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en Dec 17. 2019

테일러 스위프트와 구하라

민박집주인의 뉴욕 이야기 (8)

얼굴 가득 주름과 환한 미소를 한 캐롤 킹이 무대에 등장했다. 오늘 무대의 하이라이트인 <The Artise of the Decade> 시상을 위해서다. 11/24일 미국 LA에서 열린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그 영광의 수상자는 바로... '테일러 스위프트'. 앞 무대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춤과 노래를 막 끝낸 그녀는 할머니뻘인 캐롤 킹에게 감사했다. 

자신의 부모가 고등학교 때 애정 했던 할머니뻘의 선배 가수가 건네는 트로피에 감사했고 당당했다.


방탄 소년단이 최초로 3개 부분 트로피를 받아서 우리에게 알려진 2019 AMA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최고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그녀의 나이 이제 겨우 스물아홉, 나이에 비해 거창한 상의 무게를 짐작하는지 캐롤 킹은 작사 작곡 노래를 하며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꾸준히 펼쳐온 그녀가 이 상을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한다. 객석을 가득 메운 유명인들도 기꺼이 기립박수로 그녀의 수상을 축하했다.


테일러 스위프트, 1989년 미국 테네시에서 태어난, 이젠 누구다 다 아는 재능 많은 가수다. 한 손엔 트로피, 다른 한 손엔 일흔 넘은 할머니뻘 선배와 어깨동무를 하며 다정히 퇴장했다. 그 모습이 아름다우면서도 한 켠으론 허하다. 아마 그 허한 마음은 오늘 아침 한국 뉴스를 장식한 그녀 또래 가수 때문인 듯. 

 

재능 많고 솔직한 여성의 생존하기


자살한 유명인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곳에선 행복하라는 말이나 나쁜 놈들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니 같은 말들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녀를 잘 모른다. 그녀가 부른 노래보다는 예능 프로에 나와 반짝반짝한 말들로 주변을 까르르 웃게 했던 몇 개의 짤들이 다다. 가요 순위 프로보다는 연예. 사회면에 등장했던 섹스 동영상, 데이트 폭력 같은 기사가 더 먼저였다. 사고 후 '연예 생명 끝장 내주겠다'라고 동영상을 가지고 협박하던 전 남자 친구가 1심에서 동영상 건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는 얘기와 강남 어디에 미용실을 개업했다는 소식도 뉴스를 통해 들었다. 그 판결을 했던 판사가 여 측 변호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섹스 동영상을 시청했다는 사실도. 사고 이후 일본 매니지먼트 사는 노출 등 하드코어 캐릭터를 강요했다는 얘기까지. 그리고 어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뉴스 뉴스...

91년생, 미국 나이로 27살, 올해의 아티스트가 된 테일러스 위프보다 딱 한 살 어린 여자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 각자 새로운 가정을 꾸린 탓에 고모할머니라는 먼 친척의 손에 자랐단다. 가수 데뷔를 위해 중학교 때부터 서울 사는 다른 친척집을 전전했고  걸그룹 카라의 멤버가 된다. 한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빚 없이 강남에 건물까지 샀단다. 노래만큼이나 악착같은 성격에 아이돌 올림픽에서도 악바리였던 영상은 이쁨과 섹시함만을 내세운 기존 걸그룹 멤버와 달랐다. 겨우 스물 다섯 정도밖에 안된  그녀의 생애를 보고 난 혼자 중얼거렸다.  이건 뭐 성공 스토리가 다 있나.


그러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섹스 동영상이 노출됐고 이 문제로 법정까지 갔지만 법원의 판결로 남자는 강남에 미용실까지 개업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자살한다. 위인전이 호러영화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악플이 따라다녔고 동영상을 찾는 이들이 즐비했고 남자 친구의 악담처럼 방송생활을 하지 못하게 됐고 국가는 남자에게 면죄부를 줬다. 그녀는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그녀와 같은 이들의 이름이 떠 오른다. <악플의 밤>이라는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셜리는 겨우 25살, 대한민국 웬만한 이들이 다 아는 가수 백 모 씨와 배우 오 모 씨는 이 지옥의 '생존자'지만 가혹한 꼬리표는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사람이 죽어가도 법원은 사회는 방송은... 잠시 숙연해질 뿐 뭐가 잘못인지 모른 체하는 세계가 몹시 불편하다.


왜 같이 씩씩하게 늙을 순 없나.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을 처음 본 곳은 파고 돔이었다. Red라는 두 번째 앨범을 내고 북미 투어 중이었고 큰 키와 화려한 의상으로 2시간 내내 무대가 꽉 찼다. 22살이란 나이라지만 주눅 들지도 수줍어하지도 않았다. 객석에서 보는 그녀는 전사였고 주인공이었고 거침없는 아티스트였다. 그녀의 기사는 노래 말고도 미국 뉴스의 단골손님이다. 동료인 Kerry Perry, Kaine West와의 설전 말고도 자신의 고향에서 민주당 후보를 응원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 미투 운동에 관한 입장 표명 등등. 얼마 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제작자 중 하나인 Scott Brown과의 음원 싸움도 당당히 이겨냈다. 조신하지도 순종적이지도 연약하지도 않은 그녀다. 

구하라, 걸그룹 카라의 멤버로 누구보다 무대와 방송을 누볐던 그녀가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한민국 남쪽 어느 지방에서 태어나 부모 없이 당차게 인생을 개척하며 살았던 그녀가 저 당당하고 화려한 테일러 스위프트와 자꾸 겹쳤다. 그녀가 그냥 섹시하기만 했다면, 그녀가 그냥 귀여운 캐릭터이기만 했다면 더 나아가 그녀가 좀 더 힘 있는 부모를 가졌다면 급기야는 그녀가 한국이란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같은 부질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아니 구하라 그녀가 더 당당한 싸움꾼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그녀보다 먼저 이 세상을 등진 셜리와 함께, 우리는 왜 20대 그 반짝반짝하고 똑똑하고 자신에게 충실하고 당찬 천재를 품지 못할까 싶어 슬프다. 그녀가 우리와 함께 살아내고 사랑하고 싸우고 나이를 먹지 못하게 하는 사회, 싸움꾼 테일러 스위프트가 올해의 뮤지션으로 당당히 트로피를 받는 모습 속에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진 이유다. 

당차고 똑똑하고 씩씩한 천재들과 같이 신나게 나이 먹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목수는 개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