이 타고 있다.


"세뇰, 저 판자 하나만 니 트럭에 날라주면 안 될까? 여기서 10분 거리밖에 안돼. 뽀르빠보르~"


30분 동안 너른 주차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뽀보르빠보르를 연발하니 운전대를 잡고 있던 친구가 다시 묻는다. "얼마 준다고?" "베이티 벅스. 10분만 운전해주면 돼!!"


나는 내 차로 앞장을 서고 낡고 조그맣고 착한 트럭은 낯선 길을 따라오기 시작한다. 신호가 바뀔 것 같으면 기다렸다 함께 넉넉히 액셀을 밟고 스쿨버스까지 가세해 평소 10분이 20분 가까이 되기 시작한다. 혹시나 이 친구들이 '귀찮아!' 하며 그냥 가던 길 가진 않을지 걱정 반 감사 반으로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이 착한 세뇰들은 우리 집 앞에 얌전히 서서 그 무거운 판넬을 현관까지 갖다 줬다. 

난 20달러를 건네주며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 세뇰~"


힉.. 사이즈가 안 맞다.


우. 여. 곡. 절 끝에 우리 집 거실에 입성한 판넬은 며칠을 꼬박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하루 종일 너무 지쳐서 더 이상의 작업이 불가능했기 때문. 그다음 날도 다다음날도 엄두를 못 내고 쳐다보다가 어차피 빨리 끝내야 정리가 되겠다는 생각에 판넬을 베이 윈도 자리에 넣어봤다. 그. 런. 데, 양 사이즈가 맞지 않다. 메저를 하다 간과한 부분이 있었는데 딱 그 부분 때문에 양끝에 주먹 하나가 들어갈 공간이 생긴 것이다. 낙담했지만, 그래서 한번 더 하면 정말 맞추맞게 잘하겠지만 그럴 엄두는 못 내겠고 그냥 완성을 해야 했다. 사이즈에 맞게 잘라온 나무다리 10개를 균형에 맞춰 나누어 붙였다. 아래는 서랍장으로 만들어 안 보이게 클로즈해볼까 했지만 스팀이 나오는 터라 뚫어야 했다. 더불어 로봇 청소기가 오갈 수 있게 공간도 확보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세워 놓으니 어느 정도 모양이 나온다. 나름 좋은 나무로 했다고 하지만 가시가 나올 수 있어 샌딩 작업이나 왁싱을 하고 싶었지만 힘들어서 포기. 다만 위에 얺을 품질 좋은 방석을 찾아야 했다. 재질은 매트리스 토퍼가 좋을 것 같았다. 월마트에서 2인치짜리 퀸 사이즈 매트리스 토퍼를 사 와 안 쓰고 처박아 두었던 침대 면 시티를 씌웠다. 나름 등받이 쿠션 역할까지 하며 잘 맞아 보인다. 거기에 돌아다니던 쿠션과 여분의 베개 등을 놓았더니 나름 좋아 보였다. 


원래는 햇볕 받으며 책 읽기 용도로 생각했는데, TV 볼 때 편히 누워 보다 잠들기 일쑤다. 길이가 254cm, 넓이 94cm라 다리를 뻗어도 넉넉한 사이즈여서 자꾸 눕게 된다. 역시 가장 좋은 때는 아침 점심 나절 창가를 통해 해가 들 때이고 저녁에 TV 볼 때, 불면증으로 새벽에 깨서 돌아나 닐 때도 색다른 잠자리로 성공적이다. 다만 창틈 어딘가로 바람이 들어오는지 새벽에 좀 춥다 싶다. 


이렇게 생각만 하던 베이 윈도 벤치를 만들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고 사연도 많으니 이 역시도 쉽게 버리고 새로 사고하지는 못할 듯하다. 새끈한 모델의 가구야 사면 간단하고 좋겠지만, 이런 멍청하고 무식한 사연 같은 건 없을 테니. 초보 목수의 우왕좌왕 벤치 만들기다. 어쨌든, 잘해보자 나의 베이 윈도 벤치야~ 

그리고 자꾸 이 말이 웅얼거려진다, 목수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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