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줄 위에 음표 세우기

by 휴찬

중학교 2학년 시절. 즐거워야 할 음악 시간은 친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학교나 한 명쯤은 존재하는 ‘마녀’가 음악 담당 교사였기 때문이다. 심한 폭언이나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지만, 드센 외모와 성격이 학생들을 압도했다. 합창을 하다가 누군가 음정이나 박자를 틀리면 곧장 열 손가락으로 건반을 마구 내려찍으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너희들처럼 노래 못하는 애들은 처음”이라며 (영화 ‘위플래쉬’에 등장하는) 플래처 교수처럼 버럭 소리를 지르곤 했다.

독창이라도 하게 되면 지옥문 앞에 선 기분이었다. 평소엔 곧잘 부르던 애들도 워낙 긴장해서 실수하기 일쑤였다. 특히 그 나이 때는 변성기를 거치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고운 소리를 내기 힘든 시기였다. 마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고삐를 늦추지는 않았다. 음악 시간이 다가오면 양호실을 찾아 앓아 눕는 친구들도 유난히 많아졌다.


음악실의 분위기야 늘 그렇게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난 그래도 음악 시간을 나름대로 기다렸었다. 그냥 음악에 대한 이론을 공부하는 것이 재밌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음악을 해봐야지’라고 마음 먹은 적도 있었다. 다른 분야의 창작에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아직도 실행은 해보지 못했지만. 여하튼 음악이 재밌었던 나는, 또래에 비해 음악 이론에도 밝은 편이었다. 음악 과목 필기시험은 거의 늘 만점이었다.

마녀는 어느 날, 학생들의 음악 시험 점수가 형편없다며 분을 참지 못했다. “이렇게 쉽게 출제해도 못 맞히냐?”며 우리들의 지능지수를 격하게 의심했다. 마녀는 전체 성적이 최상위권이었던 반장을 일으켜 세웠다. “넌 국영수만 잘하지, 어떻게 이 쉬운 문제를 틀리냐?”며 가쁜 숨으로 몰아쳤다.

기억하는데, 솔직히 그리 쉬운 시험 문제는 아니었다. 네 마디에 이르는 멜로디를 장조에서 단조로 변환하여 악보를 그리는 문제가 있었다. 온음과 반음을 꼼꼼하게 체크해야만 음계가 안 틀리는 고난도 문제였다. 그 악보를 전교생 중에서 완벽하게 그려낸 학생은 나를 포함해 서너 명에 그쳤다. 마녀는 그날 부로 ‘음악 반장’을 따로 두기로 결정했고, 우리반 반장은 내가 맡게 되었다. 음악 시간만큼은 반장의 권한이 내게 있었다. 그 임기가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그땐 몰랐었지만.




아무 일 없이 얼마 간의 음악 시간이 흘러갔고, 마녀는 궁극의 미션을 내게 부여했다. 노랫말과 박자만 지정해 준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멜로디를 작곡해 오라는 것. 평이한 4/4박자였고, 총 길이는 16마디 정도였다.

명곡을 쓰라는 요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단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음계와 화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있었기 때문에 코드에 맞춰 음표를 적는 건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리코더와 하모니카로 음을 직접 불어 보면서 차근차근 악보를 채워나갔다. 막대기와 검은 머리, 하얀 대머리, 댕기 머리 등등.

처음엔 안전제일 주의로 음표를 그려나갔다. 되도록 점은 찍지 않았다. ‘샤프’나 ‘플랫’도 가급적 회피했다. 그러고 나서 전체 곡을 리코더로 연주해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런 특색도 없고 무미건조했다. 좋은 멜로디를 들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마음 속의 일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 이런 게 영혼 없는 작곡이라는 것일까?

어떤 방식으로든 곡에 차별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음정을 아무리 바꿔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정된 음계 안에서 만족할 만한 멜로디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멜로디로 안되면 박자나 리듬이라도 흔들어 보고 싶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강한 호기심이 올라왔다.

‘마디와 마디 사이에는 왜 음표를 안 넣지? 세로줄 위에는 음표가 있으면 안되나?’

그런 악보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인지, 허용되는 것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마땅히 물어볼 곳은 없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있었다면 좀 달랐을까? 첫 곡을 쓰던 중학생 작곡가는 결국 실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래, 예술은 원래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부 세로줄 위에 음표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앞 마디와 뒷 마디를 합쳐 전체 박자의 총량은 어긋나지 않도록 했다. 악보의 전반부에는 실험을 시도하지 않았다. 평이하게 전개하다가 후반에 반전을 보여야 제맛 아니겠는가. 아마 나는 ‘어떻게 이런 기발한 작곡을 했지?’라는 칭찬을 기대했던 것 같다. 전교에서 음악 점수가 가장 뛰어난 학생인데,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는 압박감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음표를 모두 채우고 나니 막상 연주하기가 어려웠다. 의도한 것은 맞지만, 군데군데 엇박자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한 손으로 박자를 세면서, 엇박에 음을 내보려고 애썼다. 어렵지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물론 듣기에 좋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무언가 색다른 방식을 시도해봤다는 점에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다.

드디어 음악 시간이 다가왔다. 조금은 두근거렸다. 이 악보를 보면 마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래도 걱정보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마음이 조금 더 컸었다. 피아노도 한번 배운 적 없는 중학생에게 더 이상 뭘 바란단 말인가. 마녀에게 악보를 건넸다. 어떤 멜로디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바로 발표 준비를 시켰다. 마녀는 건반을 치고 나는 노래를 부르면 된다.

여덟 번째 마디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마녀는 처음 본 멜로디를 가볍게 튕겨내고 있었고, 난 조금 불안한 음정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노래를 잘 부르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아홉 번째 마디에 들어서면 드디어 세로줄 위의 음표를 만나게 된다. 오로지 그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 떨릴 뿐이었다. 3초 전, 2초 전, 1초 전!

푸드드드득!

건반 소리는 멈추고 하얀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마 오우삼의 누아르에서 많이 봤던 장면이었지. 마녀가 집어던진 비둘기는 무수한 음표들을 바닥으로 흩뿌리며 음악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런 엉터리가 어떻게 만점을 받았어?”

난 이 시간 부로 음악 반장직에서 전격 경질됐다. 구겨지고 더럽혀진 악보가 나를 참 닮았구나, 싶었다.




내가 좋은 곡을 만들었는데 마녀가 알아보지 못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이젠 30년이나 지난 일이다. 세로줄 위에 음표를 올릴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지금은 알고 있다. 가끔 이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세로줄 위에 음표’로 검색을 해보았지만, 궁금증을 단번에 풀어 줄 정보는 찾지 못했었다. 다만 얕은 지식이 조금 더 늘어 엇박을 표기하는 방법이 따로 존재함을 알게 됐을 뿐이다. 혼합박자와 변박자 개념을 찾아보다가 박자를 변환하여 마디를 다시 구분하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정도다. 중학교 수준에서 굳이 혼합박자와 같은 개념을 가르칠 필요는 없었겠지만, 만일 그걸 알고 있었더라면 세로줄 위에 음표를 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난 삶의 한가운데에서도 세로줄 위에 음표를 세우려고 했던 적이 많았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는 감성을 대본 위에 표현하고, 누군가는 코웃음 치는 기획안을 구상했었다. 그러면 갈등이나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모두 실패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서로의 표기법이 달라서 발생하는 일일 뿐이다. 보완하고 다시 소통하면, 언뜻 보기에 엉터리 같았던 악보가 훌륭한 결과물로 도출되기도 한다.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는 일은 늘 나에게 활력을 준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것도 여전히 흥미롭다. 난 음악 반장직을 박탈당했지만, 세로줄 위에 음표를 세우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려 한다. 4/4박자만 반복되는 삶은 아무래도 지루할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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